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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Dec 18. 2020

인간의 세계에서 분리된 ‘사회적 인간’의 불안과 공포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2013) ②

    인간은 자신들의 사회적 관계의 증거로 지구를 활용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우주는 자신이 사회적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구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어딘가와 접촉되거나 연결된 상태로 존재한다. 자신의 삶의 터전에 발을 딛고 서 있거나 어딘가에 지지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중력 공간인 우주에서 인간은 어딘가에 지지해서 서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유영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위치나 행동을 선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허공을 떠돌아야 하는 것이다. 도시와 같이 인간의 사회성을 증명하는 어떠한 구축물과 실체 또한 보이지 않는 진공상태의 우주는 스스로가 사회적 인간임을 입증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 광활한 공간에 혼자 남아 있다는 고독함을 직면하는 사회적 인간은 계속적인 불안감과 나약함을 느끼게 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이러한 불안감과 나약함을 아주 극명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쌓아 올린 세계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지구와 달리,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성취가 제거된 우주공간에서의 고립된 인간을 통해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의 원초적 상태에 놓인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조망한다.


    우주공간에서 유일한 인간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우주정거장과 우주선을 벗어나면 인간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그저 우주에 남아있는 그 사람이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것이다. 충돌사고로 인해 우주정거장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우주를 유영하게 된 라이언 스톤은 홀로 남겨진 우주에서 엄청난 불안감과 공포를 느낀다.

    그 고립에서 스톤이 마주한 우주에서의 인간의 흔적이란, 사용기한이 끝나 폐기되어버린 인공위성들의 잔해가 모여 있는 모습뿐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역동성과 생명력으로 가득 찬 지구에서의 모습과 달리, 우주에서의 인간의 흔적이란 모든 것이 멈추고 사멸해버린 공동묘지와 같은 인공위성 폐기물 더미만이 보일 뿐이다. 죽음의 흔적을 목격한 라이언 스톤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사경을 헤매던 전과 달리 어느 순간부터 우주에서의 고독하고 외로운 소멸을 예감한 듯 초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묘지나 장례, 납골당과 같이 추상적인 상징으로써 죽음을 표현하여 인간에게 사후 세계에서의 사회적 관계 그리고 죽은 자와의 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지구와 달리, 우주에서의 인공위성 잔해(殘骸)들은 직관적으로 인간의 죽음과 소멸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죽음 이후 또 다른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사회적 인간의 기대를 처참히 파괴해버린다.

    지구에서는 산소와 환경의 영향으로 시신과 잔해들이 언젠가 산화되어버리지만, 진공상태에서의 잔해들은 어떠한 산화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바로 그 순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죽음이 곧 사회적 인간이 사회로부터 분리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스톤 박사는 동료인 맷 코왈스키가 자발적인 단절을 선택했을 때 더욱 절망했을 것이다. 사회적 관계를 통한 극한 속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우주에서의 선택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인공위성의 잔해를 통해 직면한 인간 죽음의 공포, 자신 또한 그러한 죽음의 순간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계속해서 스톤 박사를 두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고로 인해 우주정거장과의 연결에서 분리된 라이언 스톤은 자신에게 '위치가 어디냐?'며 계속해서 물어오는 지구에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한다. 이러한 모습은 스스로의 공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중력 진공 상태에서의 인간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지구에서 인간은 중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을 점유한다. 공간의 점유를 통해 그 사회에 속한 일원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이동을 할 때마다 자신의 위치를 계속해서 확인한다. 자신의 공간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고자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와 단위를 개발했으며, 기하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했고, 수많은 기술들이 응축된 ‘지도’라는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GPS라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사회에서 자신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했던 인류의 욕망은 실시간을 위치를 확인하는 기술을 발명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도 우주에서의 위급한 상황에서는 무의미해진다. 우주정거장에서 떨어져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 라이언 스톤에게 본부는 계속해서 ‘GPS 좌표가 어떻게 되냐’며 위치를 묻지만 중력이 존재하는 지구와 달리, 계속해서 몸이 회전하면서 방향이 변화하고 지구의 운동 물리법칙이 통하지 않는 우주에서는 GPS를 통해 방향과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란 매우 어렵다. 결국 본부는 스톤 박사에게 ‘태양과 지구를 활용해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지만 이 또한 무의미하다.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확인할 수 없는 스톤 박사는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낀다. 어디서든 위치를 확인하며 자신이 인간의 터전인 지구 위에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조차 없고, 자신이 거대한 우주에서 어떠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불안감은 ‘공간의 점유’가 사회적 인간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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