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oo, shall pass away(2014. 11. 10)
그 어떤 부귀영화나 쾌락도 기나긴 삶의 여정에서 보면 찰나에 지나지 않고, 극심한 절망과 고통의 나날도 그와 같다는 솔로몬의 통찰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스치듯 다가왔다가 자취 없이 사라지는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은 부질없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영원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그 순간순간의 환희와 고통조차 없이 칠십 평생을 견디기란 어렵다.
아쉽게도 우리가 인용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경구는 주로 현실의 고단함이나 막막함을 견디게 하는 진정제쯤으로 쓰이는 게 보통이다. 영광스러운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그 순간에 조차 다가올 추락을 염려하기에는 대부분의 단맛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다가오는 삶의 부침을 관조하면서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현실은 지나치게 운명에 의존적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행운같이 일어나는 삶의 충만함도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인생의 쓴맛도 온전히 즐기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지나쳐 버리곤 한다.
그러니 이 또한 지나가야 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일 뿐이지.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환희일 수야 있겠는가? 고통과 절망의 순간은 그저 속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기쁨과 행복은 어떻게든 붙잡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통은 생각보다 길게 지속되고 환희는 잡을 겨를도 없이 지나가는 순간이다. 오죽했으면 '환희의 순간'이란 말이 있겠는가. 대부분 지나간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바람처럼 스쳐간다.
고통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순간순간을 견디고, 기쁨은 곧 지나버릴 터이니 짧은 순간이라도 놓치지 말고 즐겨라.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 온 불행과 행복을 대하는 정답이었지만, 우리의 경험이 알고 있듯이 불행은 견딘다고 사라지지 않았으며, 행복은 즐기려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불행이건 행복이건 지나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나감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불행이 닥쳤을 때 필사적으로 헤어 나올 궁리와 실행을 해야 하며, 행복이 닥쳤을 때는 어떻게든 오래 지속되도록 잡아놓을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한,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고통은 당신의 영혼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찰나의 환희로는 그 상처 난 영혼을 치유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