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덕(2013. 7. 8)
'뜸'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음식을 찌거나 삶아 익힐 때에 흠씬 열을 가한 뒤 한동안 뚜껑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속속들이 잘 익도록 하는 일. 둘째 약쑥을 비벼서 쌀알 크기로 빚어 살 위의 혈에 놓고 불을 붙여서 열기가 살 속으로 퍼지게 하는 한방 치료방법의 하나. 뜻이나 용례는 다르지만 '열'과 관계된다는 공통점으로 보아 어원이 같은지도 모르겠다. '침'이나 '뜸'은 실제 효과를 떠나 심리적으로 큰 안정을 준다. 몸이 별로 안 좋을 때 '침'을 맞으면 왠지 개운하고 거뜬한 기분이 들고, 혹사당하는 것에 비해 관심과 배려에서 자주 소외되는 몸을 소중히 챙겨준 것만 같아 마음의 위안이 된다. '뜸' 치료 역시 평소 받을 기회가 많지 않지만 냄새 자체를 좋아한다.
이렇게 한방치료의 '뜸'이든 밥을 할 때의 '뜸'이든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관용구로 사용되는 '뜸 들이다'라는 표현은 언제부터인가 굼뜨고 미련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과 비난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무슨 뜸을 그렇게 들이나?',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처리할 수 없어?' 등등 신속하고 정확하지 못한 모든 일처리는 이제 '뜸 들이는 일'이 되었다. 밥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 동안 '뜸'을 들여야 한다. '뜸' 들이는 시간을 생략한 밥 짓기는 결국 생쌀을 씹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껏 밥을 잘 지어놓고 마지막 '뜸'들이는 단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해 '밥 짓기' 자체를 망쳐 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뜸 들이는' 사람이 비난받는 사회가 되었을까? '뜸'은 밥을 짓기 위한 마지막의 가장 중요한 단계다. '화룡점정'과도 같은 행위가 바로 '뜸'이다.
관용구인 '뜸 들이다'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나 말을 할 때에 쉬거나 여유를 갖기 위해 서둘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뜸 들이다'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특정한 행위가 아니다. 그저 부작위다. 그런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유 없이 무작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쉬거나 여유를 갖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서두르지 않으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무제한의 부작위가 아니라 '한동안'이라는 적당한 기한이 있으며 '가만히'라는 태도와 분위기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별생각 없이 전후좌우 분간 못하고 제 할 일도 모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에게 '뜸 들이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뜸 들이다'의 고유한 의미를 엄청나게 훼손하는 일이다.
'뜸 들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이 진행되는 맥락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적당한 시간 동안 취해야 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로서 고수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한방의 '뜸'도 밥 짓는 '뜸'도 일하는 '뜸'도 살아 있는 '촉'과 '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달인의 경지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이제 뜸 들이는 이를 비난하지 않던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 뜸 들인다는 표현을 삼가던지 둘 중 한 가지는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뜸'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오고 있다. 충분히 '뜸'을 들여야 될 시기가 돌아오고 있다. 밥할 때 들이는 '뜸'은 조금 오래 들이더라도 밥에는 큰 지장이 없다. 오래 뜸 들여 못 먹는 밥은 없다. 다만, 그것이 짧을 때가 문제다. 그렇기에 '뜸'을 들여야 할 때는 조급할 필요가 없다. 만약 '뜸'을 들이면서 적당한 시간이 되었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면 당신이 들이는 것은 '뜸'이 아니라 막연한 기다림이다. '확신'이 서 있지 않은 기다림은 '뜸'이 아니다. '뜸'은 밥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전제된다. 고로 문제는 '확신'인 거다.
‘뜸 들이다’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프랜차이즈 덮밥집이 나왔다. 이름대로 슬로우 푸드 전문점은 아닌 것 같은데 평이 나쁘지 않아 조만간 주문을 해볼 생각이다. 아무튼 필요한 만큼 뜸은 들이되 굼뜨지 않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