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좋은 오징어

더 이상 씹히지 않아

by 밤하

나는 한 때 맛 좋은 오징어였어.

나의 상태,
나의 결정,
내가 흘린 말 한마디까지
모두 안주가 되던 시절.

이야기가 마르면
사람들은 내게 다시 찾아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어.
내 사업은 어떤지,
내 가족은 어떤지.

그 눈은
따뜻한 관심의 눈이 아니라
집요한 호기심의 눈,
먹이가 더 있는지 살피는 눈.

내게 예민한 주제를 꺼내
일부러 날 울게 만드는 사람,
내가 괴롭기를 바라는 사람.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들리는 대로 믿어버리는 시선들,
본인들의 판단에 나를 끼워 맞추는 이야기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설명은 벽에 부딪히고
나는 그들의 서사 속에서
이미 역할이 정해진 광대.
내가 말해도 들리지 않고
진실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

“아니에요..”

지겹다.

억울함도,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이제는 다 지겹다.

이제는
내 삶을 설명하지 않고 싶어졌어.
정정하지도, 해명하지도 않을래.

씹는 말은
낯선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아.
나를 안다고 믿는 사람들,
조금 들었다는 이유로
전부 안다고 착각하는 자리에서 가장 빨리 자라지.

내 삶의 안 쪽을 보이지 않는 일은
먹이를 주지 않기 위한 선택,
다시 씹히지 않길 청하는
조용한 기도.

나는 기억해.
그래서 더 이상
그들의 식탁 위에 오르지 않을 거야.

그냥 조용히 가라앉을래.
시선을 거두고,
말을 아끼고,
그렇게 홀로 기도할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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