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같은 휴식

해방일지, +169일(2022.10.26)

by 낙산우공

어제부로 나의 한 해 업무는 마침표를 찍었다. 2022년이 아직 2개월이나 남았는데 가을야구에 실패한 프로야구 선수도 아니면서 어떻게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말을 꺼내냐고 시비를 거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맞다. 나는 시즌이 끝나면 휴식에 들어가는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며, 1년 365일 연차휴가를 빼고는 직장에 꼬박 메여 사는 영락없는 월급쟁이 신세다. 그런 내가 감히 마침표(?)라는 엄청난 단어를 입에 올린 건 조금 가벼운 언사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내가 출근을 안 하거나 하루 종일 빈둥거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매년 반복되는 업무 루틴에서 올해 안에 결과물을 내어야 하는 일을 마쳤다는 홀가분한 기분이 앞서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한 것이다. 그만큼 금년 3월에 복직했던 내게 올 한 해는 버거웠다. 10개월의 휴직기간 동안 나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것 외에 특별히 멘탈을 추스르지 못했다. 어쩌면 10개월 전보다 한참 떨어진 전투력(?)으로 복직을 했을지도 모른다.


프로선수는 부상으로 한 달만 공백이 있어도 경기 감각을 잃어버려 슬럼프에 빠지곤 하는데, 하물며 나는 열 달을 쉬었으니 감각이라고 할 것이나 남아 있었겠는가? 그렇게 허덕허덕 한 해를 넘겼다. 하늘이 도운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나는 불과 서너 달 전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었다. 전생에 쌓은 공덕이었는지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나의 한 해는 서서히 마침표를 찍고 있다. 아, 또 입방정을...


이제 내게는 조금 긴 호흡으로 내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올해가 넘어갈 때까지 급박하게 내게 떨어지거나 누군가 나를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예년의 경험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 기대감은 항상 나태함으로 연결된다. 한 시즌을 풀타임으로 마친 프로야구 선수는 스프링캠프까지 기나긴 휴식에 들어간다. 물론 마냥 노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구단에서는 전혀 간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시간이 왔다.


프로야구 선수는 한 해, 한 해의 성적에 따라 내년의 운명이 결정된다. FA로 장기계약을 한 선수들도 당장의 모가지(?) 걱정을 하지 않을 뿐 한 해의 성적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올 한 해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지만 내년도 그 후년도 다르지 않을 업무의 강도와 밀도를 걱정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그래서 마냥 휴식을 취할 수 없다. 그 마약 같은 휴식은 내게 잠시 현실감을 내려놓게 한다. 그래서 마약이다. 사회인에게 현실감각이란 산소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약 같은 휴식을 즐길 여유가 없다. 체력을 보충하든, 마음의 근육을 키우든, 새로운 삶을 모색하든 나의 겨울은 이제 시작되었다. 스토브리그가 훈훈하지만은 않은 것이 과연 프로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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