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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n 17. 2024

브라운아웃?

직장인의 3대 퇴출 전조증상

브라운아웃(Brown out)은 전등의 불빛이 수명을 다하여 점진적으로 그 밝기를 잃어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누가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깜빡깜빡 수명을 다한 전등처럼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직장 내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퇴출위기의 직장인을 비유하는 표현이 되어 있었다. 브라운아웃은 번아웃(Burn out), 보어아웃(Bore out)과 더불어 직장인의 위기신호로 분류된다. 나는 공교롭게도 10여 년 전부터 5년 이상 번아웃을 경험했고 그 뒤로 다시 5년간 보어아웃을 지나왔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브라운아웃이 시작된 게 아닐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 현상이 서로 연결되어 일어난다는 가설 따윈 없다. 각각의 특성에 맞게 자신의 상태가 대입된다면 그만이다. 그런데 참으로 요상하게도 나에게는 이 세 가지 현상이 일정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강한 추정을 지울 수 없다. 그 과정을 한번 되짚어 보려고 한다.


번아웃은 모든 직장인이 겪는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직장은 피고용인에게 거저 급여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아웃 증상은 모든 직장인이 갖는 숙명이다. 요령 있고 계산이 빨라 적절한 시기에 챙길 것만 챙기고 잘 빠져나가는 자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도 팔팔한 30대에는 번아웃을 경험하기 어렵다. 일이 많다고 모든 직장인이 번아웃을 겪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 유독 많다는 건 그만큼 조직 내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나에게 번아웃이 시작된 것은 2011년 말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몰려든 업무량은 단순히 부하(load)의 문제가 아니었다. 업무가 갖는 중압감이 나의 정신세계를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임감이나 사명감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 세계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공공부문에서 오랫동안 일해왔지만 공무원의 세계는 나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곳은 겉으로는 평화로운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닮았지만 그 속은 약육강식이 엄존하는 정글이 분명했다.


밤을 새우거나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업무의 과중함을 떠나 내가 개입할 수 없는 세계(그들이 윗분이라 칭하는)에 의해 수시로 나의 사생활이 침탈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거기엔 어떤 배려나 사과의 형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상명하달이 있을 뿐이었다. 복종의 의무라는 법조항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5년의 기간 동안 내가 번아웃의 극한을 경험했던 기억에는 모두 여성의 상사가 등장했다.


성차별적 발언이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굳이 그 두 분의 공통점을 찾았다면 그것은 벼랑 끝에서 돌변하는 쥐의 생리를 모른다는 사실(심지어 나는 쥐띠다)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모두 여성이었을 뿐이다. 나는 20여 년 동안 여러 대책 없는 상사를 만나봤지만 상대의 한계를 모르고 밀어내는 것보다 잔인한 상사는 없었다. 대부분의 포악한 리더도 멈춰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난 지금도 궁금하다. 어떻게 인간이 그걸 모를 수 있는지...

 

그런데 내 직장생활에서의 번아웃은 2017년이 되면서 싱겁게 끝나버렸다. 바로 한해 전까지만 해도 태어나 처음으로 보약을 지어먹을 만큼 나는 직장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나의 번아웃은 깨끗하게 치유되었다. 조직개편이 이루어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개악이라 칭했던 조직개편은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사실 조직 내 권력구도의 마침표와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몸담았던 곳에서는 사람들이 두편으로 갈려 묘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무슨 여야가 대치하는 의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2017년에 이곳에 부임했던 윗분께서 이 권력구도를 깨끗이 정리해 주셨고 그 결과가 조직개편이었다. 내가 속한 부서는 힘없이 주류부서에 편입되었고 덕분에 내 업무는 한결 단순해졌다. 이걸 꼭 개악이라고 해야 할까 싶을 만큼 나는 편해지고 말았다.


나에게 보어아웃이 시작된 지는 7년이 넘었지만 나는 그 중간에 두 차례나 휴직을 감행했으니 실제로는 5년 정도가 흘렀다. 보어아웃이라는 증상이 나에게 두 번의 휴직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업무공백이 크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의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그 지겨움을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금 내가 업무를 대하는 태도는 보어아웃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


브라운아웃은 서서히 온다. 나는 보어아웃을 경험했던 때와 비교해서 좀 더 나를 긴장시키는 업무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번아웃 시기와는 태도나 자세가 달라져 있다. 긴장도가 눈에 띄게 떨어져 있을 뿐이지 업무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물론 그 업무를 그럴듯하게 잘해 내는 동료도 몇 없기에 내 긴장도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늘어난 나이와 짬(?)이 이러한 태도의 문제를 설명해 준다면 나는 베테랑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단정하기엔 내게 아직 결과물이 없다. 나는 그저 늙어버렸고 가끔 깜빡깜빡하는데 그런 내 처지를 배려하는 주위의 시선 덕분에 그럭저럭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게 브라운아웃이 온 게 맞다. 난 이 사실을 판정할 만큼 날카롭지 않지만 이 사실을 부정할 만큼 자신만만하지도 않다. 만약 지금의 내게 브라운아웃이 찾아온 거라면 내게 남은 수명은 5년이다. 그렇다면 5년 뒤의 탈출을 꿈꾸며 이 현상을 즐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갈수록 한심해져 가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이 증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브라운아웃이란 단어의 뜻을 알게 된 지도 몇 달 안되었다. 그 실체를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 그것이 5년의 시한부일지 5개월의 그것일지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브라운아웃이나 보어아웃이나 번아웃이나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을 견뎌내기 위한 직장인의 푸념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뭐라고라도 포장해야 하지 않았을까? 나도 지금 그런 허튼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게 맞다.


목구멍이 포도청일 때엔 아무런 증상도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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