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식의 실체(2016. 5. 12)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차별이 없으면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차별 없는 세상은 말 그대로 꿈속에만 있는 것이다. 태초부터 모든 사물과 생각들이 개념화되고 이름이 붙여지고 구별되면서 차별은 존재해 왔다.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고,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고, 피부색을 구별하고,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구별하고, 돈 잘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을 구별하고,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하고, 외모가 뛰어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별하고...
이 수많은 구별들이 나름의 기준에 따라 분류되는 순간 차별은 스멀스멀 능글능글한 낯짝을 드러낸다.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그 다름을 이해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는 생각에서부터 차별적 대우를 하고 싶은 욕구가 발현된다. 저 사람이 유난히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데 왜 그렇지? 아 뭔가 다르구나. 나와 구별되는 무언가 다름이 있구나. 다름이 다름에서 끝나면 차별까지는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다름은 차이(Gap)로 구체화되며 때론 등급화 되고 때론 서열화된다. 그 인식이 차별의 시작이다.
고로 차별적 인식을 차단할 수는 없다. 인간 본능의 영역이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삼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구별과 차별적 인식이 아니라 차별적 행위다. 구분되고 그에 따라 차이 나게 보이는 것까지다.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영역은 말이다. 다름과 차이에 따른 인식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고 즉흥적이고 일시적이다. 따라서 차별적으로 보이더라도 그렇게 대우해야 할 자격이 당신에겐 없다.
차별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이다. 고로 차별하지 말라는 충고는 구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고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말라는 말이다.
어떤 사회에서나 차별은 있다. 그들의 의도는 순수한 구별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구분 짓는 순간 차별적 행위가 수반된다. 학연과 지연으로 구분 짓는 순간 인연의 안과 밖이 나뉘고, 공채와 특채로 구분하는 순간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적 인식이 시작된다. 기수와 서열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는 모든 것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나와 가까운 동류를 찾고 싶어 지지만, 그 모든 구별에서 내 안으로 들어온 사람도 결국엔 남이다.
우리는 어떤 구별기준에 따라 우리로 묶이지만, 그렇게 묶인 우리조차 남이다. 인간이 독립이라는 축복을 받는 순간 고독이라는 형벌도 함께 한다. 독립을 누리며 즐기는 인간들이 어찌 고독이 두려워 다시 무리를 찾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