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차를 태우고, 내 시간을 가족에게 태운 하루
오후 3시 30분.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아가씨가 김밥을 말아두었으니 저녁은 하지 말고 집에 와서 가져가라는 연락이었다.
"응, 잘 먹을게. 고마워,"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말 회사 회식이라며 회식 장소까지 태워다 달라는 요청이었다. 가까운 곳이라며 부탁하는 남편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회식 장소까지만 데려다주면 되겠지,’ 하며 마음속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곧이어 딸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친구와 놀고 있는데, 내일 맞기로 한 예방접종 병원 근처라는 것이다. “엄마가 먼저 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있을 테니, 잠깐 주사 맞고 집으로 가자,” 했더니 딸은 알았다고 했다.
이어서 덧붙이길, “근데 친구가 6시까지 학원 가야 한대. 주사 맞고 바로 집으로 가야 해,”라고 말했다. “그래, 그럼 주사 맞고 바로 집으로 가자,”라고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나는 스터디카페에서 수업 계획안을 짜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동선을 계산했다. ‘남편을 회식 장소에 내려주고, 병원에 가서 접수후 예방접종을 맞히고, 딸과 친구를 각자 집 앞에 내려주고, 아가씨 집에 들러 김밥을 가지고 오면 되겠군.’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병원에서 딸이 주사를 맞고 원무과 앞에 섰을 때 또 다른 전화가 왔다. 어르신을 집에 모셔다 드려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어르신은 우리 가족에게 고마운 분이긴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늘 저녁는 온종일 라이더로 보내게 생겼구나.’
참을 수 없는 열받음이 치밀어 올랐다. 왜 내가 계속 이렇게 사람들의 심부름꾼처럼 움직이고 있는 건지, 화가 났다. 특히 남편이 떠올랐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매번 그의 술자리를 위해 운전해 주고 있다.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르신을 모셔다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오늘 내가 얼마나 많은 라이더를 했는지 알기나 해?
그런데 왜 또 어르신까지 데려다주라고 하냐고!” 화가 난 나머지 구박 섞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신랑은 매번 그렇듯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미안해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도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걸 몰랐지? 매번 내가 왜 참아왔지?’
오늘, 순간순간 내가 어떤 역할로 움직여왔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라이더를 넘어서,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울적하게 만드는 하루였다.
엄마의 삶은 이렇게도 고단한거구나 정말 대단한일을 하고 있는거구나...

"그래도 오늘 하루 라이더로 잘 해냈어" 라며
스스로를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