씁쓸한 훈장

카르텔은 어디에나 있다.

by 낙산우공

카르텔(Cartel)은 기업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을 분할하고 있는 기업 간에 담합을 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해 낸다. 그래서 동종업계에서는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그런데 카르텔은 꼭 민간시장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담합행위는 카르텔이다. 공정하지 않을뿐더러 조직적이고 사악하다. 부정하고 부패한 세력은 묘하게 서로를 알아보고 모인다. "끼리끼리"는 과학(Science)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한번 밥만 먹어보아도 마음이 통한다.


10여 년 전에 모 공공기관에서 행정부 국장급 간부를 접대(?)했다고 내부고발이 들어가서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다. 공중파 프라임타임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까지 되었다. 간혹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일어난 일이라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 진행경과가 아주 재밌었다. 공공부문이고 민간부문이고 대한민국의 접대문화는 뿌리가 깊다. 접대의 정도와 빈도에 따라 경중을 나눠야 할 만큼 만연해 있다. 김영란법이 휘몰아치고 한동안 잠잠했지만 다시 고개를 쳐드는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와 음주문화가 바뀌지 않는 탓이다.


당시에 상습적으로 접대를 받았다는 국장급 간부는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접대를 받은 이가 있으면 당연히 그에게 접대를 한 이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였다. 흡사 조직폭력배의 세상을 보는 듯했다. 당시 접대를 위해 부정한 회계처리를 담당한 공공기관의 팀장이 모든 걸 뒤집어쓰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뒤에 징계를 받고 해임된 회계팀장이 상급자와 통화한 내용을 녹취해 폭로한 것이다. 이게 다시 목소리가 변조된 상태로 방송에 나갔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행정부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간에는 조직적이고 상습적으로 접대행위가 있어 왔다. 비단 이 기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거기에 연루된 인물은 간부급 공무원과 기관의 고위직 인사였다. 독박을 쓰고 회사를 떠난 팀장은 기관의 고위직 인사에게 회유를 당해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그의 뒤를 봐주겠다던 약속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작심한 듯 그는 언론에 녹취파일을 공개해 버렸다. 통화내용은 결국 다른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던 기관의 고위직이 전직 팀장을 회유하는 구차한 이야기였다.


상습적이고 지속적인 소위 "갑을" 간의 접대문화는 이 나라에서 오래된 관행이다. 그래서 한 번씩 언론에 등장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의외로 금세 덮인다. 접대를 받은 공무원은 형사처벌을 받고 조직에서도 징계 처리되었겠지만 그를 접대한 공공기관의 고위직은 결국 살아남았다. 기관의 회계팀장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게 억울해 언론에 폭로까지 했지만 실제로 이 사건을 주도한 주인공은 교묘하게 책임을 피해 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카르텔이라고 본다. 이 사건은 단순히 구속된 국장급 공무원만의 일탈행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무원 사회에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담합의 카르텔이 아니고는 이 사건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주인공(공공기관의 고위직 인사)은 잠시 몸을 피해 있었다. 그는 소속 공공기관에서 모 협회 자문위원으로 파견을 나갔고(이 또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건이 대충 무마되고 세간의 관심도 사그라져 갈 무렵 그는 몇 년 만에 본래의 기관으로 슬그머니 복귀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바닥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다시 이런저런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 뻔뻔함에 기가 막혔지만 내가 정말로 놀랐던 것은 그 몇 년 후였다. 그가 훈장의 서훈 후보자가 된 것이다. 행정부는 부처별로 관련 분야의 유공자를 대상으로 훈포장을 추천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훈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학기술 훈장,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훈장, 체육훈장 등 다양하다.


행정부는 관련 분야의 유공자를 대상으로 포상(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표창 등)을 하고 경력과 업적이 탁월한 이에게는 훈장(훈장과 포장)을 받도록 추천한다. 이를 합쳐서 상훈이라고 하는 것이다. 훈장은 참전용사만 받는 것이 아니다. 오래 근무한 공무원 중 실적이 좋은 이는 근정훈장을 받는다. 행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나름 잘 나가는 직원들은 젊어서 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 등을 받고 연차가 높아지면 훈, 포장을 받는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훈을 주기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었는가를 심사하기 위해 공적조서를 작성한다. 그분의 공적조서 내용이 궁금해졌다.


카르텔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카르텔은 공정위도 모른다. 김영란법이 다시 무용지물이 되어간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식사비, 선물비, 경조사비 상한제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훈장을 받은 분은 내 등을 거쳐간 사무관을 외치던 분과 같은 기관에 재직했다. 그들은 은근히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했을지 모른다. 그들은 심지어 같은 대학 동문이었다.


* Image by Alexander Lesnitsky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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