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너무 늦게 왔다

단편소설

by 삼태성

현진은 공항에 너무 일찍 왔다. 백팩에 여권이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서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미루고 미루다 아침에 급하게 짐을 싼 탓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챙기지 않은 게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걸 다 챙겨도 언제나 빠트리는 건 있기 마련이었다. 늘 그랬다. 중요한 것이었던 것 같은데 도통 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면세품을 찾고 커피를 한 잔 샀는데도 비행기를 타기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다.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평일 오후 공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공항에 와도 마음이 들뜨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커피를 테이블에 세워놓고 저 멀리 비행기가 걸리게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하나둘 하트가 눌렸다.


인증 사진을 찍는 것 말고도 공항에 오면 현진이 꼭 하는 일이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방향은 유지하면서 가장 많이 환승해서 가는 경로를 찾는 일이다. 구글맵과 스카이스캐너를 켜놓고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도 가지 않을 경로를 찾고 나면 오늘 탈 비행기가 가장 짧은 거리로 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어디를 경유해 갈 때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현진이 찾은 경로보다는 짧았다. 방향 말고는 원칙도 없는 현진이 만든 놀이였다. 중국에서 국내선을 계속 갈아타게 해 횟수를 늘리기도 했다. 보자. 이번에는 일단 상해로 갔다가 홍콩을 갔다가 호찌민까지 가고. 상해에서 타이베이를 갔다가 홍콩을 가면 한 번이 더 늘겠다. 호찌민에서 어디 가지. 쿠알라룸푸르 갔다가 바로 목적지로 갈까, 싱가포르를 들렀다 갈까. 인스타그램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이 떴다.


「어디가? 부럽다~」


민희였다. 현진이 비행기 티켓을 끊고 올린 사진에 댓글을 달아놓고도 민희는 그새 잊은 것 같았다. 아니면 현진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저 그때그때 현진의 일상이 달라진다 싶으면 뭐 하는 거냐고 댓글이 달렸다. 현진은 민희가 자기보다 먼저 결혼한 줄 몰랐다. 결혼식에 정말로 올 줄도 몰랐다. 대학 친구들이 그렇듯 휴학하고 졸업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그사이에 연락 수단은 카카오톡으로 바뀌었고 전화번호를 모르는 애들은 기억에서도 지워졌다. 현진은 번호를 아는 친구들만 초대해 모바일 청첩장을 주면서 시간이 되면 한번 보자고 했다. 그때 누가 민희를 채팅방에 초대했다. 서너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찍은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현진은 자신이 아는 임민희가 맞는지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현진은 4학년 1학기에 민희와 같은 수업을 들었었다. 민희는 현진보다 휴학을 많이 해서 3학년 1학기였다. 민희는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민희가 또 휴학해서 소식을 몰랐다.


「공항이심?」


이번엔 예슬의 메시지였다. 현진은 대답 대신 다른 걸 물어봤다.


「너도 민희 알지?」

「알지알지. 인스타에 자꾸 떠서 걔 맞나 들어가 보니까 맞더라. 난 걔가 결혼했을 줄 몰랐어. 벌써 애도 있던데.」


인스타그램은 팔로우의 팔로우까지 추천해주었다. 현진이 민희를 팔로우해서 예슬의 인스타그램에 민희가 추천으로 떴을 것이었다. 민희는 예슬에게는 팔로우를 신청하지 않았다. 현진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감사 전화를 돌리다가 민희가 생각났다. 전화번호를 몰라 와줘서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민희가 바로 답장했다. 우리 한번 봐야지~


「우리 한번 보자~」


인스타그램 알람이 또 울렸다. 반년 전이나 지금이나 민희는 자꾸 보자고 했다. 그래, 한번 보자. 현진은 성의 없는 답글을 달았다. 현진은 민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없었다. 민희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예슬이 야근이 늦어진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꼭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서 파란색 택시를 타라고 했다. 스튜어디스에게 소화제를 받아먹었는데도 현진은 공항을 나갈 때까지 속이 답답했다.


“다음 주에 콘서트 갈래? 다음다음 주도 괜찮고.”


현진은 남편이 마트 좀 다녀오겠느냐고 하는 줄 알았다. 사업상 알고 지내는 공연 회사 대표가 자신이 기획하는 콘서트를 보러 오라고 했단다. 가려면 출장으로 가야 하니까 일이 커져서 한번 보자 한번 보자하고 이때까지 못 갔어. 이번엔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일이 바쁜 남편은 이미 현진에게 여름휴가를 같이 보내기 어렵다고 했던 터였다.


“다음 주는 멜버른, 다음다음 주는 타이베이랑 자카르타에서 할 거래. 한 군데만 골라봐. 가는 김에 여행도 하고. 노트북 가져가서 작업도 해. 노천카페에 앉아있으면 저절로 그림이 그려질걸.”


현진이 거절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여행할 때 태풍이 와서 아쉬웠는데 타이베이나 다시 갈까. 멜버른 가려면 한 번은 경유해야 할걸? 이참에 도시 몇 개 묶어서 동호주 여행을 해 볼까. 하지만 현진은 거절하고 싶었다. 남편의 제안에는 현진이 이미 계획한 일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한 단계도 없었다. 현진은 자신이 동네 마트 가듯 언제든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갈 정도로 한가해 보이나 싶었다.


“그럼 예슬이 있으니까 자카르타로 할게. 한번 놀러 오라고 했는데 잘됐네.”


현진은 근처 마트 중에 제일 가까운 곳으로 고르듯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벌써 친구들 채팅방마다 들어가서 자카르타에 간다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남편에게는 원래부터 가려고 했던 것처럼 말했다. 예슬은 작년부터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한국 회사의 자카르타 지사였지만 일 년은 근무해야 한국에 나올 수 있었다. 예슬은 현진의 결혼식에 오지 못했다. 그가 늘 자카르타에 놀러 오라고 했지만, 채팅방에 있는 누구도 가지 못했다. 예슬은 주말에 쇼핑센터 가는 것 말고는 낙이 없다고 했다. 남편이 예슬의 것까지 콘서트 티켓을 두 장 구해놓겠다고 했다.


남편이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 현진은 자카르타 여행을 검색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한 사람들이 후기를 쓸 때 그 나라 수도 정도로 언급한 블로그가 많았다. 불교 유적으로 유명한 족자카르타를 가기 위한 경유지이기도 했다. 자카르타라는 도시만을 여행한 후기는 거의 없었다. 예슬처럼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말에 들른 맛집이나 카페를 추천하는 글만 몇 개 나올 뿐이었다. 자카르타 여행을 위한 책도 없었다. 2주 후에 이곳에 간다. 검색 첫 페이지에 나오는 모나스 타워라는 길쭉한 건물을 캡처해 비행기 이모티콘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곧바로 예슬이 댓글을 달았다. 님 뭐임? 자카르타 옴? 민희도 달았다. 너 어디야? 여행 갔어? 부럽다~


예슬이 말한 날개 그림이 그려진 파란색 택시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자기 차에 타라고 손짓하는 호객꾼을 지나 택시 줄에 섰다. 유심을 끼우자마자 예슬의 메시지가 왔다.


「공항 못 가서 미안하다. 이놈의 혐생. 뭐를 위해서 이토록 일하는 것이냐.」

「잘 갈 거니까 걱정 마. 호텔가서 전화할게.」


날개 마크가 그려진 조끼를 입은 남자가 택시가 오는 대로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 현진의 차례가 오자 그는 현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파란색 택시 뒤에 서 있던 흰색 택시를 가리키며 타라고 했다. 그 택시에도 비슷한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조끼 입은 남자가 기사에게 뭐라고 말하니 기사가 내려서 현진의 캐리어를 택시에 실었다. 나는 왜 파란색 택시가 아니지? 앞에 중국 남자는 분명 파란색 택시에 태웠는데. 의아했지만 현진은 줄을 서느라 다리가 아파서 시키는 대로 탔다. 기사가 택시 문을 닫자마자 미터기를 천으로 가려버렸다.


“뭐야? 미터기를 왜 치워?”


현진은 황당해서 한국말이 나왔다. 기사는 미터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돈 니드 미터라고 연거푸 말했다. 꺼져 사기꾼 새끼들아. 욕이라는 걸 알아들었는지 현진이 택시 문을 쾅 닫고 내리니까 트렁크를 열어줬다. 현진은 내려서 파란색 조끼 입은 남자를 째려봤다. 남자는 현진을 향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 다른 사람과 교대해 사라졌다. 현진은 줄을 다시 섰다. 일행 없이 혼자 서있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 여자 혼자 서 있는 사람은 현진뿐이었다.


「파란색 택시가 거의 국영 택시 급이라던데 이건 또 무슨 일. 회사 사람들한테 말했더니 그런 경우는 처음 듣는대.」


다시 택시를 탈 때 현진은 택시 색깔과 마크를 여러 번 확인하고 탔다. 구글맵을 띄워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계속 확인했다. 기사가 돌아가지 않고 지도가 찾은 대로 잘 가고 있었지만 현진은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호텔에는 새벽 1시가 넘어 도착했다. 현진은 씻고 나오자마자 머리도 말리지 않고 호텔 침대에 누웠다. 피곤이 몰려와 침대 속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피곤이 현진의 불안까지 꺼트리지는 못했다. 현진은 공항에서부터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렸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사기를 당할 뻔했지만 돌아온 건 아니잖아. 분명 그랬지만 인천 공항에서 찾아본 것 같이 상해로 갔다가 홍콩으로 갔다가 호찌민에 갔다가 빙 돌아온 것 같았다. 피곤했다.


「시내에서는 그랩 타고 다녀. 그게 더 편함.」

「좀 겁난다.」


답장은 그렇게 보냈어도 현진은 앱 스토어에서 그랩 앱을 찾았다. 새로 깔 필요 없이 작년에 하노이 여행 갔을 때 깔아놓은 앱이 그대로 있었다. 앱 후기에 인도네시아는 그랩 회사에서 기사들을 관리한다고 택시만큼 안전하다고 나와 있었다. 기분이 나빠서라도 택시는 타고 싶지 않았다.



자카르타 시내에서는 차가 없으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었다. 인도나 횡단보도가 잘 닦인 편이 아니라 가까운 거리도 걸어가기 불편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나 외국인이 혼자 이용하기에는 위험할 것 같았다. 자카르타에서 그랩이 왜 필수라고 하는지 현진은 그랩으로 잡은 차를 타고 가면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진이 목적지로 입력한 카페 앞에는 아무리 봐도 횡단보도가 없었다.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현진은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차는 카페 건너편을 지나 한참을 가다 유턴을 해서 카페 건물 앞에 세워주었다. 예슬이 말했던 게 생각났다. 우리나라였다면 밥을 먹고 차도 근처에서 마시겠지만, 자카르타에서는 차 타고 가서 밥 먹고 또 차를 타고 카페에 가야 해.


「이래서 여자 혼자 여행하는 건 위험해~ㅠㅠ」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렸다.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택시 사진과 함께 어제 있었던 일을 올렸고 첫 댓글은 역시 민희였다. 이래서는 무슨 이래서야, 어제는 부럽다며. 현진은 민희가 보낸 물결표시에 짜증까지 밀려오는 것 같았다. 너는 절대 혼자 여행하지 마~ㅠㅠ 나는 우리 신랑이랑 딸이랑 가야지ㅠㅠㅠㅠ 현진이 답글을 달자마자 민희는 기다렸다는 듯 답글을 달았다. 임민희 너는 제발 인스타그램 좀 안 터지는 데로 가라. 현진은 민희 딸이 등원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밑에 모두가 보라고 댓글을 달고 싶었다.


카페에는 세 테이블 정도 여자들만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인지 히잡을 두르고 있었다. 다 똑같이 오믈렛과 토스트가 나오는 메뉴를 먹고 있었고, 덕분에 현진도 세 테이블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것으로 주문을 마쳤다. 카페에 다른 손님들처럼 브런치 사진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았다. 벌써 민희가 어떤 댓글을 다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혼자 먹는 거야? 한국에는 언제 와?


현진은 그랩을 타고 국립 미술관에 갔다가 그랩을 타고 그랜드 인도네시아 쇼핑몰에 갔다. 여주에 있는 아웃렛처럼 큰 건물 두 동에 쇼핑할 수 있는 상점이 가득했다. 거기 있으면 종일 나갈 필요가 없다는 예슬의 말이 실감 났다. 현진은 한국에도 있는 브랜드의 상점과 히잡을 포함한 전통 의상을 파는 상점을 구경하고 마트가 있다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내일은 호텔 조식을 먹지 않고 과일 같은 것으로 간단히 때운 후 예슬을 만날 계획이었다. 마트에 가족끼리 장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 번째 가족을 지나쳤을 때 현진은 눈치챘다. 남자들이 카트를 끌고 물건을 담고 있었고 히잡을 두른 여자들은 옆에 서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도 있었지만, 장은 남자가 보는 것 같았다. 중국도 주로 남자들이 장을 본다던데 뭐 그런 건가. 현진은 어떤 남자 옆에서 요구르트를 꺼내며 생각했다.


일요일은 콘서트를 보러 가는 날이라 현진이 예슬과 여행할 수 있는 날은 예슬이 쉬는 주말 중 토요일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예슬은 일찌감치 현진이 묵는 호텔 로비에 와 있었다. 한국에서 신청해놓은 투어의 가이드가 호텔로 둘을 데리러 왔다. 현진과 예슬이 신청한 투어는 가이드와 전용 기사를 두고 반나절 동안 돌아다니는 프라이빗 투어였다. 1인당 8만 원이 넘어서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고급 투어라니. 자카르타에서 별걸 다 누린다고 예슬이 말했다. 누린다. 현진은 자신이 8만 원을 어떻게 지불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카드를 긁었던가. 그 카드가 자신의 카드였던가, 남편의 카드였던가. 예슬이 내 덕에 너가 호강하는 거라며 으스대자 현진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자카르타에 처음 놀러 온 친구니까 예슬이 함께 하는 여행 경비는 다 낸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기사가 관광지에 내려주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나왔다. 뚝뚝 끊기는 영어였지만 그럭저럭 대화를 이어나갔다. 현진은 이스티크랄 사원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다. 자카르타 정보를 검색하면서 기도에 열중한 여자의 사진을 봤었다. 여자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현진도 그렇게 절실히 기도해보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해보리라 생각하면서 도착한 사원은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북적였다. 신발을 보관해준다면서 돈을 받아 가는 사기꾼이 많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가이드가 없었으면 달라붙는 사람들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 같다고 현진은 가이드와 함께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원 입구는 잡상인과 사기꾼, 신도가 섞여 시장 같았지만, 기도장은 엄숙했다. 예슬이 반바지를 입었다고 신발을 갈아신을 때 직원이 가운 같은 것을 주었다. 예슬이 가운이 전통의상 같다고 입자마자 사진부터 찍어달라고 해서 직원이 웃었다. 기도장에서는 현진과 예슬같은 외국인들이 저들끼리 소곤대는 소리 말고는 기도하는 소리만 들렸다. 기도장이 5층까지 있었다. 천장은 커다란 돔으로 덮여 있었다. 가이드가 돔 지름만 해도 45m라고 안내했다. 둘은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움직였다. 현진은 기도장 한쪽 구석에 히잡이 아닌 몸 전체를 천으로 두르고 기도하는 여자들을 발견했다. 현진이 봤던 사진의 여성이 쓴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여자들의 수는 기도장의 5분의 1도 되지 않았고 벽 옆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


“저것은 부르카입니까? 저 여자들이 쓴 것.”

“부르카는 눈까지 가립니다. 저것은 니캅입니다. 여자들이 기도할 때 입습니다.”


현진이 가리킨 곳에서 기도하는 여자들은 몸 전부에 천을 두르고 눈만 내놓고 있었다. 화려한 천이었지만 현진의 눈에는 여자들이 붕대에 둘둘 감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저 사람들은 니캅을 썼나요? 히잡이 아니고.”

“기도를 더 열심히 합니다. 혹은 결혼한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과 몸을 가리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궁금했지만 현진의 영어는 거기까지였다. 여자들이 가리는 것이 신의 뜻인 나라이니 가리면 가릴수록 신에 가까이 가게 되는 걸까. 가이드 말을 듣고 예슬이 보탰다.


“회사에 인도네시아 사람들 보면 결혼하기 전까지 히잡 안 쓰고 다닌다는 사람도 있더라. 하지만 결혼하면 써야 한 대. 결혼하면 남편 외에 남자랑 절대 닿으면 안 된다고. 마트에서 카트도 남편이 밀고 다닌대. 다른 남자가 만진 물건에 닿지 말라고.”


예슬의 말을 들으며 현진이 인상을 쓰자 가이드가 쳐다봤다.


“우리나라의 종교적인 문화입니다. 당신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사원에서 길만 건너면 가톨릭 성당이 있었다. 무슬림의 나라에서 사원과 마주 보는 성당은 인도네시아의 종교적 화합을 상징한다고 했다. 가이드와 들어선 성당 안에서는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례로 보이는 신부(神父)가 단상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국처럼 신부(新婦)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신랑은 검은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신부와 신랑이 한쪽에 앉아서 주례 말을 듣고 있었다.


“보통 결혼식은 얼마나 길게 하나요?”

“3시간 정도 합니다.”


현진이 그래서 앉아있구나라고 하자 가이드가 말을 이었다.


“끝나고 홀로 이동해서 가족들과 손님들과 파티를 합니다.”


현진은 자신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신부대기실에 40분 정도 앉아 있다가 결혼식 하느라 20분 정도 서 있었다. 그것도 고생스럽다고 생각했다. 저 신부는 결혼식을 3시간 하고 피로연을 몇 시간 하고 히잡을 쓰겠구나. 가이드와 헤어지고 저녁을 먹은 후 현진과 예슬은 각자 그랩으로 차를 찾았다. 자카르타에 온 지 이틀 만에 현진은 제법 차를 잘 잡았다.


콘서트가 끝나고 현진은 올 때처럼 그랩을 켰다. 콘서트장을 나온 몇 만 명의 사람들이 차를 호출해 대고 있었다. 앱이 금방 먹통이 됐다. 우선 콘서트장을 벗어나 보기로 하고 둘은 오는 길에 봤던 쇼핑몰로 가기로 했다. 콘서트장을 벗어나자 곧 앱이 돌아갔지만 아무리 돌려도 그들을 태워줄 차를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현진은 인도에 걸터앉았다. 휴대폰에 또 차를 찾지 못했다고 팝업이 떴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현진은 머리가 멈춘 만큼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예슬이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가로등이 없어서 사람들 실루엣만 보였다. 열댓 명이 나무 밑에 서 있거나 앉아있었다. 옆에 있는 오토바이도 대충 사람 수와 맞는 걸 보니 그들은 그랩 오토바이 기사 같았다. 저거라도 태워달라고 할까? 예슬이 말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어떻게 가. 여기 사람들은 가도 나는 못 가. 오토바이는 현진과 예슬이 같이 탈 수도 없었다. 아무도 히잡을 쓰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현진은 더럭 겁이 나서 다시 일어났다.


“그랩 돌리니까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 콘서트 끝나고 70% 정도 남아있었는데 순식간에 3분의 2가 날아갔어.”


현진의 휴대폰은 자카르타에 와서 여행자용 유심을 끼워서 데이터만 사용할 수 있고 통화는 되지 않았다. 통화가 되는 예슬의 휴대폰이 꺼지면 그들은 정말 모르는 곳에서 고립될지도 몰랐다. 예슬은 아무래도 휴대폰을 새로 사야겠다고, 요즘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버린다고 했다. 배터리가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는 현진의 휴대폰으로 계속 차를 찾았다. 절전 모드로 바꾸자 휴대폰 화면이 너무 어두웠다. 글씨체도 단순한 것으로 바뀌고 앱도 버벅거렸다.


“현진이 너는 왜 자카르타까지 와서 고생이냐.”

“콘서트는 내가 오자고 했어.”


현진은 말을 하다가 킥킥 웃었다. 생전 처음으로 가본 동네에 버벅거리는 휴대폰을 들고 언제 숙소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웃겼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차가 자주 지나가서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길을 볼 수 있었지만, 점점 차가 적어져 여의치 않았다. 어두운 도로만 따라서는 걸어가기 힘들었다. 현진은 듬성듬성 가로등 사이로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가다가 배터리가 아까워 꺼버렸다. 어두운 휴대폰 화면에 차를 찾지 못했다는 글씨만 겨우 보였다. 현진과 예슬은 보이지 않는 것만 보이는 깜깜한 길 위에 있었다.


“요즘 왜 인스타에 그림 안 올려?”

“글쎄…….”


작년 여름에 현진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5년을 다녔지만 현진의 직급은 주임에서 멈췄다. 동기들은 진급하거나 대리로 이직했다. 현진은 기다리면 자기 차례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직급만큼이나 연봉도 오르지 않았다. 현진은 딱 혼자 살아갈 만큼 벌었다. 혼자 살아갈 만큼만 버는 건 아무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 돈이 모이지 않았다. 3년 사귄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도 현진은 결혼할 돈이 없다고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몇 번 올렸다. 현진의 일상 사진보다 좋아요가 더 많이 눌렸다.


“네 그림 좋았는데. 결혼하니까 바쁘지?”

“그런 건 아닌데…… 복잡해.”


도로에 차가 거의 지나가지 않았다. 가끔 지나가는 차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니 그랩으로 부른 차인 것 같았다. 현진은 계속 앱을 돌렸지만, 번번이 차를 찾을 수 없다는 팝업만 뜰 뿐이었다.


「제이슨이 찻잔 잘 받았대. 낼모레 공항에 나가 있을까?」


현진의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티켓을 전해준 직원에게 작은 선물을 들려 보냈다. 자카르타에 와서 남편의 심부름 하나만은 무사히 완료했다. 배터리 표시가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현진은 말없이 예슬에게 휴대폰을 보여줬다.


“충전기는 챙겼으면서 보조 배터리는 왜 안 가져왔을까. 안 되겠다. 룸메이트한테 전화해볼게. 나보다 여기 더 오래 살았으니까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우리 돌아갈까?”


예슬은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현진을 쳐다봤다.


“일단 여기서 올 때 봤던 맥도날드까지 가는 차를 찾아보고, 되면 타고 가서 또 거기서 밥 먹었던 이온몰까지 가는 거 찾아보고. 이런 식으로는 차가 잡히지 않을까?”

“야, 우리가 지금 최단 거리로 가려고 해서 안 되는 거야? 그냥 안 되는 거지.”


예슬은 좀만 버텨보라며 먼저 쇼핑몰로 뛰어갔다. 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쇼핑몰의 문은 전부 닫혀있었다. 현진이 닫힌 유리문 너머로 콘센트를 보고 있었다. 충전이라도 하고 싶었다. 예슬은 충전기 꽂을 데가 있는지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보러 갔다. 이제 배터리가 1%밖에 남지 않았지만 현진은 아직도 메시지창을 보며 남편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현진은 고마워라고 썼다가 지웠다. 자기 대신 콘서트 가준 건데 내가 남편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나 아직도 호텔 못 갔어. 한국에 있는 남편이 여기 경찰서에 신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밥 먹었어? 나도 못 먹었는데.


「그림 여전히 좋네~ 나 학부 때부터 예술은 네가 할 줄 알았어.」


인스타그램 댓글 알람이 울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민희가 한 달째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현진의 그림 계정에까지 가서 기어코 댓글을 달았다. 현진은 민희 댓글에 답글 달기를 눌렀지만, 그 순간 휴대폰이 꺼져버렸다.


다음 날 현진은 공항에 가기 전에 예슬의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얻어먹기로 했다. 둘은 꾸닝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34도에 습한 날씨였지만 에어컨도 켜지 않은 레스토랑이 시원했다. 유리창이 열려있어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 쪽에 담배를 피우는 남자 두 명이 앉아있었고, 더 안쪽에 커플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앉아있었다. 둘은 그들과 떨어진 자리로 안내받았다.


“내가 포기했어 봐, 우린 지금 어디 있겠어?”


예슬은 하품을 하면서 현진을 타박했다. 어젯밤에 예슬은 쇼핑몰 주위를 돌다가 청소부를 만났다. 휴대폰 충전기를 보여주면서 인도네시아어 몇 단어로 사정을 했더니 청소기용 콘센트를 알려주었다. 예슬의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그랩을 30분 더 돌려서 드디어 그들을 시내에 데려다줄 차를 찾았다. 자신을 호텔에 먼저 내려다 주고 갔으니 예슬은 아마 몇 시간 못 잤을 것이라고 현진은 생각했다.


“너 임민희랑 친했어?”

“아니.”


현진은 썰고 있던 스테이크처럼 딱 잘라 말했다.


“그럼 네 인스타에 임민희 댓글 지분율 뭔데.”


현진도 민희가 갑자기 왜 자기에게 친한 척을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는데 예슬의 말을 듣고 현진도 궁금해졌다.


“임민희가 어떤 타입이었더라. 아싸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현진은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민희는커녕 자신도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예슬에 대한 것 하나가 기억이 났다. 예슬은 비혼이란 말이 없을 때부터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어쩌고저쩌고하는 친구들에게 제발 자기에게는 결혼을 하고 싶은지부터 물어보라고 했다.


현진이 레스토랑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여자가 히잡을 벗고 있었다. 히잡 안에도 두건 같은 것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여자는 손수건을 두건과 머리 사이에 넣어 땀을 닦았다. 현진이 손을 닦고 핸드타월을 뽑으려고 하자 여자가 살짝 비켜주었다. 현진이 영어로 고맙다고 멋진 패션이라고 하자 여자가 싱긋 웃었다. 자리로 돌아가면서 현진은 레스토랑을 찬찬히 살펴봤다. 담배를 피우던 남자들도,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도 반팔을 입고 있었다. 웨이터도 더운 기색이 없었다. 현진도 예슬도 덥지 않았다. 창문이 열린 레스토랑에서 히잡을 두른 여자만 더웠다.


공항으로 가던 현진은 5만 루피아를 더 주고 이스티크랄 사원으로 차를 돌렸다. 전부 채워도 기도장의 5분의 1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여자들을, 기도하는 여자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 사원 앞에 내리자마자 사원을 안내해주겠다는 사람, 신발 넣은 봉지를 사라는 사람, 기념품을 팔려는 사람들이 현진에게 들러붙었다. 막상 오기는 했지만, 현진은 혼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진은 잡상인들을 피하다가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여자 무리를 발견했다. 슬쩍슬쩍 쳐다보는 게 느껴져 현진이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학생이고, 입고 있는 옷은 교복이라고 알려주었다. 케이팝에 대해 몇 마디 오간 후 왜 계속 여기 서 있냐고 묻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린다고 했다. 현진도 기다렸다가 그들과 같이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사원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부 남자였다. 가이드와 구경할 때만 해도 신도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원에서 나오는 남자들은 지난번 봤던 기도하는 여자들의 5분의 1 자리까지 가득 메우고도 넘칠 것 같았다. 학생 중 한 명이 남자기도 시간이 끝나서 이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가 현진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사원에서는 여전히 남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공항에 너무 늦게 왔다. 현진은 남자들이 다 나오기를 기다려 학생들과 사원에 들어갔지만, 외국인은 1층 기도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당했다. 2층부터는 갈 수 있지만, 돈을 받는 안내원과 동행해야 했기 때문에 현진은 도로 나왔다. 그랩을 잡아 사원 앞에 도로를 빠져나가는 데만 30분이 족히 걸렸다. 늦을 수밖에 없었다.


「너 아직도 한국 아니야? 여행 너무 길다고 남편이 뭐라 안 해?」


민희의 알람이 울렸다. 현진은 화가 치밀었지만 궁금했다. 민희의 전화번호도 없었고 한국 유심을 끼우기 전까지 어차피 전화를 할 수 없어서 보이스톡을 눌렀다. 통화연결음이 열 번 넘게 울리고 나서야 민희가 받았다.


‘여보세요? 너 한국 왔어?’

‘임민희. 나한테 왜 그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너 왜 갑자기 친한 척해? 우리 대학 때도 안 친했잖아.’

‘응? 우리가 왜 안 친해. 내 주위에 결혼한 사람 너밖에 없잖아. 야, 우리 남편 왔다.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민희는 세상에 모든 남편을 신경 쓰느라 바빠 보였다. 탑승 수속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현진은 공항에 오면 꼭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았다. 환승해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탑승 줄에 섰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민희를 차단해버렸다.


「오면 말해주려고 했는데 근질거려서 안 되겠어. 나 과장 된대. 너랑 나랑 언젠가 태어날 우리 아기랑 세 사람 몫 하려면 더 열심히 돈 벌게!」


현진의 남편은 세 사람 분을 벌 수 있었다. 남편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현진은 지난밤에 남편에게 못했던 답장을 마저 썼다. 나오지 마. 나 기다리지도 말고. 현진은 공항에 너무 늦게 왔다. 하지만 탑승 줄에서 빠져나와 환승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 현진은 생각했다.




표지 사진 :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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