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운세

[오늘도, 사람!]

by 별체


내게 계획이란 도미노 같은 거다. 매번 세우긴 하는데 지켜본 적이 거의 없다. 매번 무너지는 도미노를 바라보다가 결국 다 치워버리고 자리에 드러눕는 걸 좋아한다. 도미노의 본질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밀어 넘어뜨리는 거라는 그럴듯한 변명과 함께 자주 요행을 바란다.



그 중 하나가 다양한 신을 골고루 믿으며 소원을 이뤄 달라고 비는 것이다. 이건 확률 게임이다. 여기저기 빌어 놓으면 누구 하나는 꼭 들어주시리라 믿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신년운세를 보는 것이다. 운세가 얼마나 좋고 나쁜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좋은 것만 새겨듣고 나쁜 것은 기억도 못 하기 때문이다. 그저 신년운세를 보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둔다. 미래에 대해 자주 걱정하는 내 마음을 달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다.



인터넷으로 보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듣는 걸 좋아하고, 한 곳에서 적어도 5년 이상 운영한 점집을 찾는다. 그건 내가 운세는 믿지 않지만, 운세를 보는 역술인의 경험은 신뢰하기 때문이다.



생년월일이야 한 번 태어난 이상 절대 변하지 않는 정보이기에 어딜 가도 비슷하게 말한다. 그것만으로는 어떤 역술인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한곳에서 오래 운영한 점집의 역술인은 사주 이외에도 사람의 외모나 행동, 언어, 습관 등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유추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내가 믿는 건 사람을 많이 본 사람의 빅데이터다.


23년도 운세는 부지런하게도 작년 연말에 미리 봤다. 친구의 소개를 받고 처음 가본 곳에서 나보다도 젊은 여자를 만났다. 베이지색 니트에 검은색 조거팬츠를 입은 선한 인상의 역술인이었다. 편의상 술님이라고 하겠다.



생년월일도 말하기 전에 술님이 입을 열었다.


“아직 결혼 안 했죠?”

“저는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건데...”



이런 말은 또 처음 들어봤다면서 술님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니에요, 안한 거예요. 결혼 늦게 하란 말 많이 듣지 않았어요?”

“그거 제 또래 미혼 여자들은 점 보러 가면 다 그 얘기 듣던데요...”



술님은 다시 킥킥 웃으면서 내 생년월일을 물었다.



“손님은 진짜 안한 거예요. 늦게 하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고. 중혼수가 있어서 그래요. 결혼 두 번 할 수 있는 팔자. 아예 결혼을 늦게 하면 이혼을 막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남들이 보통 두 번째 결혼할 나이쯤에 첫 결혼을 하라는 거예요.”

“언제쯤이요?”

“최소 삼십 대 후반. 아예 마흔 넘으면 안전하고요.”



항상 사주 보러 갈 때마다 들었던 얘기라 놀랍지는 않은데, 왜 점점 결혼하라는 나이가 더 늦어지는 걸까.



갑자기 전 직장 상사가 떠올랐다. 같이 식사하면서 이 얘기를 꺼낸 적 있었는데 무당들이 악담을 퍼붓는다면서 나보다 더 분노하셨다. 그땐 오히려 내가 그냥 재미로 넘기면 된다며 상사를 달랬는데, 한 살 더 먹고 난 지금은 그 말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 등골이 서늘했다.



“아니, 근데 솔직히 지금 결혼할 마음 있어요? 없잖아요.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지금도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걸 안 하는 건데. 남자가 달려들어도 다 밀어내는데 지금.”



뜨끔했다. 몇 달 전 아빠가 퇴직하시고 무언의 압박이 사라지면서 결혼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님의 말에 내색하면 왠지 말려들어 주야장천 이 얘기만 하다 끝날 것 같아 최대한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은 결혼한다고 해서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바뀌는 사람도 아니에요. 당분간 연애나 해요. 궁금한 게 어차피 결혼 운도 아니시네. 올해 돈 버는 일에 집중해요. 올해부터 막힌 운 풀리는 시기라서 이제 하고 싶은 거 하면 진짜 성공할 수 있어요.”



이거다! 드디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어차피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걸 알고, 술님이 내뱉는 말에 해당되는 사람은 나 말고도 엄청 많을 것이다.



그래도 나 아닌 남이 확신을 갖고 던져주는 말은 꽤 자주 위로가 된다. 올해도 이 한마디가 몇 번이고 무너질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올해 신년 의식은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이후에는 늘 듣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난생 처음 듣는 척 하면서 몇 번 끄덕이고는 감사 인사를 건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술님이 웃으며 말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었죠? 나쁜 건 지금 기억 하나도 안 나죠?”

“그런 것도 사주에 나와요?”



술님이 크게 웃으며 덧붙였다. “사주는 오히려 정반대인데. 그냥 얼굴 표정만 봐도 알겠어요.” 역시 술님의 빅데이터는 예리하다. 평소에는 온갖 불안요소들을 먼저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요행을 바랄 때는 머릿속에 꽃밭만 펼쳐놓는 나를 단번에 알아본 모양이다.



내년에도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점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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