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서 Oct 30. 2022

덕후s, Be Ambitious!

덕질이 세상을 바꾼다

    꽤나 오랜 시간, 덕질은 자랑스럽기보다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다. 무언가를 덕질한다, 나는 덕후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한심하게 바라보가 철이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아니면 이른바 '오타쿠'에 대한 미디어 속 이미지와 겹쳐지며 사회성이 전혀 없이 애니메이션에만 열광하는 히키코모리 같은 삶을 상상하기도 했다. 단지 나는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일 뿐인데, 덕질은 당당하지 못했고 덕심을 드러내기보다는 속으로 숨긴 채 같이 덕질을 하는 친구들과만 공유하고 살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덕질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변화하고 있다. 소비할 거리가 넘쳐흐르다 못해 과잉이 되어버린 시대에, 사람들은 취향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계속해서 갈망한다. 덕질은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나만의 취향을 향한 한줄기의 빛이 되어준다. 취향을 가진다는 것이 멋진 일이 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덕심을 당당히 고백한다. 저 이거 좋아해요, 이 작가의 찐덕(진짜 덕후)에요, 오늘부터 입덕했어요. 덕후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덕후는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더 풍성하게 변화시켜왔다. 나는 덕후가 가진 힘을 믿고 있고, 덕후인 나 또한 그 힘을 세상에 실현하는 중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아간다.

    덕후는 세상의 빛깔을 만드는 사람이다. 대학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로니에 공원에 가면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 쓰인 조형물이 있다. 그렇다. 경제성이나 실용성이 없음에도 예술이 사회적인 의미와 기치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세상을 흥미롭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먹고사니즘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그 문제가 인간의 모든 삶을 정의하진 않는다. 생존 이상의 재미와 풍성함을 추구해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덕질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덕질이 밥먹여주냐',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덕후들은 덕질을 이어간다. 하지만 우리가 꼭 밥먹여주는 일, 생산성이 높은 일만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덕후처럼 비생산적이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비로소 인간들의 삶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빛깔로 가득찰 수 있다.

    덕후는 K-콘텐츠 열풍의 주역이다. 한국의 컨텐츠들이 전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단편적인 관심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물론 국내 창작자들의 뛰어난 역량이 중요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이러한 열풍의 원동력을 창작의 영역으로만 국한하기엔 무리가 있다. 두 손이 마주쳐야만 박수소리가 나듯, 창작과 함께 소비가 균형을 이룰 때 궁극의 컨텐츠가 완성된다.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진 창작자도 관객의 반응이 없다면 창작을 지속할 수 없는 법이다. 덕후들이 자신의 열정과 함께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창작자는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 어찌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를 후원하며 예술을 꽃피운 메디치 가문처럼 21세기에는 덕후들의 열정적인 덕질이 컨텐츠 산업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창작자들의 절대 다수는 무언가에 대한 덕후이기도 하다. 창작이란 결국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온 무엇인가를 딛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새로운 것을 향한 여정에는 기존의 것을 향한 덕질이 필수적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도 한 때는 엄청난 영화광이었을 것이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소문난 책덕후였을 것이다. 만화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 만화작가가 되었다거나,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 뮤지션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기존의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한 덕질이, 그 다음 세대의 새로운 창작자를 만들어내고, 그 창작자들은 새로운 덕후를 끌어당긴다. 그렇게 덕질은 새로운 덕질로 계승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세상의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온 것은 결국 덕후들의 이어달리기였던 셈이다.


 덕후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품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랑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을 덕질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 다큐 <성덕>(2022)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인터뷰이가 이렇게 말했다. 덕질을 '사랑'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사실 덕후만큼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이들도 없다. 단지 그 사람이라서, 혹은 그 작품이니까,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상 하나 없이 덕질의 대상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사랑은 정말로 진솔하고 순수한 방식의 사랑이다. 혐오와 구별짓기가 만연한 시대, 연대와 사랑의 마음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데, 어쩌면 이 험난한 시대를 넘어가는 데에 있어 덕후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든다. 떡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속담처럼, 사랑도 베풀어본 사람이 베풀 수 있다. 사랑할 여유조차 찾기 어려워지는 세상 속에서 덕후들의 사랑이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덕후는 그만큼, 선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덕후들이여, 야망을 가지시라. 부끄러워 말고 당신의 덕심을 만천하에 알리시라. 덕질은 지금껏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꿔왔고, 당신의 덕질에도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담겨 있을지니. 당신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만큼, 당신의 덕질이 더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만큼, 세상은 더 다채롭고 재미있는 곳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덕질에 임하자. 어차피 하는 덕질, 행복하게 덕질하자.

이전 13화 우울한 해피엔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