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과의 불편한 동거

해방일지, +67일(2022.07.16)

by 낙산우공

오미크론 변이가 순식간에 내 몸을 점령해 버렸다. 하찮은 인간은 꼼짝없이 앓다가 그분께서 돌아가시기만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릴 뿐이다. 첫 사흘은 고열에 시달렸고 그 뒤로 인후통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목구멍으로 물 한 방울 넘기기가 어려울 만큼 나는 깊게 아팠다.


넉 달 전 아내와 둘째를 덮친 오미크론은 잊힐 때쯤 나와 큰애를 찾아왔다. 그동안 너희를 잊지 않았고 이제 순서가 되었다는 듯 그분은 내 몸 구석구석을 서슴없이 장악해 들어왔다. 일주일간 나의 삶은 송두리째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다. 다행인 것은 큰아이의 중상이 나보다 가벼웠고 빠르게 지나갔다는 사실뿐, 나는 오미크론에게 무기력 그 자체였다.


예사 감기몸살 같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하루하루 고통과 싸우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달력과 시계를 챙겨보지 않으면 며칠이 지났는지도 의식하기 어려웠다. 안부를 묻는 전화가 달갑지 않았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그저 빨리 통화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성의 없이 짧은 대답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아플 땐 약기운으로 그럭저럭 버티어 냈다. 자다가 일어나 대충 배를 채운 후 약을 먹고 다시 잠에 빠졌다. 몽롱함은 의식을 잠식해 들어와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문제는 정신을 조금씩 차리기 시작한 4일 차 이후였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며칠을 보내고 나의 정신과 육체는 급격하게 기력을 상실해갔다.


그렇게 기초체력마저 바닥이 나면 마음은 심지를 잃고 흐느적거린다. 그 우울감은 겪어본 이들은 안다.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고독감과 소외감은 그동안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삶을 채워갔는지 까맣게 잊은 채 나를 둘러싼 모든 주변의 환경이 마뜩잖다는 거부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럴 땐 그저 바닥난 체력을 핑계삼아 다시 잠의 세계로 도피해 버렸다. 도저히 그 감정을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면 기력이 되살아나듯 우울한 감상도 조금씩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가끔은 바닥까지 떨어진 몸과 마음이 전해주는 각성의 세계를 기억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몽롱함 속에서 찾아오는 불쾌함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믿음은 신흥종교의 허술한 교리처럼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나는 십자포화에 형체조차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탱크처럼 멈출 때까지 전진할 뿐이다.


이렇게 오미크론인지 BA.5인지 하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는 나의 일상에 묵직한 돌직구를 날리고 자취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한방의 훅처럼 들어와 버린 충격은 꽤 오랫동안 나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 같다.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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