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58일(2021. 6.29)
휴직을 하고 나니 평소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 평일 낮의 한가로운 동네 풍경이나 아이들의 등하교하는 모습들이 대표적이다. 전에도 큰애의 등교를 챙기긴 하였지만 초등학교보다 이른 시간에 움직였기 때문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앞에 조성되어 있는 스쿨존의 아침 풍경을 마주할 기회는 없었다. 요즘은 아이들의 등교를 돕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8시 30분을 전후한 초등학교 앞의 부산한 움직임을 온전히 목격하게 된다.
등교시간의 학교 앞은 과거와 크게 다름이 없다. 알록달록한 옷과 가방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걸어가는 모습은 그냥 바라만 봐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제 만났던 친구들과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 지 여린 하이톤의 목소리로 끊이지 않고 재잘거리며 가뜩이나 번잡한 학교 앞을 소음으로 그득 채운다. 이들을 챙기는 엄마들의 존재도 한몫을 단단히 하는 것 같긴 하다. 몇 년 전 아내 대신에 육아휴직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쌍둥이 남매를 돌봤던 직장 동료가 등하교 시간의 고충을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무심코 흘려들었던 그의 이야기가 새삼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다.
그 복잡하고 시끄러운 학교 앞 등교시간에 새롭게 등장한 분들이 있으니 이름하여 스쿨존 도우미들이다. 주황색 조끼를 맞춰 입고 카우보이 같은 모자를 눌러쓴 이 분들은 똑같은 앞치마를 두른 채 학교 앞 횡단보도를 지키시던 녹색어머니회를 닮았다. 노란색 깃발을 든 채 신호에 따라 보행자와 차량을 통제한다. 그 대부분이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시라는 것을 빼면 말이다.
과거에도 맞벌이에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시는 노인분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그 수가 훨씬 많아져 학교 주변의 횡단보도뿐 아니라 도로와 인도 구분이 모호한 길까지 온통 주황색 물결이다. 나는 순간 이 분들이 순수한 자원봉사는 아니겠거니 하였다. 어떤 형태로든 학교 앞 아이들의 등교를 돕고 위험한 사고를 예방한다는 취지엔 백번 공감하기에 무심코 넘어간 면도 있다.
그런데 이분들의 활동을 거의 매일 지켜보게 되면서 조금씩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민식이법이라고 하는 학교 앞 교통안전 강화 정책은 안타까운 민식이의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진즉에 마련되었어야 할 제도다. 특히 스쿨존이건 마을의 비좁은 길이건 관계없이 질주하는 몰지각한 운전자와 배달앱 시장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배달전문 라이더의 등장을 지켜보면서 그 절실함이 더해졌다.
하지만 현재의 스쿨존 도우미가 그와 같은 학교 앞 안전지킴이로서의 역할에 부응하고 있는지 심히 걱정스러워졌다. 두 달 가까이 이분들을 지켜본 나의 결론은 그렇다. 내가 만나본 도우미 분들 중에는 허리가 안 좋으신지 서있기도 불편해 보이시는 분들이 상당수 있었고 깃발의 사용법을 잘 모르시는 건지 차량이나 보행자로 하여금 신호를 헷갈리게 하여 오히려 더 위험스럽게 하는 경우도 다수 발견하였다.
어릴 적 도시 곳곳에 교통신호등이 완벽하게 구비되기 전에는 큰 도로 교차로에 교통경찰이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도 러시아워에 복잡한 시내에서는 경찰과 택시 기사분들이 그런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분들을 보며 느끼는 공통점은 절도 있고 명확하게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호루라기, 경광봉과 같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면서 그들은 능숙하게 차량과 보행자를 통제한다. 가끔 갑작스러운 도로공사 때문에 차선이 좁아지거나 할 때 등장하는 신호수도 미숙하게 차량을 통제하는 경우 가뜩이나 차량통제로 막히던 차에 대놓고 이들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운전자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내가 지켜본 스쿨존 도우미 중에는 단 한분에게서도 이와 같은 능숙함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분들은 대부분 이런 일에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일을 하기에 너무 연로하셨다. 간혹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을 보았으나 이분들은 대부분 교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두 달이 넘도록 이와 같은 현상을 지켜보던 나는 급기야 오늘 구청 홈페이지에서 스쿨존 도우미 지원사업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스쿨존 도우미는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처우는 최저시급을 적용하여 하루 2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18,000원이었으며 별도로 식대 5,000원이 추가 지급된다. 그리고 4대 보험이 적용되었다. 사업명에도 공공근로사업이라 명시하고 있다. 즉 일자리 지원사업인 셈이다. 현대판 뉴딜이라던 공공일자리 정책의 일환인 듯싶었다. 그런데 과연 제 아무리 2시간짜리 파트타임 근무일 망정 일당 2만 3천 원(식대 포함)을 주는 공공 일자리를 찾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이 사업은 처음부터 대상이 노인분들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시행주체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의문점이 들었다. 이 사업의 취지가 진정 스쿨존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고령사회 대한민국의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지 말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던 것이 사업의 기획의도였다면 지금의 설계는 대대적으로 보수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평가하거나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그것이 심하게는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이전 정부의 기초연금 확대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갖추어지기 전 이른바 산업화 시대를 살아오신 현재의 노인분들에게 변변한 노후대비가 있을 리 없다. 과거에는 자식의 부양의무가 그것을 대체하였지만 내 집 장만도 어려운 젊은 세대에게 부모를 부양하라는 건 너무나 가혹한 짐이 될 수 있다.
이래저래 생계형 일자리를 찾는 노인분들이 많아졌지만 그분들의 일자리는 기계가 대체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공원의 주차요금 정산소는 할아버지들의 차지였지만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무인 정산소가 대세가 된 지 오래며 공공주차장이나 대형주차장은 아예 모바일앱으로 정산하는 곳도 많다. 한 때 주유소에서 급유하는 노인분들이 많았지만 차차 젊은 친구로 바뀌더니 이젠 셀프주유소로 속속 변신 중이다.
오래전에 주유소에서 급유하다가 실수로 상당히 많은 양의 기름을 쏟으신 노인분을 뵌 적이 있다. 그분은 당신의 옷이 온통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이걸 문제 삼을까 봐 근심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런 분에게 차마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없던 일처럼 말없이 주유소를 나섰지만 나는 일에 미숙한 그분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초래한 이 사회가 못마땅하여 불편한 기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단골 주유소라서 자주 뵈었던 그 노인분은 가끔 뒷좌석에 앉은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셨고 나에게 ‘아범’이라는 호칭을 쓰신 적도 있었다.
장황하게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빈곤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일이 되었지만 이미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분들에게 자꾸 일을 시키면서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공공일자리조차 찾기 어려워 폐지를 줍고 무거운 리어카를 끄는 노인분들이 많으시다. 이렇게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계신 분들께 구청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경제활동이 가능한 생산가능 인구는 만 15세에서 만 64세다. 난 이 분류가 적어도 우리의 생체활동을 기준으로 나름 정확하다고 본다. 제발 일할 수 없는 분들께 일자리를 주려하지 말자. 일자리 나누기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에 해결할 문제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땡볕에 내보내면서 그분들을 어르신이라 부르는 건 대체 어느 나라 관습인가?
오늘의 감상,
큰애 학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학교는 다시 문을 닫았다. 우리 애처럼 실기수업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늘 난감하다. 교육청과 학교는 작년 한 해를 시행착오와 책임회피로 일관하더니 올해부터 의욕적으로 전면 등교를 추진하다가 다시 꼬리를 내렸다. 아이는 학교 무용 홀에서 연습조차 할 수없고 결국 학교 근처 연습홀을 대여하여 개인 레슨을 받고 있다. 문제는 학교보다 시설이 형편없는 연습홀이 예약 폭주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약 일정이 안 나오니 오늘은 급기야 새벽 6시 반 레슨이 잡혔고 미리 몸을 풀어놔야 하기에 아이를 한 시간 전에 데려다주었다. 잠을 설친 나는 돌아와 잠시 눈을 부치면 그만이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난 아이는 오늘도 꽉 찬 스케줄이다. 팔순에 리어카를 끄는 모습도 꼭두새벽에 레슨 받는 입시생도 비정상인 건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