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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예리 Nov 20. 2023

마음에 하늘나라가

3. 순동이

1969년 봄  

일곱 살 나는 구릉진 언덕에 자리한 플라스틱 공장 사택가 성결교회에서 개설한 유치원에 다닌다. 정오에 유치원이 끝나면 나는 신작로와 시장통에 사는 친구들과 희뿌연 횟가루와 곱돌로 도배된 공장 길 따라 집을 향해 걷는다. 저만치 삼각 모양의 회색 기와지붕의 갑촌역 관사가 그림처럼 보이는 신작로의 끝이자 공장길 어귀에 이르면 우리는 갑촌 극장 앞 광장이 펼치는 작은 골목길 향해 걷는다. 골목길 입구에 위치한 신화 약국에 이르면 우리는 약국 외벽을 따라 안쪽으로 형제당 빵집과 조일 양복점, 은진네 집, 일선당 책방이 나란히 극장 앞 광장을 바라보는 아침에 친구들과 '안녕!'하고 만났던 그곳에서 '잘 가! 하고 헤어진다.


나는 갑촌 오일 장날이면 싸전이 펼치는 극장 앞 광장을 지나 삼포쌀집과 2층짜리 극장 외벽 사이로 난 골목길(극장 골목길이라 부름)로 걷는다. 시야 앞으로 시설물에 파란색 칠한 아이스케끼 집이 보인다. 극장 골목길을 나오자 아이스케끼 집 오른쪽으로 창포집(갑촌 오일 장마다 옷감 물들이는 집)과 행산댁 막걸리 대폿집, 명주실타래와 좀약 및 옷핀 등 각종 생활품을 판매하는 새탈말가게와 나란히 장판, 창호지, 벽지 및 종묘 씨앗과 종류의 농약 판매하는 풍년상회를 지나 갑촌 시장통  중심부에 자리한 우리 가게 안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모님은 여는 날처럼 장꾼들이 맞이에 바빠 있다. 나는 오늘도 투명인간이다. 풀이 죽은 채 쌀가게 문지방을 너머 빵 종류가 진열된 식료품 진열대 통로 따라 전방이 훤히 보이는 안방의 세 짝짜리 유리 미닫이문을 지나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는다.  발등에 만화 판박이 박힌 기차표 빨강 운동화를 벗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놓고 사랑방 마루에 오르며 어깨 가로질러 맨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벗어 들고 일어나 두 짝의 사랑방 문을 드르르 왼쪽으로 열고 들어간다. 나는 마주한 벽을 향해 놓인 앉은뱅이책상 위에 가방을 놓는다. 배꼼 선까지 달린 하늘색 세일러 유치원복 앞자락 똑딱단추 하나, 하나, 똑, 똑 따 벗어 철사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 놓는다. 그리고는 방바닥에 앉아 흰 팬티 타이즈와 씨름해 벗어 사랑방 마루 오른쪽 이층 다락방 첫 계단 모서리에 놓아둔 하늘색 원형 플라스틱 방 걸레통에 넣는다. 다시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가게 건어물 유리 진열대 향해 한 쌍의 봉황새가 새겨진 어머니의 두 짝짜리 자개장롱에서 흰색, 감색 이중 수직 줄 가라 (모시처럼 뻣뻣한 합성 마 종류의 옷감) 무늬의 H라인 원피스가 손에 잡힌다. 나는 이 원피스 입기를 벌써 며칠째다.


이 원피스를 구입한 사연이 있다. 어느 저녁나절이었다. 나는 밖에서 놀다 막 집에 돌아와 샘터에서 씻던 중이었다. 어머니는 샘터 콩나물광에서 호박색 플라스틱 바가지로 콩나물시루에 물세례를 주고 있었다. 불쑥 큰언니가 나타나서는 무슨 속옷을 구입한다며 불 먹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큰언니는 그날인지 그 주 공일날인지 신작로 양품점에 같이 가자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그 무슨 속옷인지가 몹시 궁금했고 또 신작로 양품점도 호기심이 가득했으므로 순순히 따라나섰다.


'서울 양행' 양품점은 신작로 갑촌 미용실과 명시당 시계방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양품점 밀당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두 발자국 앞에 내 키높이의 윈도케이스다가갔다. 진열장에는 속옷과 흰 메리야스와 내복 상자가 위아래로 진열돼 있었다.

'어서 와! 성복이 학생.'

유리 진열대와 한 발자국 사이로 창호지 방문이 열리자 양품점 아주머니가 상냥한 목소리와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반쯤 열린 방문 사이로 상다리 세 개 달린 둥근 양은상을 두고 그녀와 밥 먹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의아할 만큼 하얀 피부와 작은 얼굴과 손발을 가진 아주 빈약한 모습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여자아이가 신체 발육이 느린 무슨 성장장애병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과 여자아이가 나와 동갑내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단 한 번도 말해 본 적 없는 여자아이의 김은영이란 이름이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다.     

신작로 향해 양품점 유리 밀당문과 윈도우 케이스를 제외한 양품점 삼면의 내부 벽은 온통 초록 그물망 도배로 종류의 옷들이 걸려있다. 큰언니는 바로 유리 진열대로 다가갔다. 진열대에는 쌍방울, 백양 상품의 내의 상자와 흰색, 옅은 분홍색 팬티와 브래지어가 한 묶음씩 진열돼 있었다. 큰언니는 유심히 상단 모서리에 진열된 비닐 액정으로 커버된 얄팍한 상자 속의 살색 내용물에 시선을 두었다.

'아줌마, 뜯어봐도 돼쥬?'

'그-럼, 성복이 학생'

아줌마는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말투로 큰언니 앞으로 상자를 꺼내 상자 속 비닐 액자 덮개를 열어 내용물을 펼쳐 보였다. 나는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큰언니가 아침 등교 때마다 그것과 씨름하느라 통근 밥을 걸러 할머니에게 지청구 먹기 일쑤던 바로 올인원인지 거들인지 였다. 큰언니는 살색 올인원과 거들 하나씩 구입했다. 아줌마가 포장하는 동안 나는 양품점 삼면의 벽에 진열된 옷가지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그때 원피스 하나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그거, 시방 서울에서 한참 유행하는 복고풍 원피스여, 순딩이 입으면 엄청 이쁠겨.'

아줌마는 친절하게도 유행정보까지 알려주었다.

'야-아 입어봐!'

나는 큰언니 말투에 기분이 나빠지려는 걸 애써 누르고는 들릴듯 말듯 한 목소리로 대꾸를 하고 입었다.

'아이고, 영락없는 순딩이 옷일세'

'아줌마, 순딩이 입은 체로 우리 엄마 보여주고 와도 되죠.'

'아, 그럼 되고말고.'


그렇게 구입한 원피스다.

나는 사랑방 마루턱에 걸터앉아 땅바닥에 고개를 떨군 체 슬리퍼를 신을까 코빼기 고무신을 신을까 잠시 망 설리다 고무신에 발을 넣는다. 그리고 종류의 빈 병들로 가지런히 세워 모아 놓은 안채 샘터 장독대 따라 시멘트 담벼락 좁은 통로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환타, 칠성사이다, 두꺼비표 이홉들이 소주병과 무엇보다 가을철에 수확한 참깻잎과 들깨잎 털어 참기름과 들기름 짜 넣을 대자 장종병을 모아 두고 있다. 이따금 할머니는 엿장수 오는 날에 말랑말랑한 엿가래와 바꿔 내게 주기도 한다.  


나는 이  빈 소주병 하나 들고 샘터 빗장 대문을 통해 별채 안 당으로 나가자 창회와 훈표가 딱지놀이하는 광경을 성주가 웅크리고 앉아 보고 있다.

'시냇가 갈 사람?'

대답이 없길 잠시 '나아' 하고 창회가 말한다.  

시냇가는 시장통 우리 집에서 120미터 거리에 있다. 우리는 별채  맞춤 시멘트 담벼락 경계로 대한통운 트럭이 지날 수 있는 골목길에서 왼쪽 태미네 벽돌집과 나란히 자리한 사씨네 대장간과 맞은편 우리 밭 철조망 울타리 맨 끝자락에 자리한 시장통 공동변소와 신작로 영흥 전파사집과 황씨아저씨 고가의 집 담쟁이 끝자락에 이르자 연 노랗게 물든 모자이크식 논배미가 우리 앞 양쪽으로 펼쳐있다. 우리는 양쪽 논베미 사이 좁은 샛길 따라 걷는다.  나는 잠시 멈짓 서서 찡그린 얼굴로 하늘 향해 바라본다. 너무 맑아 아득한 파란 하늘에 둥둥 떠있는 뭉실구름이 이동하는 광경을 보노라니 모든 사물이 빙빙 도는 것이 어지러워 쓰러질 듯 말 듯 자빠질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른들 말처럼 저 높은 하늘에 하느님이 있다는 천국이 정말로 있는 모양이다. 그러지않고서야 흰 뭉실구름이 어떻게 움직이겠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순딩이 언니, 뭐해? 빨리 와아!'

두 사내아이와 앞질러 가는 성주가 외쳐왔다.

'어, 가고 있어.' 외쳐 대답하며 나는 재촉해 걸었다. 저편에서 달려오는 급행 열차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어느새 시야 앞으로 쐑 하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창회형! 우리 매미 먼저 잡으러 갈까?'

'멍청아, 매미채 없이 매미를 어떻게 잡아?'

'우아기 벗어 잡으면 되잖아.'

'야, 매미가 널 잡겠다.'

양쪽으로 펼친 논베미 샛길 따라 걸어 나오자 폐허의 낡은 교회건물 앞으로 흐르는 시냇가의 수양버들 가지가 축 늘어져 한들거린다. 우리는 개울 둑 풀더미 속에 벗은 신발을 숨겨놓고 개울물로 철벙 소리내 들어갔다. 발 담근 개울물 수면의 높이가 종아리에 닿았다. 종아리가 간지러웠다. 나는 하얀 모래알이 훤히 보이는 개울물에 허리 굽혀 개울물에 얼굴 담그려 듯 드리웠다. 수초 표면 위로는 하루살이가 날아다녔다. 창회가 수초 속으로 발을 철퍽철퍽 소리내 휘저어 뭔가를 잡아 손바닥에 놓고 뚫어지게 관찰하고 있는 훈표에게 이런 곳에 송사리가 많이 숨어있다며 언성을 높인다. 아래 빨래터에서는 빨래방망이 든 동네 아줌마가 흙탕물 일으키지 말고 썩 나가라고 외쳐왔다.

'야, 살살해야지 마구 휘저으면 어떡해?"

나는 창회에게 불만을 토한다. 개울물에서 나와 풀 둑에 벗어놓은 고무신을 양손에 집어 들고 쪼르륵 아래 개울물로 내려간다. 나는 송사리를 잡을 참이다. 고무신 한 짝은 풀 둑 위에 놓고 다른 고무신 한쪽 들고 개울로 들어갔다. 개울가 가장자리에는 내가 아는 미나리, 말금 자리와 이름 모를 수초들로 무성했다. 고무신 쥔 오른으로 쓰윽 수초 표면을 헤치자 줄행랑치는 미꾸라지가 뱀인 줄 나는 기겁을 한다.

'와-아! 와-아!' 훈표가 탄식하며 외쳤다.

'창회형, 여기 송사리 진탕 많아. 빨리 이리 와 봐아!'

훈표는 조금 전 일을 의식했는지 얼른 나직한 소리로 바꿔 말한다. 머리가 아파왔다.

'성주야 나 머리 아파 집에 갈래.'

자주 두통을 앓는 내게 할머니는 가장 더운 오후에 밖에서 노는 걸 말렸다.

'머리가 갑자기 왜 아파? 아까 빨래터 아줌마가 지른 고함소리 때문이야?'

'몰라. 나아 집에 갈래. 너무 아파 토할 것 같아. 너는 재네랑 천천히 와.'

'싫어. 나도 언니 따라 그냥 집에 갈래.'

말하는데도 머릿속이 웅웅 거리며 아팠다. 개울 둑에 벗어놓은 고무신에 담은 개울물에 하나, 둘, 세 마리 송사리와 붕어 한 마리가 수영하고 있다.  소주병에 한가득 담긴 개울물 속에 두 손 모아 조심스레 한 마리, 한 마리 옮겼다. 나는 이때쯤에 물고기가 펌프물 보다 개울물에서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너무 아픈 두통은 손가락으로 집어 병에 넣고 말았다. 개울물에 풍덩 넣어 고무신을 헹궈 신었던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엄청 먼거리처럼 느껴졌다. 


안채 빗장 대문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좋아하는 배호 노래가 들렸다. 아버지가 전축을 틀 때는 딱 한 가지 이유다. 한여름 오후에 졸음이 쏟아질 때다. 성주는 장독대 그늘진 항아리 옆에 고기병을 놓았다. 여름철 내내 샘터 펌프 물로 가득 채워 있는 목욕탕 외벽에 등지고 잠시 웅크리고 앉았다. 콩나물광 외벽 왼쪽 하단에 세워 놓은 양은 세숫대야를 샘바닥에 놓고 목욕탕 물 수면에 떠 있는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로 세숫대야에 쏟아 부었다. 샘터 수챗구멍 난간 위에 놓은 하늘색 비눗갑에 '럭키'라고 새겨진 빨랫비누와 함께 놓은 노란 동산유지 다이알 세숫비누로 얼굴, 목, 팔뚝에 칠을 하고 거품 내어 닦은 후 치맛자락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 허벅지 사이에 물리고 손아귀에 버거운 노란 다이얼 비누로 조심스레 양손으로 굴려 무릎에 쓱쓱 문지르며 오른쪽 왼쪽 번갈아 다리를 헹구는 나를 보고 성주가 똑같이 따라 한다. 장독대 위로 매달린 빨랫줄에서 우리 각자의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두통은 희한하게 사라져 버렸다. 


부뚜막 왼쪽 연탄 고래에 올려진 양은솥에서 하얀 김이 올랐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안방 쪽문과 사랑방 마루 통로 따라 훤히 전방이 내다보이는 안방 유리 미닫이문 기둥에서 쓰윽 훌터본다. 엄마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안방 구들목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불 속에 좁쌀 베개 베고 쌕쌕 자아기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궁금해 하며 쌀가게 코너 기둥에 묶어 놓은 나비 (우리 집 검은 고양이) 에게 간다. 안방에 가구처럼 자리한 내 키보다 한 뼘 높은 검은 대한전선 전축 스피커에서,    

 

'불-러라, 샌~프란시스코,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 ~야 꿈을 꾸는, 나는 ~ 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이'


노랫소리가 안방의 유리 미닫이문 상단 창호지가 벌렁거리며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전방 생선대 앞에 앉아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생선대 모퉁이 바닥에 준비된 적색 고무 물양동이에서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로 한가득 담아 '쏴-악!' 생선에 뿔리고 굵은소금에 절인 고등어 손과 갈치 궤짝에서 신나게 꿈틀대는 구디기 떼을  나무젓가락으로 후벼 빼내고 있다. 파리떼는 비린내에 도취되어 아버지를 잠시 잊은 체 '윙-윙' 소리까지 내며 날다 이때다 하고 생선에 앉았다가 기어코 아버지 손에 쥔 파리채에 직방으로 굿바이 된 파리도 이미 바닥에 여러 마리들이 떨어져 있다.


나비는 쌀가게 문지방 기둥에 묶여 일광욕을 즐기느냐 기지개 켜듯 자고 있다. 나는 나비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나비는 한 술 더 떠 목까지 긁어 달라며 목을 쭈욱 뺀다. 알았어. 하고 나는 나비에게 턱에서부터 목과 둘레를 긁어준다.

'나비, 시원해?'

나비 눈까풀이 가물가물한다.

'나비 등 마사지도 해줄까?' 나비는 대답이 없다.

'당연하다고 알았어.' 나는 녀석이 좋아하는 등을 주름 말듯 마사지하는 찰나 생선대로 시선이 갔다. 전방 대들보 기둥 향해 등받이 의자에 올려놓은 금성 선풍기가 생선대 앞에 앉은 아버지 등을 향해 회전한다. 아버지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고개와는 달리 꾸벅꾸벅 졸음과 씨름을 한다.


우리 아버지의 성은 전주 이요 이름은 갑수, 이갑수다. 갑촌리 유지 계원들은 아버지를 '갑수!', '갑수!' 마치 손 친구처럼 부른다. 나는 어른들이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좋았다. 숫기 없고 극도로 소심하며 내성적인 유년의 나는 아버지와 단 한 번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할 만큼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차가운 분이다. 반면 어머니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가장 친절한 남편이자 장사에 온 열정을 쏟아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를 세우신 분으로 언제나 단정한 신사형 두발 관리와 짙은 눈썹과 조화된 쌍꺼풀 눈, 그리고 희고 고은 피부와 말끔한 옷차림에서 귀티가 풍겼다.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레코드 바늘대가 '찌-익!' 긁는 소리에 뻘끈 놀란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의자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간다. 방바닥에는 배호, 현인, 김정구, 이미자, 조미미, 김세레나, 김부자, 김상희 등 각각 가수의 얼굴 찍힌 정사각형 레코드 독집 케이스가 쭉 펼쳐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중국 노래 레코드판도 있다. 그 크기가 표준 레코드와 달리 사발시계만 하다.

'랄~라, 랄~라, 랄~라,랄~라 랄랄~아~' 나는 지금도 흥얼거릴 만큼 노래의 리듬을 기억한다. 그때는 노래 제목을 알지 못했다.(성인이 되어서 신장 위구르족 민요, 청춘 무곡임을 알아냈다.)


아버지는 한주먹 들어갈 만큼 열어놓은 안방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간다. '찌-이익, 찌이익' 겉도는 전축 하단 레코드 바늘대를 들어 옆 받침대에 걸쳐놓자 레코드판 안쪽 코너에 설치된 작은 빨간 램프가 동시에 꺼진다. 이어 버지는 전축 상단에 여러 기능 조절의 메탈 버튼 중 중심에 빨간 펜으로 콕 찍은 듯한 버튼을 돌리자 '똑'소리나면서 전원이 꺼졌다. 방바닥에 너부러진 레코드 집들을 가지런히 모아 스테레오 전축 상단과 하단 중간에 설치된 레코드 집 서랍을 밖으로 끌어내 넣는다. 그리고는 안으로 숨은식 전축 문짝을 밖으로 끌어내 하단 향해 닫는다. 안방에서 나오신 아버지는 사랑방 마루턱에서, '성룡이 엄마, 방에 있는감?' 하고 부른다. 아버지 어머니는 서로를 부를 때면 언제나 '성룡이' 이름만 부른다. 나는 이상하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사랑방 아랫목에 누운 어머니는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어머니는 언제나 민낯의 얼굴에 단정히 묶은 장지 머리를 하고 있다. 옷차림새는 계절에 따라 옷감 종류만 다를뿐 우아기와 월남치마 단 투피스만 입는다. 신발은 계절에 따라 흰 고무신과 털신 두 종류뿐이다. 한결같이 똑같은 어머니의 모습에 어느 날 남성골 넉바위 산파가 우리 집에 방문하면 사랑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워째유?"

'자는감?'

'아니유, 아이 몸에 땀띠가 돗았길래 엄니랑 별채에서 씻기고 시방 막 젖 물렸유.'

'생선대에 앉아 웬 졸음이 쏟아지는지.'

'복식이네 만두 사다 드려요? 순딩이 들어온 거 같은디, 그쪽 쌀가게 없어유?'

'순딩아!'

나는 왜 이리 아버지가 무서운지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고개를 땅바닥에 떨군 체 사랑방 마루로 향한다.

'아-아! 밭에서 김 매고 와아, 어디서 얼굴을 벌겋게 익혀온겨?'

차가운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벌컥 주눅 들어버린다.   

'유치원에서는 뭣 좀 배우는가?'

'..........'

'아, 어른이 말을 하면 무슨 대꾸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니가배?'

나는 바싹 졸아붙었다.

'아, 곰-이여! 뭔 대답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여!'

나는 고개 숙인 체 돌처럼 굳어있다.    

'성의는? 요늠의 지지배는 집에서 잣기장에 쓰는 걸 보 못하니 말이여..'

나는 아버지의 작은언니에 대한 언짢한 마음까지 덤탱이 썼다.

'순딩아, 복식이아줌네 가서 찐만두 좀 사오거라.'

다소 부드러운 아버지 목소리에 굵은 나의 몸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돌아선 발걸음은 용수철 튀듯 가벼웠다. 술, 담배 하지 않는 아버지는 평소 입이 심심하면 찐만두를 드신다. 또 갑촌 오일 장날에는 외지에서 온 떡장수의 인절미도 좋아한다. 

신작로 복식이네 만두집에 갔다 오는 동안 할머니는 샘터 펌프대에서 한참 굴러 뿜어낸 차디찬 물을 양푼에 받아 대롱대롱  이슬방울 맺힌 양재기에 오렌지 주스 가루 넣어 수저로 휘휘 저어 농도를 맛 본 뒤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준비해 놓는다.


'성룡이 엄마, 성룡이 언제 집에 온다는 연락 없었는감?'

'이번 반공일에 온다고 전화 왔었유. 그러고 보니 입시 날도 얼마 안 남았네유. 꼭 들어가야 하는.'

성룡이가 어딜 꼭 들어가야 한다는 건지 또 그가 누구인지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나는 유치원에서 돌아와 여느 날처럼 사랑방에서 유치원복을 벗는데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올라 앉은뱅이책상 도르래 서랍을 앞으로 성급히 열었다. 쏴-악 앞으로 쏠린 서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실버 은단 알이 흩어져 있었고 실버 라이터와 실버 버클의 카키색 헝겊 벨트 등 내가 모르는 잡동사니와 섞여 있었다. 이것저것 휘집어보다 실버 라이터에 호감이 갔다. 라이터  뚜껑을 열자 '텅!' 닫을 때 '철컥!' 소리에 재미 들려 열었다 닫았다을 반복하다 무심코 책꽂이 가장자리에 보통 책의 겉표지와는 확연히 다른 흡사 장롱 속 근사한 어머니의 롱코트 검은색 베르도와 같은 질감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귀중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성가신 나의 호기심은 겁을 먹은 채로 조심스레 책꽂이에서 빼내 방바닥에 놓았다. 두툼한 커버를 넘겼다. 반질반질 두꺼운 고급 재질의 하얀 종이에는 학교 건물 배경으로 양복차림을 한 위엄한 어른들 표정의 사진이 열거돼 있다. 나는 행여나 흠이 나면 어쩌나 아주 조심스레 장을 넘겼다. 이번엔 얇디얇은 하얀 습자지가 나왔다. 구겨질까 찢어질까 입바람으로 세운 습자지에 얼른 손등을 받쳐 넘겼다. 앞장과 같은 재질의 하얀 종이 위에는 까까머리의 검정 교복차림 남학생의 계란형 사진이 가로세로 균일한 간격으로 열거돼 있다. 우리 집에는 큰언니, 작은언니, 나 그리고 두 여동생 모두 여자인데 남자들만 있는 사진첩이 의아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마지막 몇 장 남겨둔 페이지에서 '성룡이 아버지, 성룡이 엄마' 하고  부르는 그 성룡인지 모르겠으나 아버지와 너무 많이 닮은 성룡이 사진을 발견했다. 아마도 사진 속의 성룡이가 대전에서  중,고등학다니느라 하숙 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무려 나보다 11살이나 많은 고등학교 3학년 오빠가 존재했던 것이다.


1970년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어느 날.

서울 H대 법정대학에 입학한 오빠가 갑촌 집에 내려왔다. 나는 그날 처음 오빠 존재를 보았다. 네루형 목선의 짙은 감청색 대학 교복 차림으로 전방 안으로 들어오는데 날카롭지만 근사한 독일 장교와 겹치는 오빠의 첫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빠는 나처럼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그때 오빠가 돌 지난 아기 성아를 안고 신작로 자연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면소재지 한 시골에 사는 내게 근사한 오빠가 있음이 뿌듯했다.


우리는 가족 모두 찍은 사진이 아예 없다. 어쩜 이럴 수가 있는가 싶다. 어릴 적 몇 장의 우리의 사진과 학창 시절 앨범 그리고 부모님 젊었을 때의 몇 장의 독사진이 전부다. 그마저 가족이란 사실 존재를 증거 인멸하듯 한 장 한 장 사라졌다. 나의 여고시절까지 책꽂이에 꽂혀놓은 서 너 개의 앨범 속 사진 대부분을 기억한다.

가장 큰 앨범 첫 장 맨 위에 누렇다 못해 황색으로 변한 부모님 젊었을 때 찍은 유일한 아버지 어머니 독사진이 또렷이 기억해 낼 수 있다. 흰 나시 메리야스와 군복 바지 차림의 군복용 카키 벨트 착용한 젊은 군인 시절의 아버지는 허리 벨트 아래 양손을 올려 비스듬히 선 왼쪽 손목에 실버 팔찌를 찼는데 무슨 팔찌가 (인도 Sikh족 팔찌 모양새 같다) 손목 위 모양새는 밋밋한 일자형이고 손목 아래 둥근 모양까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엄마는 면 아니, 시대상으로 볼 때 무명 또는 면섬유가 분명할 것이다. 흰 저고리 치마의 저고리 고름을 왼쪽으로 맨 V선을 목울대까지 옷핀으로 여민 사진 속 엄마는 어디서 본 유관순 사진과 흡사했다. 그 아래에는 군복 차림의 아버지 오른손이 흰 저고리 치마 차림으로 다소고니 의자에 앉은 어머니 어깨에 올린 사진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장의 부부 사진이었다.


다음 장 앨범에는 어느 여름날, 별채 안마당 꽃밭 돌부리에 작은언니, 나, 성주, 그리고 성아와 나란히 앉아 함께 찍은 유일한 우리 자매 사진도 그리고 신작로 자연 사진관 한쪽 벽을 향해 트라이쇼와 팜나무 그림 배경을 등지고 단발머리에 앞니 빠진 일곱 살 나는 신작로 서울 양행에서 구입한 원피스 차림이었는데 허리를 낮춰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뒤로 구부린 왼쪽 허벅지에 양손을 올려 위로 턱을 들고 찍은 독사진과 아기(성아) 안고 찍은 오빠 사진, 등받이처럼 내려온 하늘색 긴소매 세일러 유치원복 차림의 단발머리에 베레모와 흰 타이즈와 발등에 만화 판박이 박힌 빨간색 기차표 운동화, 어깨 위로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메고 왼쪽 보조개가 패이게 웃고 찍은 나의 독사진과 나란히 1969년 갑촌에 유치원이 공장 사택가 성결교회에서 개설한 졸업기념사진 속의 친구 한 아이, 한 아이 얼굴과 이름도 기억해 낼 수 있다. 공장길 어귀, 태산 동네에 살았던 최성호, 신작로 신화 약국집 아들 유원석, 구판장 집 딸 오덕수, 부광 약국집 딸 강정희, 홍약국 집 아들 홍성기, 한의사 아들 김영철, 갑촌중학교 음악 선생님 아들 조창범, 갑촌 중학교 국어 선생님 아들 김재훈, 갑촌 약수터 주인 딸 예종희, 중대장 딸, 김미영, 갑촌 시장통 조씨네 아들 조용철, 쌀가게 집 아들 이종호, 가방 집 아들 김동구, 소주 도매상 집 딸 이명희, 초등학교 교문 길 주택에 살았던 공영돈 그리고 우리 집 바깥채에서 공장 사택으로 이사 한 전병락이 맨 뒤 줄 중앙에 서 있는 내 옆에 서 있다.

나는 그때 유치원 놀이터에서 그네 타기를 무척 좋아했다. 하늘의 구름에 닿으려는 듯 힘차게 높이 높이 성이 찰 때까지 스윙을 하고 집에 간다. 공장 사택가 내리막길 따라 플라타너스 나무와 가로등을 세며 내려간다. 풍성하게 늘어진 가지 잎사귀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발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세상에라 나무목에 누에고치만 한 송충이가 떼 지어 파도 물결을 이루며 풍성한 잎사귀까지 그물 모양이 되도록 갉아먹는 광경에 소스라쳤다.


큰언니는 오빠보다 다섯 살 아래다. 언제가 우리 나이에 대해 외할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다. 오빠와 큰언니 사이에 아이가 있었는데 출생 며칠 후에 죽었다고 했다. 옛날에는 그런 일이 발생해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이 태어나 한 살 돌 넘긴 나이로 호적에 올렸다한다. 반면 우리의 생일은 태어난 실제 음력 날로 차려준다는 것이다.

큰언니는 엎드리면 코 닿을 갑촌중학교 입학을 마다하고 굳이 기차 통학하는 신탄진여자중학교에 입학해 다닌다. 하얀 성적 통지표을 받아 오면 늘 꼴등이다. 그런 큰언니는 아버지의 신전인 가게 돈통에 놓아둔 아버지 도장을 몰래 찍어 간다. 책가방은 폼으로 갖고 다니는냥 공부는 하발이면서 교복은 매일같이 세탁소에 맡겨 칼날 주름 잡힌 차림새로 다닌다. 평상복도 맞춤복으로 입어야 뽀다구가 난다며 양장점에서 맞춰 입는다. 또한 장사하는 부모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일찍 돈을 알아버린 큰언니는 아버지 신전에 손을 댔다 들켜 회초리로 손바닥 맞은 적이 몇 차례다.


초등학교 2학년 작은언니는 큰언니와 세 살 턱우리로 가족 유일하게 피부가 가무잡하며 등치 좋은 큰언니와 달리 골격이 작은 체질이다. 작은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사랑방 마루 모퉁이에 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 바로 밖으로 나가 놀다가 저녁 식사 시간에 들어온다. 아침 일찍 등굣길에 나서는 작은언니의 책가방에는 라면땅 봉지가 한가득 담아 있다. 그것은 학교 공부에 흥미가 없어 깨우치지 못하니 숙제 해 낼 능력이 없으므로 아침 등굣길에 공부 잘하는 친구 집에 들러 숙제 베끼는 대가용이다.        


공장 사택가 유치원에 다니는 나는 작은언니와 세 살 턱우리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고 말한다. 호적에 실린 내 이름은 이룰 성, 빛날 요, 이성요다. 그런데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엄마가 젖 물리면 언제나 먹고 자는 아기 그러니까, 어머니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해서 '순동이' 이란 이름으로 불러 친인척과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나를 '순동이, 순딩이'라고 부른다. 개구쟁이 사촌 오빠들은 딩, 딩이, 댕이, 로 부른다.


성주는 나와 두 살 턱우리 여동생이다.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성주는 짧은 상고머리를 하고 있다. 이유는 어머니가 아들 낳기 위한 바램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또 딸을 낳았다. 성주와 다섯 살 턱우리로 태어난 성아는 오빠와 나처럼 하얀 피부와 쌍꺼풀 눈을 가진 아버지를 닮았다. 성아의 두상은 짱구형으로 아주 영리하게 생겼다. 동네 사람들은 성아를 보고 다음에는 어머니가 진짜 남동생을 볼 거라고 했다. 정말 2년 뒤 남동생이 태어났다.


우리 집 상차림은 외할머니의 요리로 매일 하루 세 끼 두 개 상차림이 안방에 차려진다.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서로 마주 앉으므로 직사각형이고 우리는 둘러앉아야 하므로 원형의 상이다. 이따금 부모님이 전방에서 손님맞이로 상차림 앞에 무릎 끓고 앉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길어질 때는 엉덩이를 몇 차례 들었다 앉기를 반복한다. 상차림 앞에 앉아 있지 못하는 작은언니는 (전방 감시용 세 짝의 미닫이문 구조는 미닫이문 상단 3분의 2가 창호지 바른 창살문이고, 3분의 1은 전방이 훤히 내다보이는 구들목 유리창틀의 목재구조다) 구들목으로 쪼르르 내려가 돋보기로 보듯 아버지 어머니의 동향을 살핀다.

'오신다! 오셔!'

작은언니는 총알 튀는 말투로 후다닥 내 옆에 와 앉으며 내 허벅지를 툭툭 친다. 헛기침하며 아버지가 드르륵 안방 미닫이문을 여는 동안 나는 얼른 또 한 번 엉덩이를 들척여 앉는다. 잠시 냉기 흐르는 고요 속에 상차림 사이를 두고 아버지 어머니가 마주 보고 앉는다. 부모님은 밥그릇과 국대접 앞쪽으로 가지런히 놓은 수저와 저분 중 언제나 약속한 듯 수저를 잡는다. 따라서 우리도 언제나처럼 수저를 잡는다. 침묵의 안방 대기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나는 이 시간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에게는 밥상머리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율이 있다. 첫째 입에 음식물 넣고 말하지 않는다. 둘째 허겁지겁 먹지 않는다. 셋째 먹으면서 음식물로 밥상이 지저분하면 안 된다. 넷째 수저와 저분질을 제대로 다룰 것. 이 같은 규율을 지키며 식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밥상 머리맡에 무릎 끓고 앉아 식사를 한다.


여름 어느 저녁 식사를 마치고 대령해 놓은 숭늉을 마시고 숭늉 대접을 밥상 위에 내려놓으며  '얘들아!' 하고 우리를 부를 때는 뭔가를 알리는 아버지 특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특유의 목소리는 안방에 금성 선풍기 바람이 없어도 될 만큼 싸늘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예-에' 하고 합창을 한다.

'백노지며 잣기장, 연필, 지우개 그리고 볼펜, 잉크병, 펜촉 등 공부에 필요한 것은 젠부 사다 놨으니 뭐든 다 쓰고 난 늠, 내게 보이고 받아가도록 혀라.'  

아버지는 그러니까 우리에게 학용품 확인 검사 선포를 내린 것이다. 황소눈알 만한 큰눈이 더 커진 큰언니는 작은언니와 나를 번갈아 본다.

'성복아!'

심보 가득한 뚱한 표정을 한 큰언니 향해 아버지가 부른다.

'야-아.'

큰 눈을 내리뜨고 양미간에 잔뜩 힘을 준 큰언니의 양볼은 불독처럼 골이 나있다.

'평일날은 학교 다니느라 그렇다지만 반공일이나 공일날은 말이여, 부엌이든 전방이든 거들것은  없는지 어른에게 물어보고 하면, 니 밑에 동상들에게 본보기로 좀 좋으냐.'

'아, 아버지는유!' 입모양이 댓발 나온 큰언니의 불 먹은 소리다.

'성의야-아.'

아버지는 작은언니 이름을 길게 부른다.

'이-이예-에.'

작은언니는 아버지의 억양을 눈치챈 모양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와 책, 공책 펴놓고 공부하는 걸 당채 보지 못하니 말이여 공부가 싫은겨?'

쌀쌀맞은 아버지의 말투에 작은언니는 바싹 졸아 침묵을 지킨다.

'책가방에 책과 잣기장은 다 어디에 팽개치고 웬 라면땅 봉다리들로 잔뜩 들어있는지 소상히 야기 혀 봐!'

'.........'

'아, 곰이여! 뭔 대답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배?'

한 옥타브 높아진 아버지의 고함에 우리 모두는 찔끔한다.

'하-하학교에서 먹으려-그...'

'뭐이여? 책과 잣기장 젠부 어떻게 했는지 말혀봐?'

'교-오실 책상 서랍에 넣어놨유.'

'성의야 널랑은 말이여, 학교 다닐 거 없이 일찍 감치 똥지게 져야 쓰겄다. 언제 임씨 오거들랑 따라 나설 준비 혀거라.'

임씨는 우리 집 변소 똥 푸는 똥지게꾼 아저씨다. 아버지는 오일 장날에 우리 가게로 장 보러 십 리 길을 걸어 나오는 산골 장꾼의 입을 통해 그에게 알리면 다음날 어김없이 우리 집에 온다. 그는 지능이 조금 떨어졌고 키는 보통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크고 체격은 건장해 거인처럼 보였다. 한겨울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휴전선 철조망 지키는 무장한 군인의 차림새처럼 북실북실한 털모자 달린 두툼한 군청색 우아기와 발목 기장의 품이 풍성한 누비바지에 낡은 털장화 신은 그가 허연 입김을 내뿜고 우리 집 부엌 모퉁이에 서있는 그에게 이른 새벽 먼 산골에서 걸어와 얼어붙은 그의 몸을 녹이라며 할머니가 부엌 아궁이 앞으로 앉히고는 이제 막 뜸 들인 따끈한 아침밥에 김치 오징어국에 말은 국대접에 수저를 꼽아 그의 손에 들려주는 장면을 세수하러 방에서 나오다 목격한 우리는 아직 똥 푸기 전인 그를 보고는 오만 상우를 찌푸리며 코가 무슨 철전지 원수인 양 비틀어 잡은 우리의 모습을 마침 아버지가 전방 통로를 오가다 보고는 '공부 혀기 싫으면 똥지게 지는 수밖에 없어' 하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아-아버지, 수-숙제 베기는.. 라면땅...'

'이게 시방 뭔 소리여? 공부를 라면땅으로 거래했다 이거여!'

'아버지 다시는 안 그럴규.'

작은언니는 밥상머리에 무릎 끓은 체 양손바닥을 싹싹 빌었다.

'성의랑 학교 다닐 것 없다.'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럴께유 아버지.'

'또 한 번 책가방에 라면땅봉다리 들어있을 땐 각오 혀!'

'예-에, 아버지.'

'험으음, 순딩아.'

겁에 바싹 졸아 붙는 나는 아버지 헛기침소리에 더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순딩이를 부르는 아버지의 억양은 언니들 부른 억양과 다름을 느꼈다. 정말이지 나는 왜 이리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나는 단 한 번도 고개 들어 아버지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식사 때 밥상 위로 고개 들어 본 적 없다. 나는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까 긴장해 있다.

'저녁상 물리면 순둥이는 쌀가게 나비(우리 집 검은 고양이) 밥 주는 당번 혀.'

 나는 전혀 생각지 않은 나비 밥 당번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의아했다. 동시에 아버지가 나비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뭉클했다. 부모님은 평소 고양이의 성격 그러니까 따뜻하고 아늑한 곳을 좋아하고 혼자 있길 즐기듯 외로움에 강한 짐승답게 차갑고 앙칼지며 예컨대 쓰다듬어 주려 가까이 다가가 만지면 바로 털을 핥은 유난을 떠는가 하면 다양한 형태의 눈동자로 변하는 고양이를 그리 달갑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는 순전히 쌀가게에서 쥐잡기 위함이다. 나비는 우리 집 쌀가게에 높이 쌓인 쌀가마니에 구멍 나지 않게 잘 지켜야 할 중대한 의무를 띠고 있었다.

겨울 어느 날 아침이었다. 쌀가게 안쪽에 묶어놓은 나비에게 아침밥 갖다 주러 갔는데 털 없는 아기 쥐가 뻘건 피를 흘린 체 누워있는 광경을 보았다.

'나비, 달아나게 겁만 주지 왜 이렇게 했어?' 나는 나비를 나무라면서도 쥐가 쌀가마니에 구멍 낸 걸 아버지가 보고 무능한 나비로 혼구역 받을 나비 입장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끼니 당번하면서 나는 나비와 가까워졌다.  


'아버지는 똑같은 공책을 어떻게 몇 달씩 사용하라는 거니? 아버지 신전 놓인 상단 진열대 선반 봤냐? 문방구처럼 쌓아 놓았다니까. 아마 몰라도 일 년 하고도 더 쓸 것 같여.'

큰언니는 저녁 상차림 물리면서 연실 투덜거린다.

'혹시 우리 삥땅 한 거 아버지가 아신 걸까. 그렇지 않고서 갑자기 학용품을 구입해 온 이유가 도대체 그것도 대량으로 말이야.'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공책이든 연필이든 학용품 모두 헤프게 쓰는 버릇이 있다. 변소 갈 때도 책가방에서 잣기장 꺼내 쩍쩍 찢어 가는 것도 지우개 향이 다 달아나면 칼로 이쪽저쪽 깎아내고는 다 썼다며 아버지에게 돈 타 썼던 즐거움이 하루아침에 박탈되었으니 불만 투성일 수밖에 없다.


저녁식사 후, 큰언니는 오리 부리처럼 입을 댓 발 내놓고 씩씩대며 아버지 지시에 따라 저녁 8시가 되면, 전방 밖으로 연장해 진열해 놓은 생선대와 채소전의 물건 모두 전방 안으로 들여다 놓는다. 저녁 9시가 되면, 안채 건물 양쪽 외벽에 순서대로 세워 놓은 문짝들을 양쪽 바깥쪽부터 닫아 놓는다. 저녁 10시에는 전방 대들보를 중심으로 두 문짝의 공간만 열어 놓고 모든 닫는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설탕푸대 옆으로 자리한 검고 두툼한 겉표지의 외상장부책과 호두알만한 주판알 주판대을 아버지의 신전, 돈통 위에 올려놓고 가슴 품에 떠받쳐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돈통을 거꾸로 세워 소쿠리에 쏟아붓는다. 꼬기작꼬기작 구겨진 종이돈과 동전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건넌방까지 들리며 오래된 책 속의 눅눅한 냄새도 풍겨왔다.


아버지는 소쿠리 한아름 쌓인 종이돈  한 장, 한 장 가지런하게 펴 한 뭉치의 돈다발을 코르크 끈으로 묶어 타래로 만든다. 그런 다음 타래를 왼손가락 중지와 약지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손등을 비스듬히 한 다음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중지 손가락 끝부분에 '퇘' 하고 침을 뱉어 엄지손가락으로 골고루 비비고는 너 다섯 타래의 돈을 아주 빠른 속도로 넘기며 세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이윤창출자의 냉정함이 서려있다. 그렇게 다 센 돈다발 뭉치는 돈통 옆에 가지런히 놓고 외상장부책을 펼친다. 꼼꼼히 기록해 놓은 숫자들을 호두알 만한 주판알 튕기는 아버지의 손가락 놀림은 고도의 기술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같다.


                 



새벽 4시 건너방.

외할머니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웃목에 앉는다. 방 벽 한 모퉁이에서 조금한 상자를 꺼낸다. 상자 속에는 보자기 만한 비닐 깔개 속에 참빗이 가지런히 접혀있다. 방바닥에 비닐 깔개를 펼쳐 놓은 다음 긴 머리 또아려 고정한 은비녀를 빼낸다. 구불구불한 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헤치고는 오른손바닥으로 '툭' 정수리를 소리나게 올려친다.

'할머니, 이마 아프게 왜 툭치는 거야?' 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묻는다.

'소리가 컸던겨.'

'응. 할머니 이마 아프게 왜 맨날 치는 거야?'

'안 아퍼. 머리 앞가르마 타는겨'

정말이지 할머니는 색경없이도 정확하게 앞가르마를 탔다. 가르마로 나눈 양갈래 머리에 참빗으로 가지런히 빗어 내린 다음 등 뒤로 모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말아 은비녀로 고정시킨다. 참빗에 빠진 머리칼을 모아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 이물질 떨어진 비닐 깔개 들고 부엌으로 나가 곳고랑 앞에 털어낸다. 할머니는 잘 접은 비닐 깔개에 참빗을 넣어 제자리에 보관한다. 샘터에서 세수를 한 다음 샘터 수챗구역 옆에 놓인 적색 구정물 양동이 표면 위에 떠 있는 맑강 물을 쪼르르 딸궈버리고 걸쭉한 건더기만 들고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별채 돼지막으로 간다.


안방의 검은 자명종 벽시계가 새벽 다섯 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부모님이 잠에서 깨신다. 형광등 불을 켜고 벽걸이에서 평상복으로 입고 안방 쪽문을 이용해 샘터를 지나 별채 안마당을 가로질러 바깥채 끝자락 변소로 향한다. 샘터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버지 고유의 푸짐한 소리내어 세수한다. 부엌을 지나 전방 통로 따라 전방 대들보 기둥 앞에 와 선다. 첫 문짝 위에 끼워 고정시킨 각목을 빼낸다. 그런 다음 문짝을 위로 살짝 드는 동시 오른발로 하단을 툭 차 밖으로 차낸다. 이어 순서대로 문짝을 떼어 안채 양쪽 벽에 세워놓는다. 엄마가 안방에서 나온다. 아버지와 함께 통로에 보관해 놓은 물건들을 진열한다. 할머니는 별채 돼지우리와 이곳저곳 둘러러보고 안채 부엌으로 돌아와 통근밥을 짓는다. 전방의 물건 모두 제자리에 진열해 놓은 아버지는 조치원장에 물건 구입하러 역으로 나선다. 어머니는 식료품 진열대에서 털이개로 먼지를 털고 있다. 안방에 차려놓은 아침상에는 큰언니는 보이지 않는다.     

'니 성, 아직도 밥 안 먹는겨?'

'네에 할머니. 큰언니 또 안 먹을거야.'

'여이, 성복아 통근열차 시간 다 뒜는디 뭐하느라 여태 밥도 못 먹는겨?'

'할머이 나아 시간 없어요.'

'아, 상 차려 놓은지가 언제인디 시간이 없다는겨.'

'아, 할머니 말시키지마유. 시간 없슈.'

큰언니는 아침마다 올인원인지 그 무시깽이와 씨름하다 통근열차 놓칠뻔한 적이 벌써 여러 차례다. 엎드리면 코 닿을 갑촌중학교 입학을 마다하고 굳이 기차 통학을 자초하면서 신탄진여자중학교에 입학한 이유는 순전히 여중학교의 춘하추동 교복 디자인이 허리 벨트 교복 때문이다. 등치 좋은 튼튼한 체형의 큰언니는 매일 올인원을 착용해 숨기려 애쓴다. 아침 통근밥은 아예 거르거나 먹는 둥 마는 둥 끄적거리다 역전으로 뛰어가기 일쑤다.   

작은언니는 시장통 우리 집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초등학교 거리에도 아침 8시에 집을 나선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중학교 앞 갑촌 지서에 근무하는 오순경네 집으로 가는 걸 알았다. 그 집에는 아기 때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하는 금옥 언니와 금이 언니 자매가 살고 있다. 금이 언니는 작은언니 반 친구이고 공부 잘한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다. 공부 잘하는 금이 언니의 숙제를 베끼는 대가로 작은언니가 금옥 언니 엎고 아침 등교하는 걸 알았다.


'순딩이, 유치원 갈 시간됐잖여.'

할머니가 부엌에서 외쳐왔다.

'나 지금 유치원복 입고 있는거야. 할머니.'

나는 유치원 세일러복 앞자락 똑딱단추 맞추며 대답한다.

'할머니 나아 여기 잘 안 맞아요.'

할머니는 부엌에서 젖은 손 앞치마에 닦으며 사랑방에 들어와 나의 유치원복 차림의 똑딱단추 똑, 똑 소리 내 맞춰준다.

'순딩아, 타이즈는 어떤늠 신는겨? 이늠여?' 할머니는 부라더 미싱대 위 양말 바구니를 뒤적이며 묻는다.   

'할머니, 선생님이  문양 찍힌 타이즈는 안된다고 했었요.'

'그럼, 이늠인가배.'

나는 방바닥에 앉아 타이즈를 입는다.

'으-음, 있잖아. 할머니, 어제 유치원에서 동그랑 고리 놀이했어요.'

'그게 뭔 놀이인디?'

'무슨 놀이냐면 할머니...'

나는 놀이기구를 무엇에 비유할까 잠시 머뭇거리다 소가 코에 낀 둥근 고리(꼬뜨레)를 생각해 냈다.

'으-음, 그 놀이가 할머니. 소 코에 낀 고리처럼 한 색색의 둥근 고리를 저만치에 세워놓은 기둥에 던져 걸치는 놀이애요.' 하며 나는 놀이 방법에 대해  몸짓으로 할머니에게 설명했다.'

'그 놀이가 그리 재밌던겨?'

'으응, 할머니. 나는 재미있는데 친구들은 재미가 없데. 덕수는 다섯 고리 던져 한 고리도 못 넣었는데 나는 신나게 세 개나 넣었어요.'

나는 다 입은 타이즈를 허리로 축겨 입으며 으싸한 마음에 젖어 말했다. 할머니는 제대로 타이즈를 입었는지 확인하고는 내 머리에 유치원 베라모을 씌우고 왼쪽 오른쪽 앞뒤로 재며 맞춘다.

'할머니, 내 말 듣는거야?'

'듣고 있는겨.'

'내가 무슨 말했는지 말해봐요?'

'원, 아이두. 다른 아이들은 하나도 못 넣은 어려운 놀이를 순딩이는 세 개나 넣었다는 거 아닌가배.'

'으응, 할머니.'

할머니는 내 머리 왼쪽 비스듬이에 베레모를 실핀으로 고정한다. 그리고는 노란 유치원 걸방 가방을 내 어깨로 가로 매준다.

'천상 지애비 도성했구먼!' 하고 할머니가 속삭인다. 이 말은 또한 시장통 사람들과 장날에 우리 가게에 오는 장꾼들에게도 자주 듣는 말이다.

'할머니, 도성 했다는게 뭐야?"

'이쁘다는겨.'

'내가 이뻐!

'그-려. 유치원 시간 늦을라 어서 나서야것다 순딩아.'

'응. 할머니.' 나는 대답하며 사랑방 마루에 걸터앉아 운동화 신으며 고개를 전방으로 쭉 내밀어본다.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가 안방의 검은 자명종 벽시계를 올려다본다.

'순딩아, 어여 나가야겄다. 선상님 기다릴라.'

'으응, 할머니.'

봄에 갑촌 공장 사택가 성결교회에서 개설한 유치원에는 두 여선생님이 있다. 한 분은 갑촌중학교 음악선생님의 부인이고, 유치원 짝꿍 인범이의 어머니다. 그녀의 풍만한 체격과 서구적인 얼굴은 배우 강금봉씨와 많이 닮았다. 다른 한 분은 큰 키와 마른 체격의 미혼인 홍선생님으로 두 분은 뿌연 횟가루 날리는 공장길 따라 공장 구릉지 사택가에 거주한다. 홍선생님은 아침마다 시장통에 사는 우리들 인솔하러 극장 앞 신화 약국 골목길에서 기다린다. 발등 위에 만화 판박이 박힌 기자표 빨강 운동화 신은 나는 전방 나서기 전 대들보 기둥 문지방에 올라 주위를 쓰윽 둘러본다. 성주가 쌀가게 기둥에 묶어 놓은 나비 옆에 앉아있다. 할머니는 부엌과 샘터를 오가며 한 번씩 흘끗 전방을 살핀다.  

'순딩아, 니어머이 역전에 아버지 

마중 나갔어. 어여, 나서 늦을라! 이따가 유치원 끝나걸랑 공장길은 공장 트럭이 오가서 위험하니께 초등학교 뒷동산 길로 와야 혀 알았지.'

'응, 할머니.'


오전 11시경.

경부선, 호남선 열차가 달리는 갑촌역에는 하행선 완행열차가 하루 세 번, 상행선 완행열차가 두 번 정차한다. 아버지는 상행선 통근열차로 조치원장에서 장을 보고 늦은 오전 하행선 열차로 오실 때면 갑촌 시장통은 하루 가장 분주한 시간으로 싱싱한 생선 구입하러 공장 사택가에 거주하는 주부들로 북적거린다.

할머니는 역전에 아버지 마중 갔다 온 어머니에게 안방에 새참상 준비해 놓고 성아를 안고 있다.

'엄니, 아이 젖 물리게 주셔유.'

'어여, 한 숟가락 떠먹고...'

'새벽 지아부지 장에 갈 때 물렸는데도 젖이 많이 불었네유.'

어머니 품에 안긴 성아는 어머니 저고리를 올리기도 전에 젖무덤을 파고든다.

'아이구, 조-옴!' 다소 피곤한 기색의 엄마는 우아기와 메리야스를 동시에 말아 올린다. 백옥 같은 어머니의 젖무덤은 탱탱하게 불어 있다. 젖이 성아 콧등에 뚝 떨어지자 눈 감긴 체 성아는 마구 들이댄다. 젖 빠는 속력이 얼마나 빠르던지 성아의 이마와 콧등에 땀이 보송보송 맺혀있다. 뱃고래가 든든하게 먹은 성아는 어머니 젖무덤에 고개를 떨군 체 붕어 입처럼 벌려 곤히 잠들어 있다. 어머니는 깊이 잠든 성아 모습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이마와 콧등의 땀을 조심스레 닦아준다.

'여이! 이쪽으로 눕히고 한 숟가락 떠 봐!'

'야아.'

'그럼, 나 잠깐 별채 앞마당에 갔다 오마.'

'그러셔요. 엄니.'

우리 집 별채 앞마당에는 아침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꽃밭과 종류의 야채 심은 텃밭이 있다. 특히 늦은 봄날  별채 텃밭은  우리들이 고랑 사이로 뛰어다니며 생명체을 관찰하며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적어도 부모님 살아 계실 적까지는 말이다. 할머니는 아침 해가 떠오르면 곳간에 보관한 눅눅한 가마니와 멍석을 꺼내 별채 안마당에 펼쳐 말린다. 작은언니와 나, 그리고 성주와 잡기 놀이하다가 느닷없이 그 위로 밟고 꽃밭과 이어지는 장독대와 텃밭 고랑으로 잡으러 또 잡히지 않으려 뛰어다니는 광경을 할머니가 본다.

'얘들아, 꽃낭구 밟지 않게 조심혀!'

놀이에 취한 우리는 여벌로 들린다. 꽃낭구와 약초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치원장에 갔다 오실 적마다 한 그루, 한 그루 구입해 심은 별채 꽃밭에는 채송화부터 함박꽃, 백장미, 국화, 백합, 목련화, 수국화, 앵두나무, 해당화, 구기자, 익모초, 달래, 꽈리 등이 어울려 있다. 동글동글 맺힌 아침 이슬이 꽃낭구 잎새에 끓어질 듯 말 듯 휘청거리는 거미줄에 탄 거미에게 접근하자 돌돌 말아 공벌레로 가장해 버린다.

'언니! 성주야! 여기 이리 와 봐! 거미줄에 무지개 빛이 나-아. 그리고 오래 보니까 어지럽고 자꾸 보고 있으니까 이마 여기가 간지러워요.  할머니. 왜 그런 거야? 자꾸 보고 있으니까 내 이마 여기가 간지러워요.'

'그러니께 그만 봐아.'

신기함에 흥분한 나의 목와는 달리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슬 맺힌 거미불이 아침 햇살에 어지러워 보인다는 내게 할머니의 설명은 학교 다니면서 신기루 현상임을 깨달았다. 그 신기루 현상은 별채 꽃밭이나 외양간 처마, 장독대와 담쟁이에 늘어진 호박 덩굴과 텃밭에 심은 꽃 핀 대파, 가지, 고춧잎과 텃밭 가장자리에 줄지어 심은 옥수숫대에서도 많이 본다.

장독대 모퉁이에는 구기자, 꽈리, 쑥, 부추, 달래, 익모초 종류의 약초와 분꽃과 보라색 봉우리의 도라지꽃 나란히 나팔꽃 긴 줄기는 별채 장독대 큰 항아리 허리 감싼 하단에는 달팽이가 찰싹 붙어있다. '어!' 나의 소리에 놀란 달팽이는 마치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겁먹은 나처럼 안테나를 완전 감추고는 짐짓 어디로 피하지 못해 죽었구나 하고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팽이야, 놀라지마.나아 순딩이야.'

나는 팽이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안심시키고는 흙돌담으로 간다. 텃밭 가세로 장대만한 옥수수 사이로 흰나비, 노랑나비가 덩실덩실 날아다닌다. 질세라, 어디서 고추잠자리가 붕붕 날아와 옥수수대에 앉는다. 여름철 호박 덩클로 도배된 별채 담벼락에는 활짝 핀 노란 호박꽃으로 벌들의 천국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나는 오늘도 장사로 바쁜 부모님에게 투명인간이다. 바쁜 부모님의 삶에 익숙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렇지를 못한다. 부엌에서 점심 상차림 준비하는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순딩이 온겨? 어여 샘에 가 손 닦고 옷 갈아 입어. 점심 먹을겨.'

'네에.'

나는 바로 샘터에서 손을 씻고는 부뚜막 끝 난간에 앉아 할머니가 상 차리는 광경을 지켜본다. 할머니는 장독대 항아리에서 고추장과 조선간장 각각 담아 온 종지 두 개를 부뚜막에 내려놓는다. 그런 다음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종지 가장자리를 돌린 손가락을 자신물그릇에 헹군 후 밥상 중심자리에 종지를 올려놓는다.

'할머니, 고추장이랑 지락물은 아무도 안 먹는데 왜 맨날 밥상에 올려놓는 거야? 그리고 반찬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요?'

'상차림에 양념장은 기본이니께 꼭 차려 놓는겨. 사람마다 싱겁고, 짜고, 맴게 먹는 식성이 다 다르잖여.'

'네에.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우리 가게에서 왜간장, 고추장 사다 먹는데 우리 상차림에는 왜 안 놓는거야?'

'사다 먹는 사람들은 집에서 만들어 먹지 못하는 뭔 사정이 있고 또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 어디 대가족이 먹듯 음식을 해 먹는감. 그리고 왜간장은 달아서 우리네 음식으로는 간을 맞출 순 없어. 그게 미원인지 냄비 그림 붙은 거 뭐이여?'

'미풍요. 할머니.'

'니아버지 니어머이는 그런 거 싫어혀.'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반찬장이나 부뚜막에는 미원 미풍 봉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문득 어느 날 아침 샘터에서 본 어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나아 봤어요.'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 하니 흥분한 사람처럼 말한다.

'무일?'

'저번 아침에 있잖아 할머니, 엄마가 광에서 한 움큼 소금을 손에 쥐고 나와서는 샘바닥에 앉아 엄마 오른손가락을 이렇게 모아 소금 찍어 이 닦는 거 봤어요.'

'글씨, 니어머이는 치약도 비위 상한다고 안 좋아혀잖여.'

'할머니는요? 할머니도 엄마처럼 소금으로 이 닦으세요?'

'그려.'

'할머니 나도 내일부터 소금으로 이 닦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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