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임 없이 그저 파도소리로 주는 위안
생각이 많고, 일상에 지치고,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나는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훌쩍 떠나버리기엔 당장 다음날의 일상이 나를 붙잡는다. 이대로 주말까지 남은 날은 3일. 조금만 버텨보자. 그래, 3일만 지나면 바다를 보러 가는 거야. 답답하지만, 버틸 힘을 주는 기다림으로 나는 토요일 이른 아침 시간대의 고속버스 좌석을 고른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의 빛과 찰랑이는 파도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어쩐지 그 상상 속 바다의 모습이 한결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바다에게는 어떤 힘이 있길래 이토록 짙고도 푸른빛으로 나를 숨 쉬게 해 줄까?
가방에 책 한 권, 작은 노트와 펜 하나를 담는다. 바다를 보면 자꾸만 무언갈 읽고 싶고, 쓰고 싶어 지니까. 이 세 개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 외에 내 어깨를 더 무겁게 할 무언가는 이제 필요 없다.
난 여름보다는 겨울 바다가 좋더라.
여름의 덥고, 습하고, 뜨거운 햇살 아래서 바다를 거닐면 어쩐지 그 찰랑임을 즐기기보다는 자꾸만 발을 담그고, 몸을 담그며, 시원함을 느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바닷물에 직접 들어가 물놀이하며 즐기는 것보단 한발 물러 서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런 나이기에 어쩐지 여름 바다는 그 풍경을 온전히 감상하기보다는 더위를 피해 시원함을 쫒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겨울 바다는 다르다. 얼굴이 깨질 듯이 추운 바닷바람에도 그저 멍하니 발이 붙들린 듯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추위 속에서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의 소리와 그 풍경이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자꾸만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복잡하게 들던 생각도 다 사라지고, 그저 바다와 나만 존재한다. 그 순간이 그냥 좋다. 그래서 나는 찬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 훌쩍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난 꼭 동해바다를 봐야만 해
나는 어릴 적부터 늘 동해바다에만 갔다. 동해와 서해라는 개념을 모르던 시절부터 나는 매년 속초와 강릉 바다를 갔다. 그러다 보니 바다 하면 당연스레 그곳의 풍경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동해바다, 그중에서도 강릉의 바다를 좋아하는 엄마를 따라 여행을 떠나다 보니 자연스레 나에게도 그런 익숙함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익숙함이라고 대충 에둘러 말하기에 동해의 바다는 내게 너무나 드넓은 마음들을 느끼게 했다.
힘들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늘 동해의 바다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 같은 소리로 나를 맞이해 준다. 바다는 늘 같은 모습이지만, 나는 늘 다르고 변해간다. 매번 바다를 보러 갈 때마다 나는 변화하지만, 그곳의 변함없는 모습은 나를 추억에 젖게 하기도, 미래를 떠올리게도 만든다. 때론 여행이 지치고 벅차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여행지의 편안함도 나는 동해바다 덕분에 느껴볼 수 있었다.
어떤 날에는 동해의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면 새삼스레 거칠고, 끝도 없이 깊어 보여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그 너머를 보려고 더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면 그 풍경은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다워진다.
바다처럼 깊고 너른 사람, 바다처럼 늘 잔잔한 울림이 있는 사람, 바다처럼 푸르고 반짝이는 사람.
바다는 어쩜 이렇게 사람을 뭉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을까. 바닷가를 찬찬히 거닐다가, 바다가 보이는 카페의 창가에 앉아 또다시 그곳을 보고 있자면 분명 아까와 같은 바다인데도 다른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또 달라지는 마법 같은 모습을 포착할 수 있는 게 바로 바다의 매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잔잔하면서도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거친 바다의 양면적 모습이 나는 가장 좋다. 그러니까 편안해 보여도 그 속은 들끓을 수 있으며, 마구 화가 나다가도 금세 평온해질 수 있다고 누구나 그런 거라고, 바다조차도 그런 거라고 내게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달까.
내게 어떠한 토닥임도 없이 바다는 나를 위로한다. 그저 존재만으로. 그래서 나는 바다의 소리와 냄새와 그 푸르름을 보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또다시 일상을 힘차게 살아가게 된다. 힘차게. 힘차게. 힘차게. 겉으로 보기엔 힘차지 않아도 내 속엔 그곳의 파도처럼 거칠고 강한 어떤 힘이 일렁이고 있다.
바다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꼭 한번 말해주고 싶다.
고마워, 바다야.
그러니 오래도록 그곳에 지금처럼 머물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