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79일(2022.07.28)
Journey man은 옛 전통적인 수공업 체계에서 도제 과정을 마친 숙련공을 부르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것을 스포츠에 적용하여 팀을 자주 옮기는 선수를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이 긍정적인 의미여서인지 서양에서는 믿을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 또는 훌륭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는 선수를 저니맨이라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한 팀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떠돌이' 선수를 부를 때 쓰인다. 본래의 뜻과 달리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저니맨은 실력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현재 소속된 팀에서는 딱히 자리를 잡지 못했더라도 다른 팀에서는 필요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그 선수를 찾는 것이다. 자신의 쓰임이 있는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저니맨은 진정한 프로선수다. 그런데 원클럽맨을 유난히 선호하는 문화인지라 우리나라에서는 영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일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닌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조직과 융화하지 못하고 말썽을 피우는 사람일 것이라 단정한다.
그나마 국내에서 이 직장 저 직장을 옮겨 다닌 화려한(?) 이력을 높게 평가하는 동네는 투자 금융권이 유일한 것 같다. 그들은 능력을 인정받으면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옮긴다. 그것이 스스로의 몸값을 올리는 당연한 수단이라 생각한다. 돈으로 모든 가치가 환산되는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조차 이들만큼 돈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프로야구 선수는 자신의 연고지 팀을 선호하며 그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길 희망한다. 그래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영구결번과 같은 영예를 얻고자 한다. 저평가된 FA 계약을 감수하며 모구단에 남은 박한이 같은 선수는 그래서 별명이 '착한이'다.(음주운전 때문에 명예로운 은퇴식을 치르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어떤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더라도 저니맨이다. 13년 동안 다섯 곳의 직장을 전전(?)하였고 그 뒤 마지막 직장에서 9년째 일하고 있다. 이곳이 나의 종착역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조차도... 게다가 내가 다닌 여섯 곳의 직장 중 무려 다섯 곳이 저니맨을 유난히 경계하는 공공부문이었다. 그나마 내가 가진 원칙이었다면 어떤 직장에서건 3년 차까지 버텼다는 것이다.(물론 이 것도 결과론이다.) 나의 직장 이력이 나름대로 성장과 확장의 연장선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자타가 부정하지 못한다는 게 내 유일한 위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떠돌이였다. 그러나 적어도 '메뚜기'는 아니었다고 자부한다.
공공기관 팀장으로 있을 때 주말근무가 불가피하여 대학원 후배이기도 했던 부하 직원에게 함께 주말에 일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때 나의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형, 나는 메뚜기야... 나는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옮기는 사람이야. 여기서 주는 월급으로 주말근무를 할 수는 없어... 미안"
나는 별 수 없이 주말근무를 자청한 기혼의 여자 직원과 대전까지 출장을 가서 이틀간 일했다. 그때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부른 후배는 7년 전에 창업을 하여 어엿한 대표가 되었다. 그는 조건만 맞으면 6개월도 안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직을 했으며, 한번 다녔던 곳에 몇 년 후 재입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고 그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주위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메뚜기가 아니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메뚜기와 내가 특별히 구분되지 않았다. 나는 평생 원클럽맨을 꿈꾸었지만 무려 다섯 번의 이직을 하였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 가지 좀 더 명확해진 것은 50이 넘은 나에게 이직의 기회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직이 아닌 은퇴를 고민할 뿐이다. 내가 처한 현실이, 은퇴라는 무모한 선택을 지연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낸 공공부문의 후배가 이직을 한다고 알려왔다. 그 친구는 공공기관에서 20년 넘게 일했지만 쉽게 직장을 옮기는 친구가 아니었다. 20년 동안 딱 한번 직장을 옮겼던 이유도 공공기관 기능조정에 따라 인위적으로 조직 통폐합이 있었고, 그 뒤 업무성격이 너무나 다른 일을 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렇게 10년 이상씩 두 곳의 공공기관을 다니던 녀석이 갓 50이 되어서 민간기업으로 이직을 한다는 거였다. 결혼도 늦어서 이제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아빠가, 그것도 외벌이 아빠가 선택하기에 조금은 무모해 보였다.
후배를 만나서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다가 이야기가 깊어졌다. 그 친구의 고민은 10여 년 전 나의 고민과 닿아 있었고 그는 다소의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도전을 해야 할 시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때 말이다. 그는 정말 나보다 한 살이 어렸고 나는 그의 도전을 응원해 주었다. 그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격려와 응원뿐이었다. 그와 직장 동기인 후배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는데 그의 걱정은 혼자 남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 이제 나도 그만두어야 하나"
남들은 실직을 걱정하는 쉰 살에 이직이나 전업 고민을 하고 있는 그들이 팔자 편하고 한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들을 보면서 느낀 감상은 이렇다. 50대란 많은 것을 내려놓는 나이라서 40대보다 마음이 편하다고들 했는데 그건 참으로 실상을 모르는 이야기다. 나는 그래도 남들보다 일찍 아이를 낳아서 제법 키워놓은 편이지만 혼기가 늦어진 요즘의 50대는 과거로 치면 40대와 같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들의 발을 디딜 공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86세대니 97세대니 하는 세대갈등을 조장할 마음은 없지만, 지금 50대 초입에 들어온 이들은 모아놓은 자산도 창창한 미래도 없다. 그래서 불안한데 조직에서는 눈칫밥 신세를 먹기 일쑤다.
저니맨이 좋은 뜻이건 나쁜 뜻이건 관계없다. 저니맨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프로야구 거의 전구단을 전전했던 유명한 저니맨이 있었다. 그는 지금도 어느 구단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다. 나는 그가 수십억 FA 계약에, 화려한 은퇴식을 치른 여느 스타플레이어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그 삶이 부여한 무거운 책임을 묵묵히 이고 지고 간 것이다. 저니맨이라고 비웃던 말던 그는 자신의 소용이 남아있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는 돈 한 푼에 팔려 다니는 메뚜기가 아니었다. 그는 가장이었고 직업인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생존했다. 그 보다 위대한 사회인은 없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 어떤 비난과 모욕도 감수하는 이는 그래서 위대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위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명예로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고,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그 관념들의 실체는 우리의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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