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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Dec 21. 2020

‘숭고’의 공간으로써의 우주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2013) ③

    「그래비티」가 보여주는 우주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숭고함’을 떠올리게 한다. 칸트는 ‘공포를 자아내는 자연현상에 대한 체험’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숭고’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숭고는 자연현상의 압도적 크기로 인해 인간에게 찾아오는데 우주는 인간에게 이러한 숭고함을 느끼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인간에게 익숙한 삶의 터전인 지구와 비교했을 때, 우주는 그 규모를 알 수 없을 만큼의 광활함을 자랑한다. 특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상태와 모든 빛을 집어삼킬 것 같은 암흑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의 거대함을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만들고, 이것은 ‘숭고함’으로 나타난다.


    ‘숭고함’은 인간의 감각 작용을 정지시키고, 상상력 또한 무의미하게 만든다. 우주에 인류가 진출하기 전에 지구에서 우주를 연구할 때, 인간은 자신들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도구들을 활용하여 우주에 대한 수많은 감각들을 수집해왔다. 그리고 그 감각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우주’라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 상상력의 과정에서 천동설과 지동설, 평면우주론과 무한우주론, 빅뱅설 등, 맞고 틀림과 무관하게 수많은 가설과 이론, 세계관이 등장했다.

    하지만, 우주라는 ‘숭고’의 공간에서, 이러한 모든 상상력은 무의미해진다. 지구 위에서 상상했던 우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감각할 수 없을 만큼 끝을 알 수 없는 암흑과 진공상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숭고’의 공간 속에서 엄청난 불안과 공포를 마주한다. 불안과 공포는 계속해서 라이언 스톤을 지배하고, 영화 내내 그러한 상태가 지속된다.


    「그래비티」는 이러한 숭고의 상태를 기술적으로 최대한 복원해서,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에게도 라이언 스톤의 불안감과 공포를 전달하고, 더 나아가서는, 스톤 박사가 느꼈을 우주의 ‘숭고’까지도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우주는 공기가 없어 소리가 전달될 수 없는 진공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잡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 같은 소리만이 들리는 형태로 표현된다. 시각과 함께 인간이 어떠한 정보를 습득하고 상황을 인지하는 중요한 감각인 청각이 거의 차단된 형태로 묘사하는 방식은 우주의 ‘숭고’를 매우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불안감과 공포라는 감정을 대사나 행동으로 전달하기보다, 라이언 스톤이 느꼈을 우주의 ‘숭고’함을 전달함으로써 우주에서의 불안과 공포를 자연히 따라가며 느낄 수 있도록 하고, 관객들의 몰입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숭고’함과 마주한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은 무의미해지지만, 오히려 인간의 이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어떤 것도 감각할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은, 처음엔 ‘불쾌’의 감정인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지만, 어느 순간에는 더욱 더 이성적인 상태가 되고, 다른 대상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적 상태는 우주에서 고립된 스톤 박사의 모습에서도 느껴진다.

    처음에는 불안과 공포에 떨며 계속해서 방향을 잡지 못하던 스톤 박사는 어느 순간, 인공위성의 잔해들과 동료 맷 코왈스키의 죽음을 직면하고 어느 순간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죽음이라는 운명의 순응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인 후 더 안정된 행동들을 보여주고, ‘숭고’의 우주를 통해 극대화된 이성은 ‘우주’라는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으로부터 지구로 귀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주를 통해 느끼는 인간의 ‘숭고함’은 앞에서 언급한 불안감과 나약함, 공포감과 같은 감정을 포괄하는 아주 복합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숭고함’은 아마 태초의 인간들이 가장 많이 느꼈을 감정일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에, 개별적인 생명체로서 다른 생물들과 동일한 지위에서 지구에 존재했을 때의 인간은 오롯이 모든 상황과 위기들을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 우주에서의 인간은 태초의 인간이 느꼈을 이러한 ‘숭고’를 보여준다.

    우주의 거대함 앞에 존재하는 스톤 박사를 통해 관객은 ‘사회적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이 쌓아올린 지구 위의 세계에 가려져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거대함과 광활함을 ‘우주’가 주는 ‘숭고함’을 통해, 태초의 인간이 느꼈을 ‘숭고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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