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를 배워가는 시간
나는 지금 부끄러움을 품은 채 글을 쓰고 있어.
너무너무 창피하지만, 이 또한 내가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이기에
내가 대가를 잘 치룸으로 이 순간이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릴 뿐이야.
나는 나의 약점이자 단점을 잘 알고 있어.
그건 바로 내 안에 품은 생각과 경험들을 말하고 싶어 한다는 거야.
단점이라기보다는 미숙함이야.
이 재료들을 잘 다룰 수 있다면 멋진 요리를 만들 수 있지만,
잘 다루게 되기 전까지는 정련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나를 다치게 하는 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지.
나는 약할 때일수록 내 혀가 독이 될 것을 알면서도 통제하지 못해.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계속 품고만 있다가는 내가 견디지 못할 거라고 느끼나 봐.
결국 내 안의 모든 단어들을 마치 빨래를 짜내듯 짜내고서야 입을 닫고 허탈함과 창피함에 몸부림치게 돼.
질주하던 자동차가 전봇대에 부딪혀 멈추는 것처럼.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래도 내가 부끄러워한다는 거야.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건 뭐가 잘못됐는지를 안다는 것이고, 그건 내가 전보다 나아졌다는 뜻이니까.
이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말을 많이 하는 게 정말 안 좋은 거야?'
사회 분위기는 말 많은 사람을 푼수로 여기며 말이 없는 사람을 더 존중하지만, 나는 말 많은 게 왜 문제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
주변 어른들은 말을 하지 말라며 나에게 주의를 줬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조언은 잠시 동안만 나에게 죄책감을 지어줄 뿐 나를 통제하지는 못했어.
더욱이 평소엔 조용하지만 대화만 하면 밉살맞은 말로 화를 돋우는 어떤 친구를 보며, 차라리 조금이라도 어릴 때 말을 많이 해보면서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어. 그래서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게 단점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자신감을 갖게 되기도 했어.
그러나 말이 없는 그 친구와 나를 비교해 보며 완전히 느껴버렸어.
말이 없으면 중간은 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야.
비록 그 친구가 나에게 한 말들은 단순히 ‘사회성이 없다’로 넘어가기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말들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을 모르기에, 그저 말 없는 아이로 보고 있어.
나 역시 그 친구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기 전에는 조용하고 배울 게 많은 아이로 알고 있었단다.
반면 나는 말을 통해 귀여움을 받기도 하고 분위기를 밝히기도 했지만, 말로 쌓아 올린 평판을 말로 깎아내렸어.
컨디션이 좋을 때는 적당한 양의 말을 하며 사람들과 교류할 줄 알지만, 컨디션이 나쁠 땐 내 안의 깊고 어두운 이야기를 쏟아냈고 내 사생활들을 떠벌렸어.
말을 함으로 짐을 덜어내고 싶었지만 오히려 물먹은 솜처럼 마음은 더 무거워지기만 했지.
모든 걸 공개하는 나와는 다르게 내가 친해지려는 친구들은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는데,
과거에는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숨기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보며, 벽을 세우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게 오히려 단점으로 보였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 친구들이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어른스러운 아이들이었다는 걸 깨닫고 있어.
이제야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되도록 모르게 하는 게, 모름에서 오는 존중을 얻게 되는 일임을 마음으로 알게 되는 것 같아.
그동안 아무리 주위 어른들이 말해줘도 모르던 걸 이제는 알게 됐다는 건,
이제서야 내가 말을 줄일 준비가 됐다는 뜻일 거야.
나의 말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이자 이해받고 싶은 갈망"이었어.
나를 알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나는 창피함과 낙담을 느끼는 중이야.
하지만 지금의 창피함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을 얻기 전의 “내면의 요동기”일 거야.
흙이 가라앉은 계곡물은 굳이 얼굴을 안으로 들이밀지 않아도 그 안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내면의 요동기를 지나 평온을 얻게 될 때가 오면, 굳이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이어질 수 있는 법을 알게 되겠지.
말을 많이 해도 괜찮아.
그건 실험을 하는 단계야. 어떤 말이 너를 더 외롭게 만들고, 어떤 말이 통하는 말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인 거야.
하지만 이 방법에는 약간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단다.
잠깐 동안 떠벌이로 알려져서 사람들이 너에게 무언가 말하기를 주저하게 만들거나,
네가 말한 너의 이야기가 너를 뒤에서 공격하는 칼이 될 거야.
네 안의 말을 스스로 흘려보내기가 어렵다면, 직접 부딪히면서 실험하되 이런 부작용을 감당하면 돼.
그러다 보면 흘러넘치던 말들이 안에서 맑게 가라앉는 시기가 오게 될 거야.
그렇게 숙성된 말들은 양은 줄었으나 깊이가 더해져 있을 것임을 나는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