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를 지우다가...

해방일지, +71일(2022.07.20)

by 낙산우공

현대인의 불안은 결코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려서는 학업과 진로, 커서는 결혼과 성공, 그리고 출산과 육아, 늙어서는 노후와 건강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민감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지만, 여기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이는 아마도 구도자의 경지에 오른 성직자나 도인들 뿐일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가다 보면 우리는 하나씩 그런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워지지만 그렇게 통과의례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김없이 막연했던 다른 일들이 또 다른 불안감의 원천으로 등장한다. 이 끊이지 않는 연쇄 활동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주기는 커녕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간의 흐름은 강도와 밀도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버티고 산다. 그 이유가 발전적인 환경의 변화이거나 단순히 욕망의 순화이거나 관계없이 말이다.


내 삶의 불확실성을 불식시키는 방법은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변수들이 나를 불안하게 하기 전에 그것들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일이야 말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고용상태가 불안하다면 보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기고 주거환경이 불안하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집 장만을 하는 것 말이다. 물론 말이 쉽다.


아무튼 그렇게 하나씩 불안요소를 제거한 끝에, 아니 끝이라고 건방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만큼 변수들을 삭제한 끝에 내게 나타난 불안요소는 불안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이었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내 가족이 비루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순간, 나는 특별히 불안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대신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조금 피곤해질지언정 누군가를 만나서 흥건하게 취하고 싶어졌다.


나는 내가 불안해서, 삶이 고달파서, 처한 상황이 서글퍼서, 그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스스로가 애달퍼서 술을 마신다고 생각했다. 고로, 그 모든 일들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주위와의 관계를 끊고 내 자신의 삶에 목 메이게 그리웠던 자유롭고 행복하며 바람직한 삶에 집중할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믿어 왔었다. 그런데 나는 그 끝에 도달하지도 않은 지금, 그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지금, 모든 욕심과 탐욕에서 벗어나 고고한 내 삶을 살리라 다짐했던 고지가 보이려고 하는 지금, 심심하고 외롭다.


나는 타락했고, 돌아갈 길을 모른다. 타락하면서 순수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댄 것이다. 난 순수한 삶을 모른다. 처음부터 몰랐는지도 모른다. 그건 단지 내 삶을 지탱하는 신기루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흔 세해가 가고 있다.




8년 전쯤에 남겼던 이 글을 찾아 읽게 된 건 아침 출근길에 불현듯 변수와 상수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인생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변수들을 제거하면서 그 자리에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다양한 상수들을 키우다 보면 조금은 안정적인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던 젊은 날을 돌이켜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꺼내 본 나의 글에는 그런 희망 섞인 이야기는 한 줄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꽤 많은 변수가 사라진 삶을 제법 오래 살아내고 있지만 변수가 떠난 자리를 상수가 채울 것이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인생의 큰 줄기가 휘둘리는 변수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삶의 변수들이 채워져 가고 있었다. 직장이 안정되었다고 해서 직장의 삶이 평안해지지는 않았고, 거주가 안정되었다고 해서 현재의 집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젊은 날에 쓴 글에는 인생의 무상함을 담고 있지만 나는 지금 그렇게 여유롭거나 평안하지 않다. 심심하고 외로움을 고민해야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언제나 삶은 끊임없이 근심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과연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게 할 만한 사건들을 불쑥불쑥 선사했다. 나는 40대에 시건방지게 삶의 무료함을 걱정하였는데, 50대가 되어서야 인생에 그럴 틈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몇 달째 반복해서 흘러나오던 공감 가는 음악이 있었는데 오늘 비로소 원곡자와 가사를 확인해 보았다. 놀랍게도 젊은 인디뮤지션의 곡이었지만 50년을 산 나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 허회경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

또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사랑 같은 말을 내뱉고

작은 일에 웃음 지어놓고선

또 상처 같은 말을 입에 담는 것


매일 이렇게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서러워 나

익숙한 듯이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무서워 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매이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상처 같은 말을 내뱉고

예쁜 말을 찾아 헤매고선

한숨 같은 것을 깊게 내뱉는 것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서

다 괜찮다고 되뇌이다가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한숨 같은 것을 내뱉고

사람들을 찾아 꼭 안고선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 Image from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미크론과의 불편한 동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