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을 대하는 삶의 자세

해방일지, +94일(2022.08.12)

by 낙산우공

비가 그야말로 억수같이 내렸다. 다음 주에 또 한 번 폭우 예보가 있으니 아직 과거형으로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2~3일 정도 아침마다 출근 전쟁을 치렀다. 통제구간이 많아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는 섣불리 길을 나서기도 조심스러웠고 회사 근처에 다 와서는 예상치 못한 바리케이드를 만나 우회하기도 했다. 매일 다니는 익숙한 길이었던 탓에 내비를 켜놓고도 내 몸은 따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로 활성화되었던 재택근무는 기록적인 재난사태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알아서 재택근무나 시차출퇴근제를 이용하라는 문자가 날아왔으나, 그 "알아서"라는 세 글자가 우리를 알아서 기도록 만들었다. 직장인의 삶은 이렇게나 타성에 젖어있다. 부서장 재량으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라는 지시에 우리의 부서장은 고작 30~40분 정도 일찍 퇴근해도 좋다는 공지를 보냈다. 30분도 40분도 아닌 30~40분... 나는 누구보다 일찍 퇴근시간 40분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아들은 어제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비가 계속 내리면 내일은 안 와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밤새 날씨를 살폈으나 안타깝게도(?) 비는 구경도 못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의 출근길에 동행했다. 다행히 망가진 블루투스 이어폰을 대신할 상품이 새벽 배송으로 배달된 탓에 음악을 들으며 차 안에서 느긋하게 잠을 청하긴 했다. 아내가 새벽 4시도 되기 전에 배송 완료 문자를 확인하고 일어나 미리 충전까지 시켜놓은 탓이다. 도대체 아내의 함안댁 생활과 나의 행랑아범 생활은 언제쯤 종지부를 찍을까?


최근의 기록적인 폭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고 한다. 예보인지 실시간 중계인지 구분이 어려워진 기상청 소식을 믿기에는 우린 이미 충분히 많이 난감한 상황을 겪어왔다. 하늘의 일을 어찌 인간의 힘으로 예측할 수 있겠는가? 중부권을 강타한 폭우는 많은 사상자와 재산피해를 낳았으나 나는 강남에 살지 않아 직접적으로 체감하지는 못했다. 해발고도 120미터쯤 되는 고지대에 사는 덕을 보았다고 말하자 매일 평지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하던 딸아이는 할 말을 잃었고 아내는 이 참에 쭈욱 여기 살자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물난리를 보도하는 뉴스 화면을 보며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고, 영화 기생충에서 하수구 물이 역류하는 반지하 장면을 봤을 때는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9월의 홍수가 떠올랐었다. 1984년을 강타했던 대대적인 물난리가 무려 4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 재현될 줄은 몰랐다. 그 당시에 상습 침수구역이었던 풍납동과 망원동은 이제 잠잠해졌는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나는 것을 보며 이것은 인재인가 천재인가 헷갈려졌다.


올초부터 아이를 낙성대역 근처의 학교에 내려주고 동작구를 가로질러 나올 때마다 흑석동 주변의 재개발 아파트를 지나치게 되는데 우리 동네보다 험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 집은 서울성곽을 끼고 있는 완만한 능선의 낙산인데 이곳은 그야말로 협곡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높게 뻗어 올라간 신축 아파트 주변에는 당연히 거대한 옹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과연 이곳이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일까 의아했는데 기어이 사고가 터진 것이다.(서울의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미칠 듯하여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겠다. ㅡ.ㅡ;;)


아무튼 21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기상이변은 반드시 폭우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린 언제나 열린 마음과 자세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삼한사온의 겨울도, 7월 장마-8월 폭염-9월 태풍의 여름도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당연히 바캉스 시즌도 따로 없다. 언제든 날이 좋으면 휴가를 내고 언제든 날이 나쁘면 집콕을 해야 한다.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되는 일쯤은 불평할 일도 아니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 유학했던 한 동료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학술모임 때문에 일본의 한 도시에 방문해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며 지진이 났단다. 일순간 앞이 캄캄하고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주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더란다. 알고 보니 모두 회의테이블 밑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시시각각 돌변하는 기상이변에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매뉴얼에 따라 행동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이 자연재해든 다른 이유든...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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