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휴지

나를 자유롭게 하다.

by 쑤킴

어려서 꿈은 계속 있었지만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은 없었다.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였다. 아마 어르신들은 나를 보며 '쟤는 뭐가 되려나' 하고 궁금해하셨을 거다.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도 느껴본 적도 없었다. 20대부터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까. 왜 나는 이렇게 힘들까. 이렇게 계속 질문만 해 왔다. 대답을 얻지 못했지만 나에게라도 질문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오로지 나에게는 나만 있었다.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되었던 것이다. 외로웠던 10대와 20대를 통해서 나를 더 잘 아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 소리치고 울부짖던 내 안의 외침과 함께 나를 표현하고 싶었었나 보다.

그 의식이 계속 나를 변화시켰다.



나를 표현하다.


사업을 하기 전 마지막 직장 생활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뭔지 모르지만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날 카페에 있는 휴지에 그림을 그렸다. 볼펜으로 컵과 커피 포트를 그리고 바리스타를 그렸다. 드로잉이 뭔지로 모르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무언가'에 집중해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오로지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 시간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느낌표가 찍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아는구나! 처음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사람인 걸.



평생 나를 표현할지 몰랐는데 펜을 통해서 감정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흘려 보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을 통해서 말이다. 단 한 번도 그림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펜을 집어 들어 휴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세상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우연히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의미는 내가 꿈꾸는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기도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다른 문을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 재밌어지려고 한다.




고뇌하고 궁금했던 내 인생.

꾸준히 시도하고 노력했던 20대.

나를 끄집어내려고 한 시간들.

그리고 모든 힘든 시간들이 신이 나를 테스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펜 덕분에 나를 놓아줄 수 있었다. 돌 덩어리를 달고 있었던 것 같은 내 인생이 드디어 가벼워진 것이다. 인생이 이렇게 편하게 가면 좋으련만.

신은 나를 계속 시험에 들게 하신다. 어디선가 이런 글귀를 보았다. '신은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 열정으로 시작한 내 사업은 4년간의 시험대에 그렇게 올라서게 된다.


이제 가까스로 돌 하나를 풀어놓았는데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모른 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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