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시기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50대에 접어든 직장인에게 은퇴보다 더 중요한 단어가 있을까? 대부분의 50대는 어떻게든 은퇴시기를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거나, 어떻게든 그 시기를 당기고 싶은 마음이거나 혹은 그 시기가 언제여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마음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쉰을 넘기면서 이 고민에서 하루도 자유로운 적이 없다. 물론 50대에 직장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입을 닫아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인 건 잘 안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얼마 전 기사를 통해 접한 사실이 하나 있으니, 대한민국의 철밥통은 공무원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철밥통이란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의미를 배제하고 남는 공통분모는 아무도 강제로 나의 밥그릇을 깨지 못한다는 뜻일 거다. 10여 년 전만 해도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면 도둑놈)'라는 말이 횡행했다. 공무원을 제외하고 60세 정년보장은 법조문(제도)에서만 존재하는 세계라는 의미였다.
구조조정이니 권고사직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한 건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IMF구제금융을 받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 시기에 우여곡절 끝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40대 중년가장이 한순간에 설 자리를 잃어버리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정년보장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되었는데 최근에는 좀 다른 분위기가 읽히고 있다. 팀장이나 임원 승진을 하지 못한 50대 직장인이 '엘더(elder)'라는 호칭으로 직장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거다.
이 또한 나름대로 노조의 지위가 탄탄한 대기업에 한정되는 얘기인 건 맞다. 몇 년 전부터 대기업에 다니는 매형이 50대에 임원 승진을 못하고도 직장에 남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게 꽤 일반적인 현상인 것을 며칠 전에야 알았다. 그들은 리더(팀장)나 임원이 되지 않았으나 직장에 남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잠시 나도 조직에서 엘더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닌가 고민할 만큼 이들은 나와 동년배다. 이렇게 수모(?)를 감수하고 직장에 잔류하는 50대들은 이런 논리를 내세운다고 한다.
"직장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웹툰 '미생'에 나오는 말이다)
전쟁터에서 산화(?)하면 훈장(?)이라도 남지만 밖으로 나가면 그저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라는 이 눈물겹게 현실적인 판단이 오늘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직장인들로 하여금 온갖 눈치를 보면서도 조직에 잔류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서글프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의 결정을 비난할 자격이 내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조직 내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계층화된 서열이 지배하는 소위 계선(line) 조직에서 어떻게 이들이 생존할지는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50대 초입을 막 지나버린 나에게 능동적인 은퇴는 중요한 화두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은퇴하고 싶지만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고 무책임하게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많은 엘더(?)들도 같은 고민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정년까지 은퇴를 유보할 수 있는 여러 유리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기에 스스로 은퇴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 것은 맞다. 그래서 나는 50대 중후반, 정년, 혹은 그 이후까지 내가 얼마나 더 생계형 근로자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물론 가족들은 내가 어떻게든 더 오래 급여생활자로 버텨주기를 바랄 것이다. 아니 좀 더 가계경제에 기여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고로 나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되도록 빨리 은퇴하고 싶은 나의 욕망을 챙겨야 하는 이해충돌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금의 직장생활이 숨 막히도록 괴롭지는 않다. 그간 내공이 쌓인 덕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이곳이 남들처럼 전쟁터가 아니기에 나는 지옥을 경험하지 않으려 전쟁터를 선택한 그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요 며칠 제법 신박하게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나는 내 체중을 무려 10킬로그램이나 앗아간(덕분에 나의 리즈시절이었지만) 군대에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30개월 하고도 보름을 견뎠다. 현역복무가 26개월로 단축되어 가던 시기에 나는 남들보다 4개월 이상을 더 복무했다.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공군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직장생활 역시 남들의 평균적인 근속기간보다는 더 오래 버텨내야 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군복무기간에 해당하는 개월수를 연수로 전환한 30년 6개월이라는 숫자였다.
사실 아무런 과학적 논리적 근거도 없는 이 숫자놀음에 빠져있는 이유는 내가 은퇴를 간절하게 바라기 때문이고 그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어떤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내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군복무기간 내내 한 달에 한번 나가는 휴가를 바라보며 버텼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얼마나 자유로운가? 30년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이미 8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지 않는가? 군대로 치면 나는 꺾여진 병장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 숫자에 내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