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도 환경에 적응하는데

자기 연민의 구렁텅이

by 밤하

내가 온 세상의 불행을 다 짊어진 것 같을 때도 있지. 나는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비참한 영웅이라고 느끼는 거야. 약할 땐 누구나 이런 생각이 정신을 잠식하기 쉬운 것 같아.

예전에 나는 나에 대한 자기 연민이 강했어. 나 스스로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넣어놓고 나오려 하지 않았어.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더더욱 나의 비참함을 부풀렸어. 하지만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고서 내 자기 연민이 잘못된 믿음임을 깨닫게 돼.

책에는 헬렌 켈러가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 하는 장애를 어떤 도움을 통해 극복해 냈고,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떤 기회와 만남들이 있었는지 풍부한 어휘로 기록되어 있어. 내가 말하려는 건

“이런 장애가 있는 사람에 비하면 우린 더 나은 상황이지 않나”

이런 얘기가 아니야.

나는 헬렌 켈러를 질투했어.

나는 헬렌 켈러의 인맥과 기회가 부러웠어.

내게는 그것들이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며, 내가 불행한 건 그것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간사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

내가 만약 헬렌 켈러가 되어 같은 인맥과 기회가 있는 환경에서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 했다면, 과연 만족했을까?

그땐 또 내가 가진 환경의 가치는 모르는 채, 앞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서 나는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인 걸까? 어떤 환경이든, 내가 누가 되든 난 결국 타인을 부러워하며 나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 취급했겠지. 내가 특별히 불행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은 어떤 환경이었어도 불행했을 거라는 걸 알게 되자 충격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왔어. 그래, 내 환경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였던 거야.

사실 지금도 여전히 나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해. 하지만 이제는 부러움과 연민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 부럽기는 해도, 각자가 가진 환경 속의 가치가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알아. 내가 가진 환경의 가치를 알고, 최대한 이용하고, 그에 대해 감사하며 사는 게

나라는 사람으로 태어난 상황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인 것 같아.


내가 가진 가치가 무엇인지 다 정리해 보자.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가치부터,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의 가치까지. 그 후에 최대한 그 가치를 잘 이용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내가 가진 걸 알고 감사히 여기게 돼.

속물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게 현실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동물들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인간으로서 환경을 부정만 하는 게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노력 정도는 해야지.

이전 11화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