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사랑은 내게로 스며들어
지금은 책방지기이자 책사랑꾼인 나도 처음부터 책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느릿한 독서력과 낮은 집중력으로 나는 학창시절 내내 책 읽기를 힘들어 했다. 그런 나를 자칭 문학소녀가 되게끔 만든 것은 우리 엄마의 몫이 무척이나 크다. 엄마는 그 시절 90년대를 풍미한 진정한 문학소녀이자 책 사랑꾼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학교를 다니며 기억하는 순간부터 엄마는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 집 책꽂이는 늘 거대했고, 빈틈없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엄마는 기분이 꿀꿀한 날에도 책을 사고, 기분이 좋은 날에도 책을 사는 사람이다. 특히 기분이 안 좋거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을 땐 꼭 동양서림에 들러서 찬찬히 둘러보다가 마음에 닿는 책을 한 권 품에 안고 나왔다. 그렇게 슬프고 화가 나고 어쩐지 마음한구석이 답답했던 엄마의 무수한 나날들을 채워준 동양서림이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그런 날마다 서점을 걸어 나오며, 나는 엄마에게 조용히 이렇게 묻곤 했다.
나 : 기분이 좀 나아졌어..?
엄마 : 응, 완전.
나 : 다행이다.
엄마 : 오늘 고생한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야.
그런 엄마를 보면서도 나는 꽤 클 때까지 책에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글을 쓰라고 은은하게 말을 건네곤 했는데, 그 말을 늘 들으면서도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되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흘려듣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엄마의 그 은은한 주입식 권법이 나에게 통했던 것 같다.
어느 날엔가 나는 스스로 책의 맛을 터득하고, 또 글쓰기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늘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내가 책을 읽다 볼멘소리를 하면 엄마는 빨리 읽을 필요는 없다고, 책을 읽는 속도와 방식은 다양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책을 왕창 사두고 내가 읽지 않아도 엄마는 군소리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집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한데도, 또 새책을 사고 싶어 하는 내게 읽고 싶으면 얼른 사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건네주었다. 그럼에도 제 발 저린 나는 “전에 산 책들도 아직 안 읽었어”라고 먼저 말해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면 오히려 엄마는 책을 샀다고 당장 읽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이걸 사는 것 그 자체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엄마는 소비의 즐거움을 통해 내가 책을 친구처럼 여기도록 만들며,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나의 마음을 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책에 대한 거부감 없이 친근하고, 편안하다는 인식은 쌓이고 쌓여 나로 하여금 서서히 책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도서관은 맛있는 곳
무더운 여름날, 칼바람 부는 겨울날이면 우리는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가면 엄마는 내가 책을 한두 권 들었다 놓으며 지루한 표정을 짓기도 전에 먼저 은밀한 눈빛을 보내며, “우리 맛있는 거 먹고 와서 책 볼까”라고 말하면서 나를 지하 푸트코트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늘 좋아하는 돌솥비빔밥을, 엄마는 라면에 김밥을 먹었다. 왠지 나가기 귀찮은 휴일에도 엄마가 “우리 돌솥 비빔밥 먹고 올까?”라고 하면 나는 후다닥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게 되었다. 그렇게 맛을 쫓아 도서관에 간 날에도 밥을 먹고 나면 나머지의 반나절은 자연스레 서가로 올라가 책을 둘러보게 되니 읽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엄마의 이런 고도의 전략이 안 통할 리가 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여전히 도서관은 늘 친근하고 편안하며, 맛있는 곳이라는 추억으로 존재한다.
이제 엄마는 주로 몇 권의 애정하는 책들만을 반복해 읽는다. 그중 엄마가 가장 애정하는 책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다. 엄마의 독서 시간처럼 쌓인 우리 집엔 법정 스님의 책이 정말 많다. 엄마가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소유를 읽고 또 읽는 동안 내 손에는 다양한 책들이 오고 갔다. 같은 책을 또 읽고 싶어 하지 않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좋아하는 소설, 요즘 인기 많은 책에 대해 얘기를 하면 엄마는 늘 “오~ 그렇구나~” 하며 귀 기울여준다. 나의 독서 취향과 독서 감상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기에 종종 나는 신이 나서 말을 무한한 실타래처럼 뽑아낸다.
이제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서있으면 엄마보다 내게 익숙한 책이 더 많아진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낯섦이 나의 익숙함보다 더 진하고 강한 이유는 내가 엄마의 물을 머금고 자라난 화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화분은 자라나고 있다. 예전보단 그 양이 줄었을지라도 여전히 엄마의 물로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엄마의 물이 영원토록 마르지 않고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나는 더 깊고 너른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