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의 명복을 빌며...
직장을 다니며 겪는 일 중에는 괴롭거나 분하거나 어이없고 짜증 나는 일만 반복되는 건 아니다. 나름 즐겁게 혹은 유쾌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반응할 일도 없지 않다. 때로는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애잔한 일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부정적인 감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자에게도 말이다.
오늘 아침 갑자기 들려온 부고가 나의 마음을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몰아간 것도 그런 일 중 하나다. 나는 점심을 거르고 잠을 청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이 글을 쓴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OST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나는 한 젊은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며 본인상 부고를 마주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보통은 조부/조모/부친/모친상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오늘로 딱 두 번 본인상 부고를 접했다. 10여 년 전의 첫 번째 경험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이었고 오늘 겪은 건 수면 중에 돌연사를 당한 일이었다. 두 번 모두 나에겐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본인상의 주인공은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분이 아니다. 다만 10여 년 전 첫 만남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 뒤로 오랜 기간 가볍게 업무적으로 연결되거나 직장 내에서 오가다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분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사실 그의 장애 탓이 컸다. 그는 왜소증을 앓고 있었는데 동화 속 주인공처럼 맑고 커다란 눈과 밝고 선한 인상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정장을 갖춰 입은 모습이 흡사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교복느낌마저 줄 만큼 귀엽고 앙증맞았다. 그의 인상과도 너무나 잘 어울렸기에 나는 그를 갓 입사한 신입직원으로 생각했는데, 그때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그는 사무실의 책상이나 의자가 불편하게 느껴질 만큼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였는데 언제나 그런 장애를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가 겪어 온 삶은 나 같은 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수준이었을 텐데 그는 꿋꿋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들도 범접하기 힘든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신체적 장애로 인해 건강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마흔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홀로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는 내내 힘들었는데 오늘 그때와 같은 무력감과 애잔함을 금할 수 없다.
나와는 고작 일곱, 여덟 살 밖에 나이 차가 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그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었고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과 작별한 그의 삶이 너무나 애달파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세상은 어째서 그런 순수한 영혼에게 이토록 가혹하고 짧은 생을 허락한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 Image from ‘천공의 성 라퓨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