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서툰 엄마가 되었을 때
저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육아휴직을 하며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에게 혹여 무서운
일이 닥치지는 않을지
불안에 잠겼습니다.
세상은 닫혀 있었고 제 삶의
반경은 아이의 숨결만큼으로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세상과 이어진 거의
유일한 통로였던 아이의 아빠와도
저는 1년 가까이 단절되다시피 지냈습니다.
아이를 온몸으로 지켜내기 위해
저는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이렇게 긴 후유증으로
돌아올 줄은 그땐 몰랐습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을 때
저는 말부터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다 보니
모국어인 우리말의 어순과 문장마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복직한 첫날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도 저는 믿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다시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팀장에게 딱 한 달만 적응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많이 도와달라고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했습니다.
그 짧은 문장을 입 밖으로
만들어 내는데도 어찌나
힘이 들던지요.
누군가 보았다면 아마 한국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그 팀장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잘 알려드릴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복직 후 처음 뵙는 분이었기에 긴장했지만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좋은 분일 거라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뒤에서 제
능력 부족과 자격 미달을 이유로
직급 강등을 수차례 요청했다고 합니다.
급기야 제 책상은 부서 밖으로
밀려났고 저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2년 넘는
시간동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짓은 사람을 소외시키는 일이라는 것을요.
존재를 부정당하는 일 그보다
더 깊고 아픈 폭력은 없다는 것을
저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을 언젠가는 반드시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컸고 침묵으로 묻어두기엔
너무 많은 의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언어를 잃어버렸던 시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은
제가 다시 언어를 찾게 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작년 한 해
그동안 제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시간과 감정, 지워졌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원고를 완성
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신 출판사에서
제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 책이 누군가의 상처를 대신
치유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존재를 부정당한 경험으로 홀로
버티고 있는 분들께
“공감”이라는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겪어온 경험이 누군가의 동굴
속에서 등불이 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