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220일(2022.12.16)
도심에서 운전하는 일이 잦다 보니 점점 입이 거칠어진다. 아내나 아이가 동석해 있어도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어도 참을 수 없는 게 도로의 난폭한 운전자다. 운전을 해 본 이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난폭운전을 떠나 개념을 상실한 수많은 운전자들이 대명천지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문철 변호사님과 블랙박스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나는 특히나 깜빡이(방향지시등)를 깜빡하는 이들을 만나면 불쾌감을 가누기 어렵다. 그들은 깜빡하는 게 아니라 그냥 뭉개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깜빡이를 설마 좌회전, 우회전해야 하는 사실을 깜빡할지 모르는 자신을 위한 리마인더(reminder)라고 믿는 것인지... 그들은 도무지 타인을 위한 배려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독심술을 터득하여 상대가 어느 방향으로 가려는지 눈빛만 보아도 아는, 그런 처녀 도사가 아니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초능력도 없다.
아무 곳에서나 훅 들어와 차선을 제멋대로 넘나들고, 비보호 좌회전 차량이 신호 차량에 우선하고, 신호대기가 긴 차선 옆에 걸쳐서 꼬리물기를 자행하는 얌체족들의 세상에서 우리의 언어습관은 결코 아름다워질 수 없다. 들리지 않더라도 욕 한 바가지를 들이부어줘야 조금 위안이 된다. 설마 이걸 위안이라고 느껴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푸념이나 하소연 밖에 안된다.
운전에는 서툴지만 아내는 이럴 때마다 내 옆자리에서 나보다 더 심한 말을 내뱉곤 한다. 그녀가 장롱면허일 때만 해도 나의 험한 입을 흉보았는데 먼지 쌓인 면허증을 털고 도로에 나선 순간부터 열혈 욕쟁이가 되었다. 적어도 도로 위에서는 말이다. 오히려 그녀의 발끈함에 내가 놀랄 때가 더 많다. 역시 그동안 나는 점잖은 운전자였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같은 입장이 되어야만 상대의 고충을 이해한다. '역지사지'는 책에만 있는 것 같다. 자신이 곤경에 처하지 않고는 남에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는다.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얌체 운전자를 식별하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기도 한다. 앞에서 알짱대는 차량의 꼬락서니만 보아도 그가 왜 그러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몇 초 뒤에 펼쳐질 상황이 생생하게 예측되어 조건반사처럼 그들을 피하게 된다. 몇 초 뒤에 그들의 뒤에서 골탕을 먹고는 욕 한 바가지 퍼부어야 할 위기를 피해 가기 위해서... 이렇게 눈치껏 얌체족을 식별하고 그들의 얌체짓을 예견한 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사회... 우리는 깜빡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것이 어디 도로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깜빡이등이 버젓이 있는데도 이를 켜지 않는 자동차가 대한민국 도로 위를 장악하였는데, 깜빡이등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인간에게 그걸 바랄 수 있겠는가? 사전 신호 없이 들어오는 행위는 주로 막싸움에서만 벌어진다. 복싱도 이종격투기도 공이 울리기 전에 주먹이나 발이 나가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막싸움만도 못한 곳인지 모른다. 도무지 예고가 없다.
상대의 뒤통수를 치려는데 어찌 예고를 하겠는가? 삼국지 전편을 흐르는 통쾌한 승리의 전략은 '매복'과 '기습'이었다. 그리고 그 절정은 다름 아닌 '화공'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전쟁과 같은 세상에 산다. 깜빡이 따위로 상대의 주의를 끌만한 여유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