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고백

해방일지, +127일(2022.09.14)

by 낙산우공

한 철학자는 백 년을 살아보고 삶에 대한 통찰이 담긴 책을 남겼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것으로 보아 100년이라는 삶의 이력이 결코 허투루 쌓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찾아서 읽어보지 않는 이유는 50년 조차 버거워 허덕이고 있는 내게 100년을 내다볼 여유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금과옥조와 같은 말들도 공염불로 들릴 것이고 나는 그 깊은 세월의 통찰에 절반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지천명이라는 어머어마한 미사여구는 공자에게나 어울리는 나이가 50이다. 두 달 전 50년을 넘긴 나는 여전히 30~40대로 보아주기에도 부족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다. 하늘의 명을 깨우치기는커녕 오늘 하루도 감당하지 못해 우울감과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50년을 살았으나 성숙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노련해지지도 않았다. 왜 세월은 나의 얼굴과 몸에만 내리고 나의 정신세계는 지나친 것일까? 아마도 내 탓일 것이다.


나는 꿈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둘째 아이를 잡아주지 못하고 있고, 엄마의 자리에서 헤매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업의 굴레에서 좌절하는 나를 붙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처럼 폭주하는 분노를 추스르기 어렵고, 불현듯 끝없이 추락하는 우울감을 감내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 중년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하룻밤 자고 나면 오늘의 감상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며칠 혹은 몇 달 후에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


22년간 여섯 곳의 직장을 전전하며 밥벌이가 구차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무려 9년이나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는 지금의 직장에서 굴욕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건 내가 제법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탓이다. 현실은 언제나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는데도 나는 과거를 까맣게 잊고 기고만장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자리를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는 이보다 나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모욕감을 외면하기만 하면 된다. 나만이 느끼는 그 고약한 감정을 말이다.


다섯 번의 이직을 하는 동안 내가 절박하고 처절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느끼기에 절박하고 처절하지 않았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나름대로 절박하지만 아무것도 저지를 수 없다. 나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꽤 루틴한 일을 하며 평탄하게 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를 비난하거나 밀어내는 이는 없다. 그런데 나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 뭉개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그 모욕감이 떠나지 않는다. 아무도 모른다 해도...


오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도 채워지지 않았으며, 전혀 현명하거나 지혜롭지 못했다. 오십은 그저 허울일 뿐 그 세월을 나는 허송하였나 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시간이 내 몸을 덜 할퀴고 지나가기만을 기도할 뿐... 나의 무력감은 죄가 없다. 그 무력감에 맞서지 못하는 나는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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