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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도망자의 주말

엄마의 은밀한 주말 집 탈출기

by 반짝별 사탕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 집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바로, 나 자신이다. 엄마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내 마음속 진짜 나. 하지만 이걸 가족들한테 들키고 싶지 않다.


내가 주말 내내 소파에 널브러져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계속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책만 펼치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고, 곧이어 침대의 부름에 굴복하고 싶어지니까.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강사들끼리 스터디가 있다"**는 그럴싸한 핑계로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섰다. 신랑과 아이를 집에 두고, 나 혼자만의 비밀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것이다. 와우, 드디어 혼자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다. 커피숍에 가든, 집 앞 스터디 카페에 가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차키는 꼭 챙겨야 한다.


왜냐고?
집에 차가 없으면, 내가 아주 멀리 갔구나 싶을 테니까. 이 비밀의 시간 동안 나의 흔적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들키고 싶지 않다. 엄마의 탈출은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


가방을 열어보면, 그 안에는 딱 필요한 것들만 있다. 노트북, 텀블러, 간단한 요깃거리. 그렇다, 나는 지금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미션을 수행 중이다.


커피숍 구석자리, 혹은 스터디 카페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의미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노트북을 열어 놓는다. 사실 뭘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엄마의 널브러짐이 절대 집 안에서 발각되지 않는 것이다.


집에서는 내가 없는 사이 금쪽같은 입양아들과 우리 집 딸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아마 그들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서로 간섭받지 않고, 누구도 잔소리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 테니까. 사실, 엄마인 내가 굳이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계속 지켜봐야만 하는 주말이라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보는 순간 잔소리할 거 뻔하고, 잔소리하는 내가 더 싫어질 게 뻔하니, 차라리 안 보는 게 상책이다.


다가오는 겨울 방학을 생각하면, 이 탈출 작전은 더 고도화되어야 한다. 집에 있으면 아이와 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잔소리 폭탄이 위태롭게 놓여 있는 꼴이 될 테니까. 다행히 방과 후 수업이 있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내 대피소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학 동안 계속 숨어 다닐 만한 장소를 미리 계획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학 끝 무렵, 나와 아이 사이엔 폭풍 같은 전쟁의 흔적만 남을지도 모른다. 커피숍, 스터디 카페, 그리고 학교라는 성소가 아니었다면 이 엄마의 탈출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결론은 하나다. 나는 숨고 싶다. 나의 늘어짐, 나의 게으름, 나의 ‘의미 없는 시간’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숨어든다. 커피 한 잔, 노트북 한 대, 그리고 이 모든 걸 가장한 나만의 여유를 위해.


엄마도 숨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숨이 필요하다. 그러니 오늘의 이 은밀한 주말 탈출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 믿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 본다. 물론, 대체 뭘 하려고 이걸 들고 나왔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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