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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Dec 28. 2020

지구로의 귀환과 ‘숭고’의 지속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2013) ④

    우주에서의 고립과 우여곡절을 거쳐 라이언 스톤은 지구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라이언 스톤은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광활한 자연 공간에서 엄청난 중력을 느끼며 깨어난다. 우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중력이 지배하는 지구에서 그 중력을 이기고 일어나는 라이언 스톤의 표정은 엄청난 경이로 가득 찬 듯 보인다. 우주에서 벗어난 이 장면에서도 ‘숭고’는 계속된다.

    라이언 스톤이 지구로 귀환하며 불시착한 곳은, 위치를 알 수 없는 원시림과 같은 곳이다.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로 돌아왔으나, 모든 무전과 GPS가 고장난 스톤에게 이 곳은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우주와 같이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인지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이 구축한 도시나 마을이 아닌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듯한 원시림이라는 공간은 그 거대함과 광활함을 통해 우주와는 다른 ‘숭고’를 보여준다.


    그 규모와 깊이, 위치나 크기의 어떤 것도 인지할 수 없는 원시림 속에서 라이언 스톤 박사는 또 한 번 ‘숭고’를 느낄 것이다.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어딘지 알 수조차 없는 곳에 착륙한 스톤 박사에게 이 원시림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중력의 무게는 이 두려움과 불안감에 더해져 스톤 박사가 느꼈을 ‘숭고’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딛고 스톤 박사는 일어선다. 중력에 적응하며 다시 땅에 발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스톤 박사가 거대한 원시림으로부터 느끼는 ‘숭고’는 그를 불안하게 하겠지만, 우주에서 느꼈던 ‘숭고’와는 다른 상태일 것이다.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이 계속해서 지속되었던 ‘숭고’와 달리, 조금씩 원시림을 감각하며 이전의 지구에서 느꼈던 감각과 상상력을 복원해 갈 것이다. 감독은 경이에 가득 찬 마지막 장면에서의 스톤 박사의 표정 속에서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숭고’를 잊은 인간에게 ‘숭고’를 다시 일깨워줌과 동시에 이러한 ‘숭고’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증명하는 상징물로 가득 찬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숭고’의 감정을 일어간다. 그리고 현재, ‘숭고’는 인간에게 이성의 기회로 작용하기보다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숭고’를 느낄 수 있는 모든 공간과 존재들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가득 채우기 위한 개발만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비티」가 보여준 우주를 통해 관객들이 마주한 ‘숭고’는 이러한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한 행위인지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마주해왔던 ‘숭고’가 자신들의 사회적 상징으로 가득차면, 그 두려움과 불안감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리 인간이 가리고자 해도 ‘숭고’의 공간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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