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114일(2022.09.01)
한숨을 쉬는 버릇은 꽤 오래되었다. 어릴 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와 어른들께 꾸중을 듣곤 했으니 말이다. 한숨을 쉰다고 없던 복이 달아날 리는 없겠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면 조금만 힘겨운 일을 만나도 쉽게 포기하는 무기력한 아이로 자랄 것을 걱정하셨을 게다. 한숨을 쉬는 순간, 몸도 마음도 조금은 무력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한숨을 쉰다.
내가 쉬는 한숨이 다른 이들의 그것과 조금 다른 건 나의 한숨이 걱정, 불안, 두려움을 동반한 무력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이겨내겠다는 각오와 의지를 다지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는 의지가 내 안에 있으나 그 첫걸음을 내딛기 전에 나는 한숨을 쉰다. 이건 내게 주어진 우울한 환경에 대해 소심하게 저항 아닌 저항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한숨을 쉰다.
사람들이 한숨 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전염성이다. 옆사람이 내는 한숨은 나의 의지마저도 꺾어버리기 일쑤다. 엄한 장수는 한숨 쉬는 부하의 목을 베기도 한다.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오합지졸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숨을 쉬려거든 잘 쉬어야 한다.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 안의 헝클어진 정신상태를 바로잡는 한숨을 쉴 때는 말이다. 타인에게 오해를 살 만큼 크게 혹은 힘 빠지게 한숨을 쉬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소리 내지 않고 한숨 쉬는 버릇이 생겼다.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내 안에 있는 불안한 기운들을 서서히 조그만 입구멍 밖으로 천천히 몰아내는 것이다. 가끔은 이 소리가 휘파람이 되기도 한다. 혹여 소리를 내어 한숨이 나올 때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끙끙거리듯 앓는 소리를 동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아이고'라든가 '애구'라든가 '후~'라든가 '허~'와 같은 추임새를 넣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소리를 낼 때에는 강하고 짧게 '흠'이라든가 '훗'과 같이 기합 같은 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건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그렇다. 결국 내가 쉬는 한숨은 불편하고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숨 고르기와 같다. 오늘도 그렇다. 나는 2000년 9월 1일에 첫 직장에 출근했다. 오늘은 그로부터 딱 22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매년 9월 1일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고, 2라는 숫자가 세 번이나 반복되는 올해에는 더욱 그렇다.
난 오늘 크게 한숨을 쉬었고, 여러 번 그러고 있다. 22년씩이나 버틴 내가 그 절반쯤이야 못 버티랴. 오늘은 숨을 고를 것이다. 나는 22년을,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꾸역꾸역 살아 내었다. 남은 시간도 그렇게 살아낼 것이다. 오늘은 나를 위해 숨만 고르고 휴식을 취할 것이다. 제아무리 급한 일이 닥쳐온다해도 말이다.
* Imag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