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시리즈를 보다보면 과거와 현재의 화풍이 변화한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사소하고 디테일한 변화가 아닌, 아주 극명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코난을 접한 이들이 보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과거 인물들의 모습과 현재 방영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이게 같은 사람이라고?' 싶을 정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초창기의 그림체는 아주 선이 굵고 둥글둥글한 이미지가 강한, 원색 위주의 화풍이다. 인물들의 눈이 얼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신체 비율도 그다지 좋지 않아 움직임도 어색한 측면이 많다. 반면 최근의 작품들은 선이 가늘고 등장인물들의 비율도 길쭉해진 그림체로 변화했다. 움직임도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화면 곳곳의 디테일도 월등히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상반된 두 그림체 사이의 변천사를 보는 것도 덕질을 하는 나름의 재미 중 하나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듯, 시간이 흘러가면서 코난 시리즈도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물론 코난 세계관 속 인물들은 1살도 더 먹지 않았지만 말이다.
세상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이, 과거와 현재만 놓고 보면 순식간에 변한 것 같지만 그 과정을 보다보면 점층적으로 변해오는 과정이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들만 볼 때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가도, 전반적인 흐름을 돌이켜보다보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과거 에피소드의 장면이 회상의 방식으로 현재 에피소드에 다시 등장할 때면 이러한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보인다. 나무만 보다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이런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피부로 느껴진다.
코난이 워낙 오랫동안 생산되고 있는 콘텐츠여서 더욱 그렇겠지만, 계속해서 변화하는 화풍 속에서 팬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비교적 최근, 팬들 사이에서 소위 '신(新)작화'라 불리는 2010년대 이후 화풍을 좋아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고 배경의 그래픽들도 훨씬 생동감 넘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작화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시리즈의 완전 초창기, 즉 90년대의 작화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본 기억은 거의 없지만 2000년대 이후 2010년 전까지의 '구(舊)작화' 화풍이 나았다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선이 가늘어지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진 대신 화면의 비주얼이나 색채의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비판받는 신작화왜 비교했을 때 구작화만이 가진 독특한 세계가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듯하다.
요즘도 화풍은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구작화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이러다 점점 더 작화가 망가질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신작화를 선호하는 나도 이러한 우려에는 일부 공감하는 바이다. 물론 최근의 작화가 자연스러움의 측면에서는 더 뛰어날지 몰라도, 다른 만화들과 비교했을 때 명탐정 코난만이 가졌던 개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코난만이 가진 그 개성이 팬들을 사로잡았을텐데, 그 색깔이 흐릿해진다는 건 컨텐츠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위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공동작업이 필수적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숙명일지 모르겠다. 아오야마 고소가 최초의 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한 것은 맞지만, 그가 혼자서 그 많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니만큼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손을 합쳐 마치 한 사람이 그린 것 같은 또 하나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나 코난은 장기연재 작품이고, 만화와 TV애니, 극장판과 기타 버전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많은 인기 작품이니 만큼 이러한 공동작업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작화가 변화하는 시기가 그 순간순간마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그림을 총괄하는 작화감독이 교체되는 시점과 맞물린다는 것이 우연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물론, 시리즈의 작화감독을 맡는 이들은 모두 아오야마 고소의 작품 세계와 코난의 특성을 그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사람이고 이전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창작의 영역에서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아주 중대한 변화다. 아무리 감추려해도 그것은 자연히 티가 날 수밖에 없는 법이다. 특히나 예리한 팬들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구작화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반응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변화하는 작화에 대한 팬들의 그리움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문제와 연결된다. 최근 작화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디테일에 대한 부분인데, 이는 노동력에 대한 부분과 직결되어있다. 명탐정 코난 제작과정에서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투입인력을 무리하게 줄였고, 이 과정에서 디테일에 소홀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의 뒷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컨텐츠를 둘러싼 노동력의 문제는 비단 명탐정 코난 시리즈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유명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감독의 화실이라고 하면 여러 명의 이른바 '어시' 혹은 '문하생'으로 불리는 이들이 그의 작업을 보조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들의 저임금 문제도 문화산업에서 오랫동안 제기되어온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유명 작가와 함께 작업하면 성공의 발판이 된다는 이유로 착취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사실이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해야했던 과거와 비교해 훨씬 편해지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꼭 노동의 절약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의 이해>(민음사, 2002; 1964)에서 가전제품 등의 새로운 기술은 노동의 절약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위한 장치일 뿐이라 주장한다. 단순히 노동의 형태가 변화하며 추가될 뿐, 기계가 노동자의 노동량 자체를 줄여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손으로 그릴 필요는 없어졌을 지 몰라도, 줄어든 노동력만큼 더 많은 디테일을 요구하게 된다. 게다가 코난 시리즈의 사례처럼 일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인력을 감축하여 1인당 노동력은 전혀 경감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자신의 어시스트들을 쥐어짜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마치 작품의 퀄리티를 증명하는 것처럼 자랑스레 여기는 아시스트들도 존재한다. 물론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선 누군가의 노력과 창작의 고통이 수반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착취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문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산업 현장에서 노력과 착취는 점점 경계가 흐릿해지고, 착취는 마치 '아름다운 노력'인 것처럼 포장된다.
이러한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 중 하나는 아마도, 컨텐츠의 뒷편에도 사람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망각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대중과 사회는 컨텐츠의 재미와 감동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것이 이룬 성과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하지만 그 뒷편에는 사람이 있고, 그곳은 누군가의 노동이 지탱하는 일터이기도 하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다수의 인원이 모일 수밖에 없는 영화촬영 작업에 차질이 빚어져 제작과정이 딜레이되고 있다는 뉴스가 속속 들려왔다. 여기서 우리는 컨텐츠의 뒷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최근 한 유명 웹툰 작가의 과로사 사건을 계기로 웹툰 작가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유산에도 연재 부담 계속"…웹툰 작가 '살인적 업무환경' 개선 시급", MBN 2022-09-07). 언론들은 마치 새로운 사건인 양 보도를 이어가지만, 암암리에 존재해왔지만 주목하지 않았던 고질적인 문제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미디어 속 스타 작가들의 화려함에 가려져있던 평범한 창작자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거대 플랫폼에 의한 갑질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착취에 내몰린다. 사회와 정책당국은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냐, 프리랜서는 원래 그렇다는 식의 이유로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들이 K-컬쳐가 전 세계의 중심에 있다며 열광하는 한국사회에게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아 더 슬프게 느껴진다. 그들의 노동환경을 보다보면 우리의 문화산업이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문화예술은 그 화려함으로 대중들의 이목을 끈다. 일상에선 느낄 수 없었던 재미와 감동을 통해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시민들에게 숨통을 트이게 한다. 하지만 그런 예술이 누군가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 세계를 강타한 영화 <기생충>은 작품성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한 작업환경으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환영할 일이지만, 당연한 일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씁쓸하기도 하다.
더 행복한 컨텐츠를 만드는 비결은 간단하다. 컨텐츠 앞에 마주 앉은 사람만큼이나, 컨텐츠 뒷편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컨텐츠를 만들면 된다. 화려한 얼굴만큼이나 뒷면까지 아름다운 컨텐츠를 위해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누군가의 영혼을 갈아넣은 작품보다 행복으로 가득한 작품이 더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