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커튼을 치는 법

현실이 너를 무너지게 한다면

by 밤하

네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너를 집어삼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고 느낀 적이 있어?
그럴 때 넌 어떤 행동을 취하니?

나는 그럴 땐 커튼을 쳐버려.


내가 아직 사회적으로 이룬 게 하나도 없던 시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시도해 보던 시절, 한 해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때 나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어.


내가 미용실에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너져가고 있을 때, 할머니가 허리수술을 받게 돼.
엄마보다 더 엄마처럼 느끼던 할머니가 큰 수술을 받게 된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슬픔과 불안으로 던져버리기 충분했어.


수술 날, 나는 할머니랑 영영 못 볼지도 모르는데 미용실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또 울었고, 미용실에서는 공과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꾸중을 들었어.


한동안 할머니가 없는 집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얼마 후 할머니가 다시 돌아오셨어.
하지만 수술이 잘못돼서 할머니는 전보다 더 고통스러워하셨어.
갑자기 찾아오는 신경을 찌르는듯한 고통에 할머니는 종종 소리를 지르셨고, 나는 할머니에게 가서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걱정 어린 말을 건넸어. 그럼에도 할머니는 고통 속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셨어. 내가 왔다는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지.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할머니를 걱정하든 안 하든, 할머니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데 내 마음은 무너져간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어.
어느 날부터 나는 할머니가 소리를 질러도 내 방에서 잠을 자게 돼.

매 순간 할머니를 걱정하는 건 내게 너무 벅찬 일이었어.


그때부터인 것 같아.

내가 집중할 목표가 있을 때는 일부러 주변을 향한 집중을 꺼버릴 수 있게 된 게.

부모님이 어떻게 살건, 언니나 동생이 어떻게 살건, 심지어.. 할머니가 응급실에 가고 수술을 다시 받아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어.

누군가는 이런 나를 욕했어. 어떻게 할머니가 응급실에 갔다는데도 얼굴 한 번을 안 비출 수가 있냐고.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내가 응급실에 간다고 해서 아픈 할머니가 낫게 되는 게 아니잖아. 할머니는 항상 그것 때문에 아팠는데 그때마다 걱정을 표현하기엔 내겐 감정적 여유가 없어.’
그래서 할머니껜 죄송하지만 난 그때 아무렇지도 않았어.

가게를 준비하고 있었고, 가게를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로 머리가 가득 차있을 뿐이었어.

이미 나아가야 할 길이 있는데, 나를 무너뜨리는 현실의 여러 부면들을 하나하나 깊게 들여다보고 일일이 반응하게 되면,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될 게 뻔하잖아.
마치 처음 할머니가 수술받았을 때 나의 반응처럼.
그렇게 나는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커튼을 치게 돼.


지금의 가게를 차리기까지 여러 고비가 있었지.
아픈 할머니, 가깝게 지냈었던 아는 언니의 이른 죽음,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가정형편, 그리고 한 번 실패한 가게오픈.

이때 주위로부터 괜찮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 사실 괜찮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괜찮았어.

그저 내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들에만 집중했고 덕분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목표 하나에 신경 쓸 일도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대다수지.

현실을 커튼으로 가려둔다는 것이,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도망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까지 눈앞에 펼쳐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너를 무너뜨리는 현실이든, 빛의 그림자처럼 함께 오는 실패의 두려움이든.

모두 커튼을 치자.
네가 가려는 길은 성공의 길이니, 주저앉게 하는 현실과 실패 쪽은 바라보지 마. 성경인물인 베드로도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는 물 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자마자 가라앉기 시작했잖아.

그러니 아직 목표에 닿지 못했는데 네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파도가 있다면, 그 파도가 보이는 창쪽의 커튼을 내려버리렴.

언젠가 네가 마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다시 커튼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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