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르다는 건 분명해졌다.

by 낙산우공

외향인도 내향인도 아닌 사람들을 이향인(Otrovert)으로 분류하고 있는 책을 우연히 접하고는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뉴욕의 정신과 전문의로 수십 년간 임상경험과 연구를 병행한 작가의 통찰이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대인관계나 사교성에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집단이나 조직에서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느낌이 많았던 내게 이보다 더 명쾌한 해석은 없었다.


이향인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체 지향성의 부재였다. 어떤 조직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집단 속에서 주목을 받고 있을 때조차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학창 시절과 조직생활 내내 겪어 온 내 삶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내가 공동체에 대한 지향성이 전무한 인간이라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런 자신이 괴이한(?) 혹은 이상한 부류라는 자조적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세상이 그런 시선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고 드디어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부류가 소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며 그들의 삶에 강요되었던 온갖 집단주의의 강박이 결코 정당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위로이면서 한편으로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나는 드디어 나라는 인간이 비정상적이고 비뚤어진 감성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과거 13년간 다섯 곳의 직장을 전전하였고 지금의 직장에 정착한 이후에도 13년째 끊임없이 힘겨워하며 내적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끔찍하게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명백해졌다. 나는 드디어 나를 위로하고 나의 삶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이 책이 내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주진 못했지만 나의 지나온 삶을, 그 힘겨운 싸움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아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어졌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버둥거리면서도 나를 지켜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책 덕분에 이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엊그제부터 시작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내가 진심으로 애정하는 몇 안 되는 작품('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의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인 드라마다.


몇 달 전부터 기대를 품고 기다렸던 마음을 위로하듯 주말의 2회분은 나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조직의 속물적 생리를 못 견뎌하면서 꾸역꾸역 현실의 삶을 살아내던 은아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워 연신 코피를 흘리던 와중에 깨달은 한 가지... 숨이 막히지만 한편으로 "싸워 볼 만하다"고 느낀 건 월요일을 맞는 나의 등을 두드려 주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자신의 이름을 홀로 부르고 스스로 대답하던 동만이가 20년간 누적된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고 세상과 맞서기 시작한 2회의 마지막 장면 역시 내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었다. 세상의 시선 따위는 너를 위축시킬지언정 거기에 굴복해야 할 만큼의 정당성을 떨끝만큼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