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속에서 피어난 감사

기적 혹은 축복

by 밤하

사람은 언제 화가 날까.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나는 이해받지 못할 때도 화가 나는 것 같아.

하지만 너무나 철저하게 나의 입장을 외면당하는 경험을 한 후로는
이 기준을 내려놓는 게 현실적이라는 걸 알게 됐어.

이해받지 못해서 화가 난다는 건
내 안에 이런 법칙이 있었기 때문일 거야.

‘상황과 감정을 상대가 이해해 주는 것은 도리이다.’

특히 상대가 어른이라면 그는 더욱더 이해심을 보여야 한다는 이미지 박스를 씌우게 되는 것 같아.

내가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에 대해 회의적이 된 시기를 들려줘도 될까.


할머니와 둘이 살던 시절,
할머니는 허리 수술을 하러 입원하셨고,
나는 혼자 할머니 집에서 지내며 미용실에 인턴으로 출퇴근을 했어.
어른들은 할머니가 다시 집에 오실 날을 준비하고 있었나 봐.

어느 날, 미용실에서 구박받으며 일하고 늦은 밤 집에 들어왔을 때였어.
방에 있던 내 짐들이 전부 꺼내져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어.
특히 속옷이 들어 있던 서랍까지 서랍장에서 꺼내져 밖에 나와있었는데,
그걸 옮긴 사람은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외삼촌이었어.

사전 이야기도 없이, 내 물건들이 뒤집혀 있는 집에 들어섰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내 속옷을 외삼촌이 봤다는 수치심에 나는 분노를 느꼈어.
또한 이제 겨우 쉴 수 있는 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집 정리를 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내 마음을 눌렀어.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당혹감을 말하자 외삼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어.

“바쁜 삼촌이 와서 네 짐을 대신 옮겨줬으면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당시 어른들은 모두 비슷했어.

나 역시 얼마 없는 휴식시간을 쪼개가면서 할머니 집을 관리했고,
할머니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다 드렸고,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어.

하지만 어른들은 더 철저한 모습을 기대했고 나에게 어리광은 허락되지 않았어.

숨이 막혀 친구들과 놀기라도 하는 날에는,
“할머니가 아픈데 놀고 싶니? 당장 집에 들어가서 할머니 챙겨드려.”라는 말을 듣거나,
“할머니 등골 빼먹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더 처신을 잘하라는 압박을 받았어,

“저도 힘들어요.”
라는 나의 작은 투정에,
“찡찡거리지 마.”라는 말 대신
“많이 힘들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야 할 때잖아. 조금만 더 수고해줘.”
라는 격려 한 번만 해줬다면 나는 바로 수긍했을 거야.
단지 “우리 힘내자.”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말했던 “힘들어요.”는 더 큰 갈등을 불러왔어.

어디에서도

나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호소할 수 없었어.
이해를 원할수록 더 짓밟혔어.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 내가 힘들 만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을 때,

나를 다그치는 대신
말 뿐이라도 나에게 쉼을 허락해 주었을 때,

나는 감사하는 마음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어.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오고 준비해 온 것처럼
뇌를 거치지도 않은 말이 입 밖으로 바로 나왔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해받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누군가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어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다양한 가치관이 버무려진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건,
그리하여 나의 외로움을 감싸준다는 건

기적,
혹은 축복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전 23화별이 존재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