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어쩌다보니 2024년의 마지막 날은 한산한 카페에 앉아서 편지를 쓰며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12월 31일이라는 날이 가진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달력의 유래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이름을 딴 태양력, 낮이 가장 긴 날과 낮이 가장 짧은 날 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등을 기준으로 변화하는 자연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어떤 날, 그 주기를 찾기 위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마음이 원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려면 지구가 몇 번의 공전을 더 해야 할까, 그 아득함에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올해를 떠나 보내야할 것 같습니다.
지난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하자면 오랜만에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킥복싱 선수들의 경기 일정을 함께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꽤 규모가 큰 중요한 경기였던지라 한국에서부터 걱정과 떨림이 지속되었습니다.
일본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보니 아뿔사, 제게 가장 중요한 안경을 빼먹었지 뭐에요, 시력이 기록적으로 나쁜 저는 활동적인 낮 시간에는 콘텍트 렌즈의 도움을 받고, 저녁에는 두꺼운 안경을 쓴 소녀가 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밤 특유의 시간에 녹아들어 쉬어야 하는데, 안경이 없는 3박 4일은 낮이 지속되는 백야와도 같은 시간 속에서 머무는 느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환장하게 피곤했습니다.
정신적인 피곤함과 안구의 뻑뻑함이 맞물려 있는 와중에 의사소통의 불편함까지 겪을 때는 조금 예민해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특별한 순간이다.' 라는 생각으로 피구왕 통키 주제가를 틀어놓고 치바현의 해변가 달리면서 즐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경기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한명은 이겼고 한명은 졌습니다. 이긴 선수는 몸이 많이 상했고, 진 선수는 멀쩡합니다. 그 만큼 더 속이 쓰리기도 할 것 같습니다. 몇 달 전, 이번 경기에서 진 선수에게 '시합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링 위에 올라가면 주체할 수 없는 아드레날린이 나와 짜릿하다거나, 온 세상이 내 것과 같다는 그런 종류의 대답을 기대했는데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링 위에서 내려올 때 오르기 전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 이라는 대답을 듣고 한 인간의 확고한 신념과 단단함이 느껴져서 겸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이번 경기가 끝난 후에는 함부로 위로할 수 없는 마음으로 그냥 가만히 지켜보았답니다. 멀리 타국에서 별일 아닌 것처럼 다 함께 먹고 마시며 그 순간에 같이 머무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얼마 전 현아님, 나현님, 다능 선생님과 함께 송년회 모임을 가졌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멀리 갈 수 없는 현아님의 사정으로 간단하게 같이 다능 선생님이 이끄는 주말 요가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고 헤어졌죠.
다능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반대로 매콤했던 아사나 덕에 땀을 꽤 흘렸던 한 시간의 수업 동안 제 앞에 앉은 현아님의 뒷모습을 틈틈이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다 사람의 뒷모습을 볼 때 어깨 위에 지워진 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보는 저 짐은 실체인가, 온전한 상상의 산물인가, 혹은 내게 지워진 짐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종종하고는 하는데 수업 시간 동안 현아님의 뒷모습에서도 어떤 무거운 짐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힘이 느껴지는 안정되고 견고한 아사나를 보면서 마음속의 걱정을 한줌 정도는 덜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가의 아사나는 분명히 삶에 닿아있고 또 닮아있으니까요.
이대역을 지하철역의 한 정거장으로 지나쳐본 적은 꽤 있지만 직접 걸어서 구석구석 돌아다닌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는데요. 현아님 나현님이 학창 시절 자주 갔다는 샤브샤브집과 커피집을 방문하면서 지금은 가끔 여사님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나현님(이 대목을 읽고 정말 크게 웃었습니다), 현아님의 스무 살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꿈이 아주 많을 것 같은 앳된 얼굴과 의욕적인 걸음걸이가 저절로 그려져 웃음이 났습니다. 타인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면서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은 보통의 애틋함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다능 선생님의 희한한 계산법이 생각나네요. 본인이 이끈 요가 수업에 본인은 수업료를 내지 않아 돈을 아꼈으니 점심을 쏘는 것이 맞다는 기가 막힌 논리에 사실 밥을 얻어먹게 되어 황송한 마음보다는 유쾌함이 더 컸답니다.
저는 가끔 제가 정글 피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강이나 바다에 살다가 뜻하지 않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정글에 떨어진 물고기처럼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점점 말라가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낯설음으로 인해서 머리 깎고 산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하곤 했습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친구나 연인들은 ‘지금은 파마한지 얼마 안돼서 아까우니 조금 더 있다 깎고 들어가라’ 같은 가벼운 위로의 말로 저를 말리곤 했습니다.
그런 경쾌한 발걸음 같은 위로들은 저에게 물 한 동이를 부어준 것 같아서 말라가고 있던 피부와 아가미에 잠시 동안의 촉촉한 숨을 불어넣어주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질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 인생의 한 부분은 사찰에서 살면서 보내기도 했지요, 그리고 얼마 전엔 훨씬 더 멀고 깊은 사찰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요, 노을 지는 곳이 멋지다는 그 곳은 꼭 가보고 싶던 곳이기도 했고, 올해 유난히 지쳤던 마음에 간절히 바랐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아주 짧고 깊숙이 고뇌했는데요, 문득 ‘말라가는 물고기 같던 내게 여러 사람들이 꾸준히 부어준 물로 지금 머무는 이곳이 작은 못이 되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진 않아도 나만의 몸짓으로 헤엄칠 수 있는 보금자리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한 존재이진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미치게도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길고 길었던 사춘기의 방황 같은 가출 또는 출가 고민을 마치고 좋아하고 애틋한 사람들 가까이 머무름으로서, 그리고 요가를 통해서 위로 받고 위로함으로써 살아가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차마 위로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딱 알맞은 위로를 보낼 수 있는 이에게도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위로를 보내면서 2024년을 마무리합니다.
세 분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성장지향형 오너 나현님에게 2025년의 목표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시즌2 표지 그림 : 지혜롬 作, 樂]
[글 사진 : 이지선 作, nama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