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101일(2022.08.19)
아침에 맡는 빵 냄새는 밥 냄새만큼이나 매혹적이다. 빵보다 밥을 더 좋아하는, 어쩔 수 없는 50대 아저씨인 내가 오늘 아침 지하철역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빵 냄새에 걸음을 멈출 뻔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출퇴근 길에 가끔씩 이용하는 공덕역 지하상가는 환승을 위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코너에 아주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빵집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 아침 그곳에서 풍기는 냄새는 특별할 것이 없었을 텐데도 나의 후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다.
13년 전 강남의 한 빌딩에서 근무할 때 회사가 위치한 16층 사무실 공간이 부족해서 임시로 2층의 빈 공간에서 잠시 일했던 적이 있는데, 그 건물 1층엔 빵과 이탈리안 음식을 파는 식당이 운영 중이었다. 아침마다 그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빵 굽는 냄새는 우리 사무실 직원 10여 명을 아주 미치게 하곤 했다. 가게는 오픈 시간이 안되었는데 대부분 공복 상태인 직원들은 커피나 비스킷 따위로는 갑작스럽게 몰아친 허기를 참기 어려웠다. 그건 참 잔인한 유혹이었다.
오늘 아침 공덕역의 빵 냄새가 나의 감각을 자극한 것은 아마도 13년 전 잠시 빵집 위에서 근무했던 치열(?)했던 기억을 소환할 만큼 오늘의 내 상황이 닮아있던 것은 아닐까? 김훈 선생님의 필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밥벌이의 지겨움'에서는 밥이 주는 감상을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밥이 다 되어 갈 때 풍기는 냄새, 밥이 입안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질감을 그렇게 현장감 있게 설명하는 글을 나는 지금껏 읽어본 적이 없다.
저자는 밥벌이의 도리 없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글을 읽다 보면 나는 어렸을 때 새벽마다 풍기던 밥 냄새가 떠오른다. 당시에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은 그 시간에 밥을 했다. 그 밥을 먹어야만 아버지는 출근을 하셨고 우리는 등교를 했다. 아침밥을 거르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단 하루도 아침밥을 거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결혼을 한 이후 그런 일이 잦다. 거르지 않더라도 편의점 김밥 한 줄, 컵라면, 샌드위치, 시리얼 등등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아내를 비난하는 글은 결코 아니다. 아내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고, 과거 그런 엄마의 역할이 당연했다는 뜻도 절대 아니다. 그저 내 삶을 관통했던 아침밥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만 30세 4개월이 될 때까지 아침밥을 거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그 뒤로 20년 가까이 띄엄띄엄 아침식사를 하고 있으며 이제는 아침의 공복감마저 잊게 되었다. 그저 빈속에 커피를 들이붓는 일은 자제하려고 노력할 뿐... 그런데 10여 년 전 사무실 1층에 자리했던 빵집이나 오늘 아침 공덕역 지하상가에서 풍겨오던 빵 냄새는 나의 잊혀진 공복감을 여지없이 소환해 버렸다.
그나마 그 냄새의 주인공이 빵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밥이었다면 나는 지각을 각오하고 거한 아침 한 끼를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매일 한 끼도 거를 수 없는 밥을 먹기 위해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히 숭고한 것 같지만 결국 밥벌이이며, 우리가 먹는 일이 대단히 다른 것 같지만 혓바닥을 간지르고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같아진다. 거위 간을 먹는 귀부인과 짜장면을 먹는 노숙자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일찍이 김훈 선생님이 일깨워주셨다.
엊그제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보며 나의 해방 선언도 100일이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직장에 갇혀 밥벌이에 매몰되지 않고 내 삶을 해방시키겠다고 100일 전에 스스로에게 선언해 버렸다. 나의 해방일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첫날에 나는 집에서 홀로 아침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1식 3찬이 아니라 국, 밥, 탕, 생선, 고기를 망라하는 임금님 수라상에 버금가는 한 상을 차리고 고고하게 식사를 할 것이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같아지는 그 음식을 혀 안에서 놀리며 나의 해방을 자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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