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가르쳐준 사람들(2)

[오늘도, 사람!]

by 별체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지만 왕왕 그 사실을 잊는다. 정확히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자주 착각한다.



이럴 땐 나 아닌 남으로 살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시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다양한 세상이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내가 영원히 나이기 때문에 지치지도 않고 자꾸 착각한다는 사실은 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일명 주인공 의식이 가장 강했던 시기를 고르자면 학창시절이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 때의 나는 항상 주목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꼬마였다. 주목받기 위해서 뭐든 잘해내는 것에 강박적으로 매달렸고, 내가 뭔가를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달리기 도중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거나, 인기투표에서 1등을 못하거나, 일기 검사에서 맞춤법 지적이라도 받는 날은 분에 못 이겨 이불 뒤집어쓰고 울었다. 자존심 때문에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조용히 울었지만 매번 엄마에게 들키곤 했다.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초등학생이 잘해내야 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나는 강한 승부욕과 부모님의 조력 덕분에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을 잘 해냈지만, 유독 몸으로 하는 것만큼은 취약했다. 자전거, 롤러브레이드, 등산 같은 건 곧잘 했는데 문제는 순간적으로 해내야 하는, 순발력이 필요한 것들에는 영 재능이 없었다. 이를테면 춤, 달리기, 뜀틀, 펌프.



4학년 때 단짝 영이네 집에 처음 놀러갔던 날이었다. 친구 집에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니라며 엄마가 사과 봉지를 챙겨줬다. 초등학생이 들기에는 제법 무거웠던 터라 낑낑대며 들고 갔는데, 나는 친구 집 앞에서 사과의 무게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대문의 크기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빌라 3층에서 세들어 살고 있는 우리집과는 다르게 단독주택인 친구의 집은 대문만 3개였다. 왼쪽의 두 개는 차가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문이었다.



오른쪽 문 옆에 있던 벨을 누르자 띠-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내 시야는 순식간에 초록색으로 가득 찼다. 만화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잘 꾸며진 정원이 눈앞에 있었다.



이런 집이 실제로 있다는 것에 놀라 잠시 서 있었는데, 저쪽에서 집 현관을 열고 영이가 나를 불렀다. “뭐해? 빨리 와~!” 얼떨떨한 기분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 현관 앞에서 영이가 슬리퍼를 신으라고 건네줬다. 집에서 웬 슬리퍼? 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하라는 대로 얌전히 신고 들어간 그녀의 집 바닥은 하얀색 대리석이었다.



너희 집 엄청 좋다고 소곤거리자 영이는 그저 으쓱할 뿐이었다. 어머니께 사과 봉지를 건네고 인사를 드린 후 영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충격적이었던 건 나는 동생이랑 방 하나를 같이 썼는데, 영이와 동생은 각자 개인 방을 쓴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컴퓨터도 각자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아빠가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컴퓨터 있는 집 자체가 거의 없는데 두 대라니! 우리 집도 한 대 밖에 없는데 말이다.



놀라움도 잠시 나는 친구의 컴퓨터 앞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네 방향으로 화살표가 크게 그려져 있는 비닐판이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영이가 나를 초대한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그 무렵 영이는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커다란 오락실을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했다. 그 오락실에는 펌프라는 게임이 새로 들어왔는데 재밌다며 계속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매번 거절했다.



오락실 근처를 지나가면서 보니 음악과 함께 화면에 뜨는 화살표대로 발판을 밟는 게임이었다. 얼핏 봐도 내가 못할 게임이란 것을 알았다. 못하는 모습은 죽어도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 나는 갖은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초등학생 때는 뭘 같이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친구의 거절은 세상이 무너지는 일과 같다. 몇 번의 거절 끝에 토라진 영이와 멀어질까봐 결국 마음 단단히 먹고 용기내서 고백했다.



“나 펌프 같이 몸으로 하는 거 못해.”

“못하는 게 뭐? 나도 못해. 재밌으면 됐지.”

“난 못하면 재미없어. 잘해야 재밌어.”

“그럼 가서 연습하면 되지!”

“내가 못하는 모습을 남이 보는 거 죽어도 싫단 말이야.”



영이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이해 못한 것 같았지만, 내 비밀을 자신에게 털어놓았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다행히 그 뒤로 오락실을 가자고 제안하지도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단짝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 초대받아 온 영이의 집에서 펌프판을 보게 된 것이다. 당황한 나는 집에 가겠다며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영이가 말렸다.



“괜찮아. 여긴 보는 사람 없어. 너도 해보고 싶잖아. 오락실 앞 지나갈 때마다 흘끔흘끔 쳐다봤으면서.”

“왜 보는 사람이 없어. 너 있잖아, 너!”

“아?! 그럼 내가 눈 가리고 있을게.”



자기 집에서 눈 가리고 있겠다는 그 말이 웃기면서도 솔깃했다.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할 텐데, 오락실에 가서 못하는 모습을 실컷 보이기가 싫었던 탓에 한 번도 못해본 게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내가 말없이 가만히 서있자 영이는 잽싸게 펌프를 실행시켰다. 시작방법을 모르는 나를 위해 꼼꼼히 알려주면서 노래 선곡까지 대신 해준 그녀는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내 인생의 첫 펌프는 그렇게 시작됐다.



영이가 골라준 곡은 젝스키스의 컴백이었는데 ‘바람속을 가르는 내 슬픈 사랑이~’라는 첫 소절을 다 듣기도 전에 음악이 뚝 끊겼다.



간주부터 흘러나오는 그 빠른 템포의 화살표 중에 맞출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고 게이지가 다 떨어지면서 끝나버린 것이다. 잔뜩 부끄러워하면서도 친구가 못 봤으니 괜찮다며 뒤를 돌았다. 영이가 나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황급히 손으로 자신의 눈을 다시 가렸다.



“안 본다며!”

“안 봤어. 노래가 멈춰서 뭐 잘못 됐나 해서 본거야.”

“거짓말!”



영이는 가족 이외에 내가 못하는 걸 제대로 본 최초의 사람이 됐다. 씩씩거리는 내게 영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하던데... 그럼 이번엔 내가 아예 방밖으로 나가 있을까?”



난데없이 방주인이 친구의 펌프를 위해 나가있겠단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크게 터지고 말았다. 내 웃음에 안도한 영이는 자기도 못한다며 같은 노래를 틀어서 시범을 보였고, 나처럼 똑같이 첫 소절에서 음악이 뚝 끊겼다. 우리는 둘 다 빵 터졌다. 영이는 일부러 제대로 밟지 않은 게 빤히 보였는데도 자신도 못한다며 끝까지 우겼다.


영이와 왜 단짝이 됐는지 이유조차 모를 정도로 처음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못하는 게 죽어도 싫은 사람과 잘하는 것도 못하는 척 해줄 수 있는 사람의 관계는 엄연히 후자의 배려로 이어진 것이었다.



나중에 영이 동생이 얘기하길, 다영이가 나랑 같이 펌프 하려고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집에 펌프 기계를 들여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영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한테 얘기했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어린애가 어쩜 그렇게 생각이 깊으냐며 놀라워했다. 영이가 철없는 나랑 놀아‘주는’거라면서 말이다.



그 뒤로 영이네 집에 갈 때마다 엄마는 꼬박꼬박 선물을 챙겨줬고, 영이네 집에서도 항상 웃으면서 나를 반겨줬다. 펌프 실력은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치지 않고 신나게 발판을 밟아댔다. 영이도 더 이상 눈을 가리거나 방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됐다.



이제 펌프를 못하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못한다는 것을 맘껏 알려도 아무렇지 않은 영이가 있었으니까. 나는 영이 덕분에 맘껏 못하며 중학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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