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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05. 2023

철쭉과 억새 사이

황매산 철쭉을 보고 거제로 향하다

봄에는 철쭉, 가을엔 억새로 뒤덮이는 합천의 황매산 정상 언저리에는 인공의 구조물 같지 않게 주변과 어울리는 관광휴게소가 하나 있다. “철쭉과 억새 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지막한 반원형의 단층 건물 사이로 이가 빠진 듯 뚫려있는 공간에는 철쭉과 억새가 얼굴을 드러냈다. 철쭉제를 앞두고 벌써 꽃이 한창인 그곳에는 평일에도 때 이른 관광객들이 제법 보였다.


거제로 한달살이를 결정하고 5일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떠나는 길에 굳이 이곳에 들러보자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오긴 했지만 흐린 날씨에도 눈호강은 제대로 했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건지 건축가로 명성을 쌓아가는 제 큰아빠의 후광을 기대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오고 싶어 했다. 합천이면 해인사 밖에 모르던 내게는 여전히 낯설고 외진 동네였지만 덕분에 새벽바람으로 떠나왔는데 열두 시간이 다 되어서야 거제 숙소에 도착했다.


서울 윤중로에 벚꽃은 엊그제부터 만개했는데 이 동네는 이미 푸른 잎이 올라오고 꽃잎은 떨어져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벚꽃나무가 많았는지 새삼 놀라울 만큼 황매산 가는 도로변은 온통 흩날리는 벚꽃잎으로 가득했고 아들은 때마침 “벚꽃엔딩”을 틀어주어 나는 봄날의 끝물을 제대로 누렸다. 어제 볼일 때문에 잠시 들른 윤중로엔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는데, 지천에 널린 벚꽃을 두고 왜 여의도로 몰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일 투성이… 내가 복직한 지 1년 만에 다시 휴직을 하고 아들과 거제 한달살이를 하게 될 줄을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내 아들이 6개월 우울증 투병 끝에 학업중단숙려제를 신청하게 될 것을 상상인들 했겠는가? 그러니 이 한달살이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측하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 않으련다. 내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하니 아들과 숙소에서 뒹굴거릴 궁리를 하며 기분 좋게 맥주 한 캔을 마셨다.


해인사 앞에서 구매한 삼재부 염주로 내 삼재해가 무사히 넘어가길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막연하다. 내일 아침에는 아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볼 것이다.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던 내게 이런 날이 오듯 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밤사이 “밤안개”로 유명한 가수 현미 씨가 유명을 달리했다. 퇴원한 지 2주가 되어도 거동이 불편하신 내 어머니와 같은 38년생인 것을 기사를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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