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을 짊어진 청년

해방일지, +176일(2022.11.02)

by 낙산우공

이른 아침 버스 안에서, 보기에도 엄청나게 무거워 보이는 백팩을 메고 있는 청년을 만났다. 들어있는 것에 비해 과하게 커다란 백팩을 유행처럼 메고 다니는 아이들은 보아왔지만, 그 가방은 무엇인지 몰라도 내용물이 꽉 들어차 있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빈 종이박스 따위로 모양을 낸 것이 아니라 가죽이 찢어질 것 같이 모서리가 도드라져 보였다. 아무래도 내용물이 두꺼운 책 같아 보여 이 친구가 늦깎이 수험생 아닌가 싶었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이건 그 책이 어떤 장르이건 관계없었다. 내가 정녕코 궁금했던 것은 그것이 과연 매일매일 이고 다녀야 할 만큼 필수적인 것들인가 하는 거였다.


고등학교 때 '수학의 정석'이라는 유명한 수험서를 3권으로 분책을 하고선 다시 그 3권 모두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책이 워낙에 두껍기로 정평이 난 터라 링제본을 하여 분책하는 이들이 간혹 있었지만 그 3권을 모두 들고 다닐 거면 굳이 왜 분책을 하는지 궁금했다. 친구의 대답은 단순했다. 분책을 하는 게 대세라서 했는데 그날그날 어디를 공부해야 할지 모르니 다 들고 다닌다고...


1980년대 말 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커다란 보스턴백에 도시락 2개와 7교시 수업용 교과서에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시간에 볼 책들을 잔뜩 넣고 다니던 고등학생들을 말이다. 공부를 놓아버린 몇몇을 제외하면 누구도 예외 없이 그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버스를 탔다. 그 가방의 무게가 그들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대단한 공부를 한다고 그랬는지 모르게 우리는 관성적으로 그렇게 살았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상상이지만, 버스에서 만난 늦깎이 수험생으로 추정되는 그도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백팩을 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매일 아침의 일상인 것 같았다. 어제도 그 시각쯤에 그런 가방을 들고 나타났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그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목과 어깨가 유난히 뭉치는 나와 같은 타입이 아니더라도 그 가방은 날마다 메고 다닐 정도의 무게가 아니어 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는 힘겨워 보이지도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두툼한 목과 강단 있는 체구의 사내였던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 짊어진 짐의 무게는 굉장해 보였다. 그 무게를 견디는 그의 어깨가 용한 것은 둘째 치고, 그 백팩 안에 들어있을 물건들과 그것들의 용도가 그에게 매일의 일상에 모두 필요한 것인지 나는 여전히 궁금했다. 그는 준비성이 유난히 투철한 친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쓰임이 있을 것 같은 모든 것을 가방에 넣고 싶었을 것이다.


내 아들도 내 딸도 나를 닮아 가방에 온갖 잡동사니(?)를 넣고 다닌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서 얻게 된 별명은 공교롭게도 둘 다 '도라에몽'이다.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가방에 없는 게 없다는 이유에서 붙여진 별명이란다. 이런 도라에몽 주머니를 가진 아이들은 대개 다른 아이들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도라에몽이 있으니 그들의 가방은 언제나 가볍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가끔 얄미운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다. 제 가방에 있는 물건을 꺼내듯 내 아이들의 가방을 뒤지는 녀석들 말이다.


오늘 만난 백팩의 청년을 보고 나는 내 아이들이 생각났고 다시 마음이 울적해졌다. 내 아이들이 친구들의 호구(?)가 된 것이 속상한 게 아니었다. 그들의 놀라운 준비성으로 인해 그들의 가방이 그득 찼지만 그만큼의 삶의 무게가 더해진 것만 같아서였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으면 그저 준비할 것만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걱정도 근심도 불안도 우울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런데 내 아이들은 불행하게도 나를 닮았다.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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