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불길을 잡는 법(2013. 8. 2)
수승화강(水昇火降), 물은 올리고 불은 내려라. 머리는 차갑게 발은 뜨겁게. 차가운 머리 뜨거운 심장... 이런 말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치솟는 근본적인 성질이 있는 탓에 어쩌면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 '수승화강'인지도 모른다. 더 본질적인 면을 파고든다면, 애초에 몸에 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몸 안에 물이 풍부하다면 불이 붙을 일도 없다. 건조한 겨울에 화재가 흔하듯이 인간의 몸도 물이 충분하지 못해 불이 피어날 빌미가 생기고 그렇게 생겨난 불을 진압할 물이 부족하기에 아래에 흐르는 물을 위로 끌어올려 위로 치솟는 불을 내리누르는, 어렵지만 도리 없는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난 한의사도 아니고 음양오행설이나 명리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경험에 비추어 현상을 직관적으로 유추해 본 것으로, 사실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는 이야기다. 이런 '수승화강'을 돕는 것으로 약이나 운동처방을 한다. 요지는 몸에 물을 충분히 비축하면 불이 생겨날 여지도 없고 생겨난 불이 머리까지 치솟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뒷목이 당기다가 충격적인 한방에 절명하는 일 또한 없겠다. 안타깝지만 우리의 삶은 물을 비축할 여유도 없고 기껏 흡입한다는 수분이라는 게 주로 술(알코올)인지라 이미 불이 붙은 물을 들이붓는 격이다. 그렇게 몸속에 화기는 넘쳐나고 물은 발 디딜 자리조차 없이 내몰리고 있기에 '수승화강' 운운하며 살길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몸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게 최선의 예방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승려들은 몸에 불이 들어올 일이 그다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저녁으로 108배 절명상을 하는데, 하루 종일 불덩이가 수없이 드나드는 우리는 절 수련은커녕 열대야 찌는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에 찬물세수조차 기피한다. 불구덩이에서 뒹굴고 산다. 그리고는 수승화강이라니 순서가 틀려도 단단히 어긋났다. 날마다 긴장과 스트레스, 불안과 초조감을 달고 살면서 밤마다 피트니스 클럽을 찾고 주말마다 북적거리는 명산 유적을 방랑한들 당신의 삶은 현상을 유지할지언정 개선될 리 없다. 그렇게 은퇴할 나이를 기다리는 것은 진통제로 연명하며 근본적인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와 다름없다. 불의 침입을 막고 물의 유입을 터주는 것이 '수승화강'보다 한참 먼저다.
몸에 불이 있다면 아래로 내릴 뿐만 아니라 발바닥으로 내보내야 한다. 내보내고 나서는 다시는 들어오지 않도록 방화벽을 쌓아야 한다. 불이 들어왔다면 유입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어 차단하는 게 급선무다. 당신의 몸에 불이 들어오는 길을 알아내는 일처럼 쉬운 것도 없다. 그 길을 막는 게 어려운 결정을 필요로 할 뿐, 우리는 원인을 아는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다. 간암 환자가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은 술에 치명적인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중독된 탓이다. 우리가 '화'의 침입을 차단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올라오는 '화'를 내리누를 궁리만 하는 것은 중독된 탓이다. '화'가 무시로 드나드는 당신의 환경에 중독되었고, '화'는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기 전에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당신의 현실을 구성하는 알량한 '부귀영화(?)'가 무섭게 침투하는 '화(불)'를 용인하는 것이다.
중독의 결과는 파멸이다. 불이 들어왔다고 생각한다면 근본적인 처방을 내려라. 진통제의 치명적인 약점은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약효가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불'의 가장 큰 특성은 확장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뜨거운 불은 또 다른 열기를 찾고 그 열기가 더하여져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을 만든다. 몸에 화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더 뜨거운 것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욕정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당신의 끓어오르는 육체적 욕망이 사실은 몸에 스며든 '불'의 탓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젊음'으로 오인한다. 오인혼동의 결과는 대체로 끔찍하다.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오류지만, 구분하지 못한 결과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10개월의 휴직으로 내 몸에 불이 들어올 길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얼추 막았다. 이제 몸 안에 남아있는 불길을 내리고 그것이 다시 끓어오르지 않게 잘 다스리는 일이 남았다. 그러나 내게 더 중요한 것은 10개월 뒤에도 몸 밖의 불기운을 잘 막아내고 몸 안의 불덩이를 잘 내리는 일이다. 이미 도전은 시작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면서 다짐했던 일들을 하나씩 이루는 것이 내 휴직기간의 중요한 미션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것들이다. 몸은 가볍게, 입은 무겁게, 몸가짐은 부지런하게, 마음가짐은 너그럽게… 이 어려운 것들을 이제 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