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와 동행했을 뿐 무임승차하지 않았다(2012.07.31)
미당은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마흔한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분노'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뒤늦은 깨달음의 결론은, 나를 지탱한 격정의 세월이 아쉽고 억울하고 또 허무하다는 것이었다. 어찌하여 지금껏 분노라는 비정상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를 되짚어 보니, 대부분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세상의 편견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기운 빠지고 허탈했다.
반평생 혹은 그 이상을 살았을지도 모를 지금, 이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상태를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제 명에 죽기도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랑스의 마지막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은 분노할 것에 분노하지 않는 청년들을 향해 '분노하라'라고 외치고 있지만, 21세기는 분노하는 젊음을 환영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분노는 태생적인 의욕부진과 게으름을 털고 일어나게 해 준 자발성의 원천이었다. 그 덕분으로 십수 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위치까지 이끌려 왔다. 안타까운 것은 내 남은 생애를 책임질 모멘텀은 더 이상 분노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은 너무도 명확하다. 그 감정으로 남은 시간을 지탱하는 것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와 다르지 않다.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지금의 나는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다. 분노해야 할 상황을 피하거나, 그 상황에 반응하지 않거나.
전자는 세상의 편견에 편승하라는 것이고 후자는 무시하라는 것이다. 지금껏 무시하지도 편승하지도 못했던 내게 남은 선택은 이 둘 뿐이다. 분노하지 않고 무시하는 방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고, 이제와 숟가락 하나 얹고 나도 끼워달라는 식으로 빌어 붙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내게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편견과 싸우며 자리를 지키는 일이 어려운 것은 비단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만은 아니겠지만, 매번 그런 상황에 부딪치는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이를 테면 그들이 원하는 스펙을 갖추고 어떻게든 주류사회의 일원이 되려는 행위를 정당화해 줄 수 없다.
다만, 내 의지와 지향하는 목표가 사회적 편견이 주목하는 몇몇 약점을 보완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당한 수단으로 성장하려는 순수한 의도인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그 혼란스러움을 고민하는 것조차 상식적이지 못하게 된 세상이지만, 난 불량한 의도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행위는 거부하고자 한다.
'시류에 편승하다'의 영어 표현이 'Jump on the Bandwagon'이다. 당당하거나 떳떳하지 않은 행위가 Jump와 연결되어 있다는 게 재밌다.
이 글을 쓴 지 12년이 지난 지금, 지난 10여 년간 나를 키운 게 여전히 '분노'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나는 지난 10여 년간 하나도 자라지 못했다. '분노'가 잠들어버린 내 삶은 성장의 기억을 잊었다. 대신 나는 아주 푸욱 익어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진행형이다. 내가 진정한 발효식품으로 재탄생하기에는 아직 너무 설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