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은 필연인가(2020. 5. 15)
흔히 다 큰 남자를 두고 아이 같다거나 멍멍이(?) 같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딱히 기분 좋게 다가오는 비유는 아니다. 아이 같다는 것은 철이 없다는 뜻이고 멍멍이 같다는 것은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모든 남자를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면 정말 터무니없는 비약이겠지만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꼭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남자는 멍멍이보다 아이 같다는 말을 선호하겠지만, 멍멍이가 가끔은 사람의 지위를 흔들고 모든 미사여구에 접두사로 인용되는 것을 보면 멍멍이도 과거와 같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아이 같다는 말이 비단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의 여자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내 아내는 마흔 줄을 훌쩍 넘어 중반에 들어섰지만 내 앞에서도 심지어 내 아이들 앞에서도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특히 손에 인형을 들고 있을 때는 그 정도가 심하다. 과하게 혀 짧은 소리로 온갖 어리광을 부리기 때문에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 씩이나 다니는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워하지만 좀처럼 변화가 없다.
방송을 보거나 거리에 나가 젊은 여자들을 보아도 그렇다. 일단 말투와 억양이 매우 아이 같은 여자들이 많다. 때로는 귀엽고 상냥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가끔은 거북하고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한다. 결국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 되어도 아이와 같아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아이처럼 단순해지기 쉽고 잘 삐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치매를 동반한 퇴행을 말하는 것이라 요즘의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아이를 닮아가는 면에서는 남녀를 구분할 수 없지만 그 유형이나 성격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정리해 보았다. 먼저, 남자는 말투나 행동에서 아이와 같은 특성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남성성은 예나 지금이나 힘과 능력에 주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 아이와 같은 남자는 어디서든 환영받기 어렵다. 남자들의 유아성은 대개 사고 수준에서 드러난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하게 되는 철없는 남편 말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의 유아성은 어디에서 발현되는가? 백이면 백, 말투와 행동이다. "이랬쪄요~ 저랬쪄요~" 혹은 "OO이 ~하고 싶어요~, ~하게 해 줘요" 하면서 1인칭과 3인칭을 구분하지 않는 말투와 발을 동동 구르거나 검지로 볼을 누르면서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것 말이다. "나, 화났쪄" 하면서 볼을 잔뜩 부풀리고 입을 삐쭉거리는 것 등등... 오죽 이런 양태가 흔했으면 온갖 패러디를 양산했겠는가 말이다.
결정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유아적 퇴행에 대한 반응을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남자는 아이 같다는 말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성숙하지 못하고 유능하지 못하다는 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자는 아이 같다는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 하면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라 한 것은 그들의 사고능력, 말투, 행동을 답습하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진정성 그리고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는 투명한 의식구조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오늘날 과도하게 아이 같은 남자 어른과 여자 어른이 늘어가지만 이는 순수성을 상실한 어른들의 왜곡된 흉내 내기 일 뿐이다. 이야말로 코로나19만큼 무서운 팬데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숙한 고민과 깊이 있는 검토 없이 근시안적이고 본능적인 의사결정이 가져오는 피해는 한 가정 내에서는 감당할 수 있지만 한 사회 혹은 국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아이들의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은 애교로 넘겨줄 법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