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되면 처음 로또를 사던 때가 떠오른다.
매주 오천 원씩, 십년 동안 꾸준히 로또를 구매하던 할아버지가 결국 1등에 당첨됐다는 뉴스기사를 읽던 날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계산기를 두드렸다. 계산해보니 로또를 구매한 값은 260만원 남짓인데, 1등 당첨금은 20억쯤 되니 당첨되기만 하면 무조건 남는 장사였다.
매주 산다고 해서 확률이 누적되는 것도 아니건만, 십년쯤 사면 한 번은 당첨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이미 당첨금으로 구매한 아파트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내가 서있었다.
마침 오며가며 봐둔 유명한 로또 명당이 집 근처에 있었다. 혹시 당첨됐을 때 주인이 내가 당첨자인 걸 알아볼까봐 목도리로 코와 입술을 가려 눈만 보이게 했다. 그리고 두꺼운 외투를 입어 본래 내 덩치보다 더 거대하게 보이도록 위장한 뒤 판매점으로 달려갔다.
처음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로또작성용지가 놓인 곳으로 다가가서 체크한 뒤 판매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로또 처음 사시나 봐요.”
분명 자연스러웠는데 내가 내민 로또용지를 보자마자 주인이 단번에 알아챘다. 당황한 나는 눈만 깜빡거리며 주인을 쳐다봤다. 주인은 별거 아니라는 듯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동은 그냥 매대 오셔서 자동으로 달라고 하시면 돼요. 용지 작성 안 해도 돼요.”
검색을 통해 수동보다는 자동이 당첨확률이 높다는 정보를 듣고 당당하게 작성용지 숫자 선택에 모두 자동을 체크해서 내밀었던 것이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로또를 구매하려던 나는 멋쩍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로또를 받아들고 판매점을 나왔다. 혹시 당첨됐을 때 판매점 주인이 나를 기억하고 당첨금 나눠달라고 협박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필 복권을 산 날은 월요일이었다. 나는 그 날부터 당첨발표가 있던 토요일까지 조금씩 야위어 가기 시작했다. 당첨된 이후 수령은 어떻게 할지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느라 일주일 내내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세금 떼고 수령하면 그래도 20억은 되겠지. 그 돈으로 강남에 집 사면 끝인데, 차라리 다른 지역 아파트를 사고 차를 사는 게 낫겠다. 부산 해운대 아파트가 좋지 않을까. 북한이랑 전쟁나면 일본으로 도망가기도 수월할 것 같은데. 지인들한테는 어디까지 알려야 하지? 평소에 당첨되면 친구들 나눠주겠다고 큰소리치지 말걸. 이 기회에 해외여행도 가볼 수 있겠다. 아! 직장 상사의 뺨을 때리고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지는 것도 해볼 수 있겠는걸. 표정 볼만하겠는데. 나의 상상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로또 당첨금 수령 방법에 대한 유명한 글도 있었다.
너무 들떠서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되 택시를 타고 갈 거라면 서울역에 내려달라고 해야 한다. 농협 본점에 간다고 하면 택시기사가 로또 1등 당첨자라는 것을 알아채고 납치, 강도, 감금, 폭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차림도 농협에서 근무하는 직원처럼 보이게 무난한 정장을 입어야 하고, 1층 안내데스크가 아닌 곧장 5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당첨금 받으러 왔다고 말해야 한다. 당첨금 수령 시 은행 직원이 수령금을 어디에 쓸 건지 물어보면 단호하게 사채 빚을 갚는데 쓴다고 말한 후 어떤 영업에도 휘둘리지 말 것을 상세히 적은 글이었다. 이 글을 수차례 반복해서 읽으며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토요일을 기다렸다.
당연히 이 기대는 당첨발표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천 원도 당첨되지 못해 본전도 못 찾은 나는 다음 주를 기약하며 다시 출근하는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십년 동안 매주 꾸준히 사겠다는 의지조자 흐릿해졌기에 당첨 이후의 화려한 인생은 다시 불확실한 미래로 남았다.
매년 새해마다 처음 로또를 구매하고 당첨발표 전까지 끙끙거리던 일주일이 떠오르는 건 그때의 설렘과 두려움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로또를 산 사람처럼 올해는 대박이 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할까봐 혹은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될까봐 걱정되는 것이다. 결국 그 어떤 행운이나 불행에도 휘둘리지 않고 덤덤하게 나아가는 것이 답이란 걸 알지만 나는 그렇게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로또당첨을 꿈꾸던 그 때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올해도 긍정적인 미래만 펼쳐지길 신께 기도해볼 뿐이다. 나는 모든 신을 믿으니까 그 중 한 존재쯤은 분명 들어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로또당첨보다 이뤄질 확률이 높은 기도란 뜻이다.
올해 연말에는 부디 로또 1등 당첨된 사람의 여유로 살아가게 해주세요. 돈 좀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베풀 수 있게 해주세요. 모두들 아프지 말고 자주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게 해주세요. 로또 한 장 산 것만으로도 넘쳐나는 상상력을 전부 글로 풀어낼 수 있게 해주세요. 끝까지 쓸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