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년 차,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우리 가족은 셋이다.
그런데 3월 중순부터 넷이 되었다. 남편의 계모임 지인인 동생이 우리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내와 잦은 다툼이 있을 때마다 2박 3일, 길어야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가곤 했기에 이번에도 잠시일 거라 생각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크게 싸웠을 때도 잠깐 피신하듯 왔다가 돌아갔으니 이번도 다르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술을 마시고 들어간 날, 설거지 문제로 다투다 화가 나 아내를 때렸고, 딸아이들 앞에서 경찰이 출동해 100m 접근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당분간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겠구나 싶어 우리 집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가 한 달이 되어간다. 29평 집에서 네 식구처럼 지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는 저녁 6시면 식사를 마치고 각자 운동을 가는 일정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식사 시간은 자꾸 늦어지고, 나와 딸의 일상도 흐트러졌다. 남편과 출퇴근 시간이 다른 동생의 생활 패턴에 맞추다 보니 내 저녁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식비 또한 부담이 된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한 사람이 더해지니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묻자 부모님이 여행을 다녀오시면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와이프가 오피스텔을 얻으라 했다는 말을 하며 더 머물 수도 있다는 기색을 보일 때면 속이 답답해진다.
안타까움과 불편함 사이에서 마음이 갈린다.
우리 가족의 일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 동생이 오고 나서 생각이 든 것은 각자의 다름을 가지고 함께 식구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한 공간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생활의 속도와 온도, 말의 방식과 침묵의 결까지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서로의 리듬에 익숙해져 있었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약속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더해지자 그 익숙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보였다.
누군가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와 감당은 다른 문제였다. 마음은 도와주고 싶으면서도, 일상은 조금씩 균형을 잃어갔다. 함께 산다는 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섬세한 조율 위에 서 있었는지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