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유행과 독서 양은 비례하지 않는다.

도파민 중에 가장 지독한 것은 그야

by 별방구

SNS에 독서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는 것처럼 실로 독서율이 늘었는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는 양에 훨씬 과분하게 책을 사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는 양에 비해 훨씬 적은 책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것만으로 힘을 얻기도 한다.


이처럼 책을 대하는 방식은 각기다른 삶의 방식처럼 모두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방식처럼 책을 대하는 마음 또한 제각각이다.


그럼 나의 방식은 어떠한가?

나는 책을 사는 양과 읽는 양이 비교적 비례한 편이었다.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으면 보통 3권을 새로 사고, 그중 마지막 한 권을 다 읽을 때쯤 또 3권을 샀다. 책을 읽는 것에 한번 빠져들면 그 속도에 가속이 붙곤 했는데, 이 가속을 쭉 이어 주기 위해선 독서를 멈추거나 쉬면 안 된다는 나만의 암묵적 법칙이 있다. 가속을 붙이는 데는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반면, 가속이 떨어지기까지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꾸준한 독서는 선택이 아닌 노력

그리고 적절히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자칫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읽게 될 경우 끌어올린 이 가속에 일순간 급정거 버튼이 눌리며 마이너스의 속도로 끌고 가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종종 그 버튼이 눌려버리면 다시 독서를 하기까지 수개월, 혹은 일 년이 걸리기도 해서 꼭 주의를 해주어야 한다. 물론 다행히 지금은 급정거 버튼이 눌려도 회복 속도가 꽤나 빨라져 예전처럼 뭔가 그 마음을 끌어올리는데 쓰는 에너지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21세기는 책이 주는 편안함에 비하면 훨씬 더 달콤하고 강력한 도파민이 담긴 것들과 너무 쉽게 닿는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늘 싸운다. 책을 보고 싶으면서도 차마 눈앞의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나와 말이다.


더 건강하고, 더 유익하고, 더 흡족스러운 시간으로 채워주는 독서를 지속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어렵다. 분명 책을 읽으면 느껴지는 그 짜릿함을 아는데도 나는 자꾸만 손안에 쥐어지는 핸드폰을, 거대한 화면으로 나를 압도하는 티비를, 그 사이에서 내 책상을 한껏 빛내주는 태블릿에게 끌려가고 만다. 그리고는 후회한다. 침침해진 눈과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와 뻐근하게 아려오는 뒷목의 불편함으로 인해 나는 왜 스스로를 이렇게 피폐시키는가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구나 또 한 번 스스로를 비난한다. 그러나 돌이키지 못하는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바보다. 그리고 그 후회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멍청이다. 나는 그럼 바보 멍청이인 것인가?


100%의 바보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5분의 현명함(명상)과 15분의 유익함(독서)을 일상에 집어넣으려고 늘 노력한다. 왜 좋은 것들은 노력해야만 할까, 나쁜 것들은 이리도 쉽고 편한데.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참으로 고되다.


그러나 참으로 중독적이고 멈출 수 없는 전자파 가득한 도파민보다 책이 가진 한 가지 강력한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은은한 존재감이다. 책은 은은하게 자꾸 소리를 낸다. 나를 보라고, 보라고, 보라고. 속삭인다. 그 녀석을 곁눈질로 보며 애써 외면해보려 하지만, 끝내 나는 72시간 안에 지고야 말 것이다. 뭐 물론 그 속삭임은 내가 한 줄을 읽든 한 페이지를 읽든 한 시간을 읽든 동일하게 곧장 사라질 테지만. 하여간 제일 지독한 녀석이다. 아주 찐득하고 달달한 젤리 같은 짜릿함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그 끈질기게 은은한 존재감 하나로 여전히 소리를 내는 것. 그놈의 이름이 바로 ‘책’이다.


결국 이 참맛을 본 사람들은 제일 힘들 때 책을 찾기 마련이다.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주고, 차가운 일상에서 편안한 휴식을 주는 독서의 중독성은 어찌 보면 가장 지독하다.


나는 오늘도 자잘한 도파민에 젖어 들어 책을 몇 번이고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이 지독한 녀석에게 나는 또 지고야 말았다.


마음을 양식을 사는 기쁨

사도사도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것은 바로 책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다.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은데, 지금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 인생은 기니까 언젠가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기겠지. 대충 그런 핑계를 대며 우선 사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진짜 시간이 많아지는 때가 온다.


매일의 시간은 동일하게 24시간인데, 왜 언제는 시간이 많고 언제는 시간이 없을까. 그것 또한 마음가짐의 문제겠지. 무언가에 시간을 내어줄 아량을 베푸냐 마느냐, 그것은 시간의 주인인 ‘나’에게 전적으로 주어진다. 그래서 이제 나는 시간이 정말 많다. 물론 물리적으로도 많지만, 그 아량으로 베풀어지는 심리적 여유 또한 많다고 할 수 있다. 책에게 내어준 대신 줄어든 시간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한번 잠시 생각해 본다.


(5분 경과) 글쎄다, 모르겠다.


당신이 독서에게 베푸는 아량은 얼마나 될까?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다는데, 그들에게 나의 시간을 조금씩 나눠주면 한국의 평균 독서율이 조금 늘어날까. 안된다.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여유롭던 독서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녀석의 은은한 존재감

침대 옆에 쌓아둔 책과 가방에 담긴 한 권의 책, 어느 페이지쯤에 책갈피를 꽂아둔 채로 몇 년이 흐른 책들 모두가 나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가고 있다. 늘 공허한 이 마음을 천천히 채워주는 이 친구는 참으로 투명하고도 묵직하다. 얼마큼 채워졌는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갑자기 알게 되는 날이 있다. 그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느껴진다. 뭔가 단단하게 자리한 그 녀석들의 흔적이 문득 느껴지는 순간, 차마 설명할 수 없이 나는 당찬 발걸음으로 훌훌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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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