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숫자로 평가할 수 없다
한때 우리 사회에 '웰빙'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웰빙. 잘 살기. 좋은 음식을 먹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양질의 독서를 하고, 기타 등등. 그래서 정말로 잘 산다는 건 무엇인가? 웰빙 열풍이 지나가고 경제적 지표는 나날이 개선되었으나 우리 사회가 각자도생,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을 삼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 국가가, 그 국가의 시민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여러 지표가 개발되었다. 대표적으로는 GDP가 있겠다. 생산과 무역을 통해 벌어들이는 부의 양은 꽤 객관적이고, 투명한 지표다. 성장과 발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 유용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숫자는 직관적이고 비교에 용이하다. 하지만 GDP는 정말로 개인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가?
아무리 1인당 GDP가 3만불, 4만불을 넘는다 하더라도 빈자의 삶이 획기적으로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둘이 100을 벌어도 한 사람이 99를 가져가고 다른 한 사람이 1을 가져가면, 이것을 분배와 복지의 개념이 널리 퍼진 2025년에 '잘 산다'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자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1을 가져가더라도 그 사람이 만족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모든 부를 균등하게 나눠 가지는 게 잘 사는 사회의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렇다면 숫자는 진짜로 개인의 삶을 말하고, 개개인이 존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증명해줄 수 있는가? GDP는 인간을 목적으로 두지 않는다. 부, 개발, 성장을 목적으로 두는 지표다. 인간을 목적으로 두기 위해 마사 누스바움은 지금까지 제시된 GDP, 공리주의, 자원 중심 접근법이 아니라 '역량 접근법'을 제시한다.
역량 접근법은 부를 넘어서 삶의 다양한 영역을 고려, 사회정의에 다가가는 방식의 접근법이다. 역량 접근법은 폭넓은 최저 수준의 사회정의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국가에게 도덕적 역할을 요구하며, 도덕적 역할을 다 하는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시민들의 역량을 증진시키기 위해 생산적 기능을 어떻게 키우고 유해한 약점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물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량 접근법에서 이야기하는 평등과 자유의 개념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정교한 공리주의와 어떻게 다르며, 개개인의 욕구를 보장하고자 하는 욕구 중심주의와 다른 지점, 특히 사회정의 이론의 유무나 교육이나 가학적·악의적 요소가 담긴 선호를 누락시킬 수 없다는 지점을 강조한다.
역량 접근법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면 인도의 합리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스토아학파, 자연법 사상, 애덤 스미스, 뿐만 아니라 역량 접근법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까지 폭넓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역량 접근법의 철학적 뿌리를 이해하는 것은 곧 역량 접근법이 무엇에 대항하는지 아는 것과 같으며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전된 근대,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개인이 겪는 문제는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 역량 졉근법은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어떤 맥락 속에서 그 사람의 역량이 제대로 육성되지 못했다면, 역량이 보장되지 못한 이유를 찾고 어떻게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도록 이끈다. 역량 접근법은 사회적 약자, 젠더, 돌봄, 교육, 동물권, 환경, 정치구조, 인간심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평등과 부자유를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누스바움의 시각은 우리 사회에서 성장과 개발 위주 정책이 초래한 문제점을 짚고, 각자도생의 삶을 넘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