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삶의 방향을 찾는 길

by 쑤킴

사업을 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1도도 없었다. 어린 시절을 군인이셨던 아버지와 아버지를 뒷바라지한 어머니를 보면서 자랐다. 공무원 집안에서 자라면서 꿈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쉽사리 잘 찾아지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전문 기술을 배우거나 선생님, 간호사가 되었으면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꿈이 아니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확실한 꿈은 없었지만 나와 맞지 않은 것은 단박에 알아보는 능력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싫고 좋은 것을 분명히 알았을까? 아니다. 귀는 얇아서 사람들이 하는 말에 쉽게 혹하거나 쉽게 상처 받고 쉽게 의기양양해졌다. 그렇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존재감이 없는 듯 없는 듯 구름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사라졌다가 때로는 온 하늘을 덮을 수 있는 것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중고등학교 때 화려한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유명한 연기학원이 여의도에 많았다. 학원비도 비쌌지만 들어가기 위해서는 연기 시험을 봐야 했고 통과를 한다면 엄마가 매니저가 돼야 했다. 우유부단한 성격이지만 뭔가에 꽂히면 며칠, 몇 달을 매달려서 원하는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연기자가 꿈이라면서 울면서 연기 학원에 보내달라던 딸을 보고 어머니는 일단 허락을 하셨다. 학원에 가서 시험을 보는 순간에는 엄마의 코치가 이어졌다. 나의 꿈을 반대하던 분은 어디 가셨을까. 시험 당일 날 받은 연기 대본은 뺑소니 아저씨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대사였다. 나는 뺑소니치고 달아나려는 아저씨에게 소리치며 어디를 도망가냐며 소리쳤다. 엄마는 나의 연기 해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아저씨에게 예의 없게 소리치면 어떡하니"

"엄마! 뺑소니친 아저씨에게 무슨 예의를 차려요!"

"그래도 나이 많으신 분이잖니."


세상에나. 엄마의 연기 지도는 완전히 잘못됐었다.

어르신에게 예의 바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여기서 하시면 안 되는데..

그런데 나는 귀가 얇았다. 엄마 말을 들었다.

시험장에 들어와서는 아주 예의 바르게 뺑소니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 감독관이 왜 그렇게 연기했는지 물어봤다. 망했다.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망연자실하게 있었다. 며칠간 엄마를 원망했다. 시험 발표날! 연락이 왔다.

합격했다고. 응? 합격?

연기력을 보고 합격한 건 아닌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생각했다. 돈만 내면 갈 수 있구나.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여의도까지 다니면서 학원을 다닐 자신감이 없었다. 학원비도 만만치 않은데 내가 그 정도의 열의를 가지고 할 수 있을까. 자문했다.


'안 갈래!'


20대 연기자의 꿈에서 돈을 벌기로 결심하다.


연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재능을 뛰어넘는 끈기도 없었다. 끈기도 없고 노력도 없었다. 진작에 나를 깨달았다. 화려함만 좋아할 뿐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뮤지컬을 전공하고 나서 취직한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하다가 나 자신을 깨달았다. 기획사 사장님께 말했다.

"저 배우 말고 기획하겠습니다."

기획자로 일하면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정식으로 월급을 받는 직원이 되었다.

그 당시에 한 달에 80만 원 정도 받고 일했던 것 같다. 기획했던 연극들이 대학로에서 흥행하고 지금 유명한 배우분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밥도 먹었던 시절이었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재미만 가지고 살 수 없었다.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나는 다른 직업을 찾았다. 지하철 입구 쪽에 놓여 있는 구직 신문인 메트로 신문을 매일 가져와서 일자리를 찾았다. 내 눈에 들어온 직업이 있었다. 텔레마케터. 뭐지? 뭔가 멋있는데! 정장 입고 다니면 되는 건가. 번듯한 직업과 월급이 기대가 되었다.

위치는 종각-시청 쪽에 위치하네. 좋아! 커리우먼이라면 이런 곳에서 일해야지.

이력서를 제출하고 1차 2차 면접을 봤다. 면접까지 통과한 나는 너무 기뻤다. 스스로 처음으로 직업을 가져보는 순간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안내받은 곳은 지하였다. 지하에 창문이 없고 좁은 책장이 다닥다닥 붙여 있었다. 그리고 전화기 한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두꺼운 전화부 책을 주면서 몇 가지 안내 사항을 전달해 주었다. 전화를 하고 이 종이에 있는 말 그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응? 뭐하라고요? 사수도 없고 상사도 없다. 그냥 출근과 퇴근을 체크하는 분과 내가 조금 일을 못하면 코치해 주는 누군가만 있었을 뿐이었다. 첫날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전화를 돌렸고 잡지를 구독하라는 말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화를 통해서 구독 신청을 받으면 기분이 좋았고 거절당하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텔레마케터를 제대로 한 번 해볼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무작정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안 좋은 부분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 영업을 기똥차게 해 보았다면 그리고 노력이라도 해 보았다면 일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 많이 배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이런 생각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드는 생각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때의 나는 많이 어리고 미성숙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텔레마케터를 하고 나서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배우의 꿈이 사라진 상태에서 내가 다시 꿈을 찾으려면 학교를 다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선택은 학교를 다시 가는 것이었다.


편입 후 삶의 목적을 찾으려 계속 노력하다.


시간은 흐르지만 나의 시간은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편입 후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의 선택이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학위가 필요했을 뿐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편입을 결심한 이유는 졸업장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갔다가 수업을 듣기 싫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이 많았다. 그 시간이 지옥 같았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걸까.

편입을 하고 나면 졸업할 시기에 해외에서 뮤지컬을 수입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00년대에는 아직 뮤지컬 시장이 커지기 전이였다. 한국에도 분명 뮤지컬 시장이 커질 것 같았다. 공연을 생각하면 심장이 뛰었다. 심장이 뛰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 유학이 필수였다. 유학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또다시 내게 질문했다.

투자할 만큼 열정이 있는가?

부모님을 설득할 만큼 정말 하고 싶은가?


답은 쉽게 돌아왔다.

아니.


이때부터 나에게 스스로 물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질문하고 답해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길을 잃다. 그리고 다시 길을 찾다.


길을 잃으면 일단 멈추면 안 된다. 계속 걸어야 한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졸업장을 어렵게 따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웨딩 플래너부터 영어 학원에서 영어 강사가 아니라 카운터에서 고객 관리를 하는 일까지. 인생 역전을 위해 통번역 공부를 하기도 했다.

영어 실력은 많이 높아졌지만 이 역시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노력을 뛰어넘는 끈기도 부족했다. 1년 반 정도 노력하고 포기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빨리 깨달았다. 더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이 없기도 했었다. 통번역 공부가 나에게 남겨준 것은 영어실력이었다.

통번역대학원을 갈 실력은 안되지만 영어로 밥 벌어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된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들으면 '어 영어 좀 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전에서는 다 드러나겠지만 말이다. 편입 공부 때는 영어가 너무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지만 통번역 공부를 통해서 영어가 재밌어졌다. 영어 공부 자체가 재밌는 습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나에게 좋은 습관이 생겼고 그렇게 한 가지의 무기가 생겼다. 나도 뭔가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다. 이 경험이 앞으로 나의 인생에 큰 교훈이 되었다.


삶의 방향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재능과 끈기가 부족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끊임없이 찾는 재능은 있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구나.라고 생각이 든 것이었다. 재능을 빨리 찾으면 좋지만 늦어질 수도 있다. 찾고자 노력하면 찾아지는 게 우리 인생인 것 같다. 공부에 재능은 없지만 영어로 밥 벌어먹을 수 있는 재능 정도는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은가. 스스로 자부심이 높아지고 한 번 맞 본 희열감과 성취감이 큰 역할을 한다. 앞으로 나에게 올 선택, 기회 그리고 삶의 계속 찾아가는 여정에 열쇠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삶의 방향을 일단 찾으면 된다.

일단 그 여정의 길에 들어서야지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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