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금기어를 반복하게 되다니...
예의와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말을 하기에 앞서 기계적으로 붙이는 의례적인 표현들이 있다. 이를테면, 실례지만, 죄송한데, 괜찮으시면… 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표현들은 대개 생략하여도 의미전달에 하등 문제가 없을뿐더러 말하는 이조차 그 의미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어떤 이들은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죄송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상대가 괜찮은지 여부와 무관하게 던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본인도 왜 그 말을 앞에 붙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의례적인 표현들은 가끔 더 무례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상대의 의사를 묻지 않을 거면서 이런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쓸 때에는 최대한 의례적이지 않게 쓰려고 노력한다. 즉, 상대에 대한 충분한 배려의 뜻일 때에만 쓴다는 원칙이 있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는 이들은 언어의 품격을 모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격 떨어지는 인간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그런 이들을 나는 항상 경계한다.
거두절미하고, 이런 겸양의 표현 중 직장에서 절대로 쓰면 안 되는 말이 ‘죄송한데, 죄송하지만’이라는 표현이다. 왜 그런고 하니 죄송할 일을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죄송한데 이거 대신해주세요라든지 죄송하지만 이 일을 기일 내에 못했습니다와 같은 말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무언가를 잘못 처리해서 조직에 폐를 끼쳤을 때 죄송하다고 말해 본 적이 없다. 그건 죄송하다고 할 게 아니라 정확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잘잘못을 따져야 할 때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무턱대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조직에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복직하고 2주 만에 나는 입버릇처럼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죄송할 일이 많아지면 일을 못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밥값을 못하는 것이다. 그럼 나가야 한다. 죄송하다면서 버티는 것처럼 흉한 게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흉측하게 변했을까? 나의 복직 이후 불안이 높아진 아들의 우울증이 위험수위에 오른 이후부터다.
나는 남은 연차를 잔뜩 당겨 쓰고 있으며 그것도 수시로 예고 없이 쓰게 되었다. 불가피한 사정을 미리 알려야 하겠기에 나는 이실직고를 하였고, 자식의 일은 많은 이들에게 배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 배려가 오히려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으나 나는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몸은 집에 있어도 밥값은 하겠다는 의지로 버티고 있지만 그마저 힘들겠다는 판단이 선다면 나는 더 이상 조직에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별 대책이 없다. 염치없는 인간이 되어 납작 엎드려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조차 끔찍한 인간이 되어서라도 이 끈을 붙들고 있을지 모른다. 모든 대한민국의 가장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